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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각적 한·미 협력으로 K-반도체 고도화를
[세계는 지금] 미국
[139호] 2021년 11월 01일 (월) 이영선 yslee@kotra.or.kr

이영선 KOTRA 시카고 무역관장

   
▲ 미국이 반도체 생산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요구하면서 한국 기업의 고심이 깊다. 손가락 위에 올려진 반도체칩의 모습. REUTERS

반도체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947년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에서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집적회로, 1961년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실리콘 집적회로는 모두 미국에서 개발됐다. 지금도 전세계 반도체 시장은 미국이 주도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전세계 반도체의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다. 2020년 매출액 기준으로 전세계 15대 반도체 기업에서 미국 기업은 인텔,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애플, 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스(AMD) 등 8개사가 있다. 이 중 인텔, 마이크론,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MD는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을 병행한다.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애플 등은 설계만 한다. 현재 미국에는 730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이 있다.

반도체는 미국 4대 수출품목 중 하나
반도체는 미국의 중요한 수출산업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의 4대 수출품목은 1위 항공기(수출액 720억달러), 2위 정제유(650억달러), 3위 원유(500억달러), 그리고 4위가 반도체(490억달러)다. 또한 미국의 반도체 전후 공정에 쓰이는 장비를 생산하는 미국 3대 기업 매출의 90%는 중국 등 국외에서 나온다.
반도체산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기업활동에서 부가가치 창출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활동의 연계를 말하는데, 주활동과 지원활동으로 구성됨)은 연구개발(R&D), 전자설계자동화(EDA), 전공정(생산), 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이다. 공정별 부가가치 창출은 EDA 45%, 전공정 45%, 후공정 10%다. 미국은 연구개발, EDA, 전후 공정 장비 등에서 경쟁력이 있다. 전공정은 1980년대부터 아시아의 부상으로 미국의 경쟁력이 약화했다. 후공정은 노동집약적 과정이어서 1960년대부터 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맡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의 연구개발 수준은 높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19년 반도체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16.5%로 제약·바이오 산업에 이어 2위다. 대표기업인 인텔은 2019년 매출액의 19%를 연구개발에 지출했다. 특허출원도 2019년 인텔 3020건, 퀄컴 2348건, 마이크론테크놀로지 1266건 등으로 다른 산업의 기업보다 높다.
미국은 반도체를 개발할 때 ‘시뮬레이션·디자인·검증’하는 EDA 기술이 세계 최고다. 이 소프트웨어 기술 없이는 정교한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알덱(Aldec), 알티움(Altium), 앤시스(Ansys), 케이던스(Cadence), 키사이트(Keysight) 등의 선도기업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EDA 기술이나 장비로 만든 반도체가 화웨이에 수출되는 것을 금지했다.
2020년 매출 기준으로 반도체장비 부문에서 세계 10대 기업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AppliedMaterials·미국), 에이에스엠엘(ASML·네덜란드), 램리서치(LamResearch·미국), 도쿄일렉트론(TokyoElectron·일본), 케이엘에이(KLA·미국), 아드반테스트(Advantest·일본), 다이닛폰스크린(DainipponScreen·일본), 테라다인(Teradyne·미국), 히타치하이테크놀로지(HitachiHigh-Technologies·일본), 에이에스엠인터내셔널(ASM International·네덜란드) 등이다. 미국 3개사가 포함된 상위 5개사는 세계 반도체장비 시장의 4분의 3 이상을 점유한다. 얼마 전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에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중국에 팔지 못하도록 요구하면서 이에 불응하면 미국산 반도체 부품을 ASML에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도 있었다. 미국의 장비 기술력은 중국보다 10년 이상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생산 쪽 경쟁력은 약화됐다.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의 비중은 1970년대 60%, 1990년대 40%, 2019년 11%로 떨어졌다. 2022년에는 8%로 전망된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노동집약적인 후공정 부문을 인건비가 낮은 아시아에 이전했고 생산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면서 인건비 비중이 급감하자 전공정을 유럽에도 세웠다. 이때는 인건비보다 세제 혜택, 인프라 등에 따라 투자대상국을 결정했다.
각종 반도체의 대량생산에 힘입어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티에스엠시(TSMC)가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을 능가했다. 한국 삼성전자(주가총액 4437억달러)는 2021년 2분기에 30년간 반도체 1위를 지켰던 인텔을 제치고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올라섰다. TSMC의 주가총액은 5240억달러로 인텔의 2217억달러보다 2배이다. 인텔은 파운드리(주문형 반도체 수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삼성전자와 TSMC가 다양한 고객사의 주문형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축적한 생산기술 격차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후공정은 노동집약적이어서 인건비가 저렴한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이 맡는다. 반도체산업에서 맨 처음 아웃소싱된 공정이기도 하다. 1960년대 한국이 했던 일이다. 당시 한국에 투자한 미국의 모토로라(한국 투자연도 1967년), 페어차일드(1966년), 시그네틱스(1966년) 등은 한국에서 트랜지스터를 조립 및 패키징한 뒤 미국으로 가져갔다.
고급시스템 반도체의 수요는 계속 증가한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가 많이 필요한 산업은 컴퓨터 32.3%, 통신 31.2%, 소비재 12.0%, 산업용 12.0%, 자동차 11.4%, 정부 수요 1.0%다. 세부 업종을 보면 스마트폰, 개인용컴퓨터(PC), 자동차·사물인터넷, 컴퓨터 서버, 디지털TV, 게임콘솔, 의료장비, 셋톱박스, 웨어러블, 군수장비 등에서 수요가 많다.
4차 산업에서 신규 반도체 시장은 계속 창출된다. 미국이 선도하는 산업인 인공지능·머신러닝(기계학습), 자율주행, 양자컴퓨팅, 에지컴퓨팅, 가상·증강현실,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사물인터넷, 5세대(5G) 이동통신장비, 로봇프로세스 자동화, 군수산업 등에서 반도체는 핵심 요소다.
과거에는 큰 관계가 없어 보였던 산업과도 빠르게 연결되고 있다. 자동차가 ‘타이어 달린 컴퓨터’로 되면서 반도체 설계·제조 업체와 자동차 제조사가 밀착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 제조사는 중간에 공급업체를 두고 반도체를 공급받았는데 자율주행, 운전보조시스템, 디지털 디스플레이 등의 고기능 시스템을 자동차에 장착하기 위해 반도체 기업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벤츠는 엔비디아에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의 설계를 의뢰했다. 벤츠는 고급차 생산원가의 20%를 반도체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9월 독일 뮌헨 자동차쇼에 인텔, 퀄컴, 엔비디아의 고위 인사들이 대거 방문한 배경이기도 하다.
주문형 고급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인텔도 파운드리의 재진출을 선언했다. 인텔은 235억달러(약 28조원)를 미국에 투자한다. 현재 미국 파운드리 기업은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스카이워터테크놀로지(SkywaterTechnology) 정도에 불과하다. 인텔은 유럽에도 950억달러를 투자해 2개 공장을 건설한다. 전세계 파운더리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TSMC와 삼성전자도 향후 3년간 각각 360억달러, 17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에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반도체의 무기화 가능성 때문이다. 반도체의 글로벌 밸류체인은 중국, 대만 등 아시아에 집중됐다. 반도체를 ‘중동의 석유’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대만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군사 분쟁, 자연재해 등으로 공급에 영향받을 수 있다. 미국 EDA 기술이나 특허가 미국 밖에 있는 파운드리 회사에 노출될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이 우려가 현실화했다. 2021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공장이 수일간 가동이 중단되자 지금도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등의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에 팔려면 미국에서 만들어라
한국과 미국은 반도체산업에서 외국인 직접투자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요구한다. ‘미국에서 팔려면 미국에서 생산해달라’(Made in Market)는 요구다. 반도체는 한국의 대미 2위 수출품목이어서 미국의 이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면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높일 기회도 될 것이다.
미국의 EDA·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한국에 투자 유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다우·듀폰, 퀄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 램리서치 등의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했다. 이들의 증액 투자 유치는 물론이고 EDA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 연구개발 분야의 협력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나라가 수입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반도체산업은 복잡한 글로벌 밸류체인을 갖고 있다. 그만큼 우리 반도체산업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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