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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품과 디지털 흔적은 누가 치우려나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39호] 2021년 11월 01일 (월) 박중언 parkje@hani.co.kr
   
▲ 유품정리사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의 홍보 이미지. 넷플릭스 제공

얼마 전 세계를 강타한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이끌려 넷플릭스 세계에 빠졌다가 잔잔하게 눈길을 끄는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를 봤다. 숨진 이의 물건을 갈무리해주는 유품정리사가 소재인 <무브 투 헤븐>이다. 드라마 제목과 같은 이름의 유품정리 업체는 고인의 ‘하늘로 가는 마지막 이사’를 돕는다.
인턴으로 일하던 공장에서 다친 다리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고시원 쪽방에서 홀로 죽은 청년, 찾지 않는 자식을 그리워하다 숨진 지 한참 지나 발견된 치매 할머니, 친구 결혼식에서 알게 된 남성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했다가 살해당한 어린이집 교사, 오래전에 퇴직하고 아파트 경비원에서도 해고돼 살길이 막막해지자 미리 유품정리를 주문해두고 병든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은 노인 등 여러 쓸쓸한 죽음의 일화를 드라마는 다룬다. 이들 죽음에서 공통된 것은 떠나간 자리를 기꺼이 치우려는 가족이 없다는 점이다.

고독사 예비군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꽤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이 드물지 않다. 고독사가 대표적이다. 홀로 사는 고령자는 ‘고독사 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65살 이상 1인 가구는 2020년 기준으로 166만 가구에 이른다. 최근 몇 년 사이 해마다 약 10만 명씩 늘어났다. 대도시에 정착했거나 결혼해 새로 가정을 꾸린 성인 자녀가 노부모와 떨어져 사는 게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독거노인은 그나마 안부를 챙기는 지자체의 복지서비스가 갈수록 촘촘해져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품정리업체에 따르면 가족과 왕래가 끊긴 40·50대의 고독사나 자살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유대는 행복한 노후는 물론 인생의 깨끗한 뒷정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람이 숨진 뒤 시간이 많이 지나면 그가 살던 방이나 집을 치우기가 녹록하지 않다. 부패하기 시작한 주검과 흘러나온 피·분비물 등 체액, 구더기, 악취 등이 가족도 고개를 돌리게 한다.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고 화학약품 처리를 해도 냄새가 다 빠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고 이웃 주민의 원성도 크다. 유품정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이 직업을 특수청소업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죽고 나면 쓰던 물건은 남은 가족에게 성가신 짐이다. 현금이나 통장, 귀중품은 자식도 살뜰하게 챙기겠지만 나머지는 쓰레기나 다름없다. 내 짐도 잔뜩 껴안고 사느라 집이 ‘사람을 위한 것인지 물건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터에 노부모가 쓰던 것들까지 들어올 공간은 거의 없다. 중견기업 P부장 또한 살림 규모가 훨씬 큰 처가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집 정리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일본 사례들을 소개하는 책 <부모님의 집 정리>는 부모 세대가 물건을 귀하게 여기니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누구나 한 번쯤 정리 도중에 좌절감을 느끼므로 마음을 단단히 먹을 것을 당부한다. 생전에 들여다보지 않다가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기억과 자취가 깊이 밴 물건은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고인의 반려동물은 큰 고민을 요구한다. 기를 사람이 없다고 주인을 따라 죽게 할 수도, 유기동물이 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인의 반려동물 양육을 위한 은행의 ‘펫신탁’ 상품이 나와 있기는 하다.
이런 고민 때문에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정리 작업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일찌감치 등장했다. 이들 업체는 부모 유품을 버릴 때 드는 죄의식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 받기 △물건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맡기거나 기부하기 △정말 버리기 힘든 것은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 등을 제안한다.
부모 유품 정리를 힘들게 하다보면 나의 흔적은 내 손으로 치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소유욕을 내려놓고 중고거래나 나눔을 통해 물건을 조금씩 처분해 떠난 뒤의 정리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아주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자녀가 간직해줬으면 하는 것들은 잘 챙겨둘 필요가 있다. 물건을 처분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 디지털화하는 것은 처분 뒤 남는 아쉬움을 덜어준다.

디지털 흔적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내가 떠난 뒤 디지털 세상에서 떠도는 나의 흔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다. 페이스북·카카오톡·네이버·구글 등에서 생산·보관하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콘텐츠가 그것이다. 완전히 없앨 수도, 영원히 존재하게 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숨진 사실이 확인되면 그 계정을 애도와 추모를 위한 디지털 공간인 ‘기념 계정’으로 바꾼다. 물론 사용자가 영구삭제를 지정할 수 있고, 사후에 가족·친구가 그렇게 요청할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구글에선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는 휴면 계정의 영구삭제를 선택해놓거나 계정 관리자를 지명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는 페이 같은 현금성 자산도 있어 아이디·비밀번호를 정리해두는 것이 남은 이의 수고를 줄인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와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쓰지 않은 지 10년도 더 지난 P부장의 포털 메일함에는 요즘도 블로그 판매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쌓인다.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사용자의 분신 캐릭터처럼 기술 발달에 따라 그 흔적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남은 이들에게 꼭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는 콘텐츠는 클라우드 기반 저장 서비스나 외부 저장장치 등에 갈무리해놓는 게 좋다.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부끄러운 모습은 적절한 시점에 삭제할 필요가 있다. 사후에 나의 디지털 흔적이 지워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떠날 때를 생각해 머무는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남은 가족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 물건을 하나씩 떠나보내고 디지털 흔적을 지울수록 삶이 가벼워진다. 폐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이듬해 82살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경리의 유고 시집 제목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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