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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햄버거와 쥐식빵
[이제구의 Moral Innovation]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이제구 economyinsight@hani.co.kr

‘경쟁’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꼭 빼놓지 않고 드는 사례가 있다. 바로 ‘바퀴벌레 햄버거’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의 한 동네에 오래된 햄버거 가게가 있었다. 어느 날 새로운 햄버거 가게가 생겼는데, 이 가게는 새로운 맛의 햄버거를 더 싼값에 선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새 햄버거 가게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급기야 점점 많은 동네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다. 그러자 오래된 햄버거 가게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새로운 햄버거 가게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바퀴벌레를 햄버거 고기에 섞는다는 ‘카더라’ 소문을 퍼뜨렸다. 오래된 햄버거 가게 주인은 당연히 이 소문이 새 햄버거 가게에 타격을 줄 것으로 믿었다.

경쟁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알고 보니 그 동네 햄버거 가게 모두가 바퀴벌레를 잡아서 사용한다더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새 햄버거 가게뿐 아니라 모든 햄버거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 햄버거 가게 주인들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칫 동네 햄버거 가게는 물론 다른 식당까지 영향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득했다. 우선 바퀴벌레를 잡아서 햄버거 고기에 섞는 일이 얼마나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인지 설명했다. 오래된 햄버거 가게 주인 또한 자신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사과했다. 예전처럼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겠지만, 어쨌든 햄버거 가게 주인들은 모두가 망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경쟁’에 대해 말할 때 ‘상대편 경쟁자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을 바른 태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익숙한 상황에서 이런 자세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여러 사례를 보면 경쟁자와 공생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실 많은 경영전략 교과서들이, 경쟁을 ‘경쟁자끼리 전략 행위를 주고받는 과정’이라는 ‘경쟁 역학’(Competitive Dynamics)으로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경쟁이란 ‘너 죽고 나 살자’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마음 씀씀이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바퀴벌레와 햄버거 가게 사례처럼 기업들이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다가는 종국에는 산업 전체가 망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일개 기업이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럼 경쟁자끼리 공존하면서 싸우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맥주를 사러 슈퍼마켓에 갔을 때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다. 기껏해야 대여섯 종류의 맥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십 종류의 맥주가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 아는 상표는 기껏해야 서너 개뿐이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티나지 않게 맥주를 고르느라 애썼다. 그런데 미국 맥주시장 매출의 약 95%는 우리가 흔히 아는 버드와이저·밀러·쿠어스 같은 대형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만으로 판단하면 이 맥주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맥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대표 맥주가 있는데도 수십 종류의 다른 맥주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 궁금증은 몇 년 전 딸아이의 축구 경기를 응원하러 간 자리에서 풀렸다. 거기서 보스턴 맥주회사의 제임스 콕 회장을 우연히 만났는데, 알고 보니 콕 회장의 딸과 내 딸이 같은 유소녀 축구팀에서 뛰고 있었다. 보스턴 맥주회사는 ‘새뮤얼 애덤스’라는 상표로 서른한 가지 다양한 맛을 지닌 맥주를 만들고 있는 대표적인 마이크로브루어리(Microbrewery·소규모 설비와 고유의 제조 방법으로 맥주를 제조하는 회사)이다. 바로 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체리맛 맥주를 생산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니! 그날 나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맥주 산업의 비밀을 보스턴 맥주회사를 만든 당사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쥐식빵 자작극’ 사건의 피해자인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 주인이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홍보물을 붙이고 있다.

놀라운 소규모 맥주회사들의 선전
미국 양조협회(Brewer Association)에 따르면 2010년 7월 말 현재 1640개 업체가 맥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1599개가 마이크로브루어리이다. 미국에서 소규모 맥주 산업이 성장한 것을 두고 ‘마이크로브루어리 운동’이라고까지 표현한다. 1997년 말 미국 소규모 맥주회사는 1250개에 이르렀는데, 이는 맥주로 유명한 독일 전체의 맥주회사 수(1234개)를 앞선다. 현재 스무 개 남짓의 대규모 제조업체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켈롭·밀러·버드와이저·쿠어스 같은 회사들이다.
대규모 업체는 전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반면, 소규모 업체들은 한 동네나 일정 지역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소규모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2009년 말 전체 맥주시장에서 마이크로브루어리의 비중은 매출량 기준으로 4.3%, 매출액 기준으로 6.9%에 이른다. 이쯤 되면 대형 업체에 밀려서 고전할 만한데 최근 수치를 보면 그렇지 않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전체 맥주시장이 2010년 상반기에만 매출량 기준으로 2.7% 감소했으나, 마이크로브루어리들은 같은 기간 매출량 기준으로 9%, 매출액 기준으로 12% 성장을 했다. 쟁쟁한 대형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을 계속하는 마이크로브루어리들이 가진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좋은 품질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콕 회장은 자기 회사 맥주가 지닌 품질과 맛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1985년 처음으로 ‘새뮤얼 애덤스’라는 상표를 붙인 맥주를 선보였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직접 맥주를 들고 보스턴 지역 식당과 술집을 방문해 자신의 맥주를 선보였다. 이를 시음한 바텐더들은 대량생산하는 맥주보다 품질이 훨씬 좋고 맛이 독특하다고 평가했는데, 이를 계기로 새뮤얼 애덤스가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콕 회장은 좋은 품질과 맛을 유지하기 위해 홉을 비롯한 맥주 원료를 직접 사러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런 점은 소형 업체들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밀하게 품질과 맛을 유지하는 것은 대량생산하는 대형 업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소비자 특성을 파악해 제품을 만들고 수요를 창출해내야 한다. 보스턴 맥주회사가 설립된 1980년대 중반은 흥미롭게도 소규모 맥주회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때였다. 하지만 대규모 맥주회사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서로 별반 차이가 없고, 맛 또한 독특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점에 빗대 대규모 업체가 생산한 맥주들을 ‘산업 맥주’(Industrial Beer)라고 불렀다. 여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 더 신선하고 맛이 좋은, 게다가 특이한 향까지 곁들인 맥주였다. 예를 들어 새뮤얼 애덤스에는 체리·크랜베리·호박·초콜릿·커피·꿀 맛이 나는 맥주들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맥주를 고를 수 있게 되어 만족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새뮤얼 애덤스는 양조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신선한 맛이 떨어지게 된 맥주를 유통업체로부터 전량 회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업체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콕 회장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2008년 맥주의 주원료인 홉이 품귀 현상을 보일 때, 보스턴 맥주회사는 보유하고 있던 2만파운드의 홉을 경쟁업체들에 원가에 팔았다고 한다. 그는 “소형 업체들이 함께 살아남는 것이 전체 산업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경쟁은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것이지 제조 단계에서 서로 방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공존을 위한 경쟁을 위하여
공생에 대한 믿음은 맥주산업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등산·레제 용품을 만드는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유기농 면을 개발한 뒤, 제조 방법을 다른 경쟁회사들에게 알려줬다. 유기농 면으로 만든 의류가 팔리는 시장과 산업이 있어야 자신의 회사가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벅스가 멕시코 소규모 영세상인과 협력해 커피 재배에 성공한 뒤 그 방법을 표준화했는데, 이는 커피콩 공급이 점차 줄어들던 커피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경쟁업체들이 때로는 협력을 통해 산업 전체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산업 전체가 망하면 일개 기업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 높은 제품,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상품, 경쟁업체들과의 협력, 이 세 가지는 모두 기업 책임에 관한 덕목이다. 앞에서 말한 바퀴벌레와 햄버거 가게 사례에서 만일 햄버거 가게 주인들이 이 세 덕목을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내용물을 지닌 햄버거, 고기를 이용하지 않은 햄버거, 다이어트에 적당한 햄버거 같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냈다면? 그 동네 패스트푸드 가게들이 모여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경쟁을 했다면? 햄버거 가게는 물론 패스트푸드 가게 모두가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경쟁 역학이 말하듯, 경쟁업체들은 이런 책임을 다하면서 서로 도전하고 응대하며 성장하는 것이고, 더불어 산업 전체도 발전하게 된다.
대형 업체들과 차별화하려는 마이크로브루어리들의 전략 중에 재미있는 것은 ‘독립’(Independ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업체로부터 하청을 받거나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닌 고유한 방법을 통해 이익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리라. 콕 회장에게 맥주 상표를 왜 새뮤얼 애덤스로 했느냐고 물었더니 “새뮤얼 애덤스가 양조업자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 독립을 지켜낸 영웅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새뮤얼 애덤스 맥주를 1985년 독립기념일에 처음 선보인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고 한다. 소규모 업체가 대형 업체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좋은 품질을 지니면서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 소형 업체끼리 협력하는 것이다. ‘독립 정신’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류관순 치킨’이나 ‘안중근 피자’가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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