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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의 경제구조를 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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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윤자영 economyinsight@hani.co.kr

윤자영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09년 현재 1.1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산아 제한’을 하기 위해 다자녀 가구에 불이익을 주던 때가 불과 20~30년 전이었음을 상기할 때,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는 경이로운 속도로 이루어졌다. 많은 논자들이 자녀 양육 비용과 기혼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기회 확대에 따른 기회비용 상승을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곧 한 명의 노동력을 키워내는 일이자 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돌봄 노동인데, 노동에 대한 보상은커녕 엄청난 비용만 초래되고 있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 행동인 듯 보인다. 
 
가정이 부담하는 사회적 재생산 비용
한 명의 노동력을 키워내고 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의 항목은 다양하다. 그러나 세대를 재생산하는 데 드는 총비용의 규모와 가정·국가·시장·공동체 등 여러 경제주체들이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 미국 농림부는 매해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가족이 지출하는 비용을 발표하고 있는데, 2009년 연간 소득이 5만6670달러 이하인 두 자녀를 키우는 양부모 가구에서 한 자녀에게 지출한 돈은 8330∼9450달러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용도 실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과소 추정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화폐 비용 못지않게 큰 덩어리인 ‘시간 비용’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 대한 화폐 거래와 시장 중심적 사고방식하에서, 부모의 돌봄 시간은 가격이 없고 시장경제 영역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비가시화해왔다. 삶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돌봄 노동을 수행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커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가 되려는 동기와 돌봄 노동 수행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은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자녀 양육 비용을 파악한 뒤 어떻게 자녀 양육을 지원해 부모가 되려는 동기를 강화할 것인지는 저출산 문제를 이미 심각하게 겪은 국가들의 고민이었다.
   
여름방학 기간에 ‘종일돌봄교실’에 참가한 어린이가 지도교사로부터 수학문제 풀이 지도를 받고 있다.
전통적 경제학 이론에서는 부모의 돌봄 노동과 양육의 시간 비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통적인 소비자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행위는 부모 자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므로 국가가 나서서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함의를 가진다. 자녀는 부모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생산해낸 생산물이 아니라 부모의 효용 증대라는 관점에서 멋진 소파나 애완동물과 다름없는 ‘소비재’일 뿐인 것이다. 이후 신가정경제학의 가내생산이론은 가정이 중간재와 시간을 결합해 자녀를 생산해내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했지만, 이기심의 원리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 시장 영역과 대비해 가정은 이타심의 원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가정해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일은 ‘사랑’으로 하는 일이지 이해타산이 결부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가 되려는, 특히 엄마가 되려는 개인의 선호 체계는 자연적이며 타고나는 것이어서 무엇이 그 선호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돌봄 노동은 부모 자신의 정신적 만족과 노후 보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고용주를 비롯한 국민경제의 여러 주체에 중대한 경제적 함의를 지닌다. 부모가 자녀를 가정에서 양육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지적 능력을 배양하거나 기술을 습득하게 할 수 없을 것이고, 고용주는 자본과 결합해 생산에 투입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부모가 돌봄 노동을 통해 키워낸 시민이 활력 있는 노동시민이 되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국가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여성주의 경제학자인 낸시 폴브레는 돌봄 노동이 부모의 현재와 미래의 효용 증대만을 위한 소비 혹은 투자에 그치지 않고 전체 국민경제로 그 혜택이 공유된다는 점을 들어 ‘아이는 공공재(Public Goods)’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서 공공재는 비용과 혜택이 오직 거래 당사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재화 혹은 서비스를 지칭한다. 자본주의 발전과 현대 국가의 복지·재정 체계에서 자녀의 ‘공공재’ 성격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부모 돌봄 노동의 혜택과 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사회·경제적 구조와 제도 변화는 그 혜택과 비용의 분담 구조를 변화시켜 부모가 되려는 동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자녀는 국민경제의 ‘공공재’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 재생산을 위해 가부장제가 담보했던 돌봄 노동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체계를 붕괴시켰다. 전통 사회에서 자녀는 농경에 바로 투입돼 부모 세대와 생계를 공유하고 노후 보장을 제공했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시간의 기회비용이 높아졌고,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으로서 가족 경제를 계승하던 자녀의 의미가 퇴색됐다. 즉, 과거에는 자녀 양육 비용을 가족이 사적으로 담당했지만 자녀가 부모에게 제공하는 혜택도 역시 사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공유됐다. ‘사적 비용-사적 혜택’ 구조는 개별 여성과 가족에게 자녀를 출산할 충분한 동기를 부여해 사회 재생산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적 영역의 생산과 사적 영역의 재생산으로 이분화가 심화된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녀의 경제적 가치는 크게 변화했다.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임노동 기회를 가진 자녀는 더 이상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제공하지 않거나, 오직 제한적인 노후 보장만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신 국가는 임노동자에게 거둔 세금으로 연금과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자녀의 혜택을 사회 전반이 직면하는 후기 산업사회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화’했다. 부모의 자녀 양육 노력의 결과 양성된 미래의 노동력은 부모뿐만 아니라 부모 노릇을 한 적이 없는 사람도 연금 및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한다. 자녀 양육 비용 부담은 부모가 사적으로 담당하지만, 자녀 양육으로 인한 혜택은 부모든 아니든 상관없이 공유하는 ‘재정적 외부성’(Fiscal Externality)이 발생하는 것이다. 굳이 내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그 혜택에 무임승차할 수 있으므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출산과 돌봄의 동기가 약화된다.
재정적 외부성은 자녀 양육의 시간 비용을 고려하면 더욱 경제적 함의가 복잡해진다. 시간 비용을 간과할 경우, 부모가 자녀 양육을 위해 감당하는 사적인 비용은 과소 추정될 것이며, 임금노동을 수행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연금 및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혜택의 사회화 방식은 시간 비용 형태로 부모 노릇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어느 정도로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지 드러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 비용을 감안해 자녀 양육의 총비용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왜 출산의 동기가 약화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출산과 돌봄 노동에 대한 책임을 고무하는 인센티브를 고안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자녀의 혜택을 ‘사회화’하다
그렇다면 자녀 양육 비용의 시간 비용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자녀 양육에 투입한 시간의 비용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개인적 비용은 자녀 양육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개인적 차원에서 감수하는 비용인데, 보통 노동시장을 이탈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 소득의 상실로 측정된다. 한편, 낸시 폴브레는 “부모의 돌봄 노동의 시간 비용은 가족이 사회경제 전체를 대신해 치르는 비용이므로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전업주부들이 수행하는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은 있었지만, 자녀 돌봄 노동을 노동력과 한 사회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접근해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시도는 부재했다.
자녀 양육 시간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에는 아직까지 합의된 접근법이 없다. 우선 돌봄 노동이 과연 노동이냐라는 개념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통적인 노동경제학에서는 개인이 가진 시간을 오직 ‘노동’과 ‘여가’라는 이분법에서 사고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자녀 돌봄 노동 시간을 ‘제3자 원칙’을 사용해 정의한다. ‘제3자 원칙’이란 부모가 수행하고 있는 특정 행위가, 본인이 아닌 제3자를 고용해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고, 그 결과물을 내가 아닌 자녀가 소비할 수 있다면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돌봄 노동 시간의 정의는 한 개인이 하루 24시간 동안 작성한 시간일지에 기반한 시간사용 조사 자료에 달려 있다. 실제적인 방법에서 다양한 접근이 존재하지만, 우선 자녀 양육에 투입하는 시간량을 측정하는데, 먹이기와 씻기기 같은 직접적인 돌봄 노동으로 흔히 분류되는 행동과 직접적인 돌봄 노동 형태를 취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주위에 대기 상태로 있는 감독 시간을 포함한다. 자녀 양육의 기본이 생리적 욕구 충족이라고 한다면 빨래하기와 밥짓기 등 가사노동도 포함시킨다. 또한 부모 돌봄 시간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가 자녀 한 명에게만 혜택을 줄 수도 있고, 여러 자녀에게 동시에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부모의 시간의 성격에 대해 한 명의 자녀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보는 사유재, 여러 자녀에게 동시에 혜택을 준다고 보는 공공재, 그리고 그 중간인 반공공재 가정을 적용한다. 이렇게 해서 구한 시간량에 시간의 가치를 곱해준다. 부모 시간의 사회적 비용이란 만일 부모가 아닌 제3자를 동원했다면 사회 재생산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인가라는 비용이므로,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대체 서비스의 가격을 사용한다. 이때 다양한 품질의 대체 서비스 투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다양할 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해 임금률과 생산성이 양(+)의 관계에 있다는 가정하에 최저임금 근로자, 사회서비스 근로자, 준교육 전문가의 임금률을 적용해 각각 저생산성, 중생산성, 고생산성 가치를 산출한다.
 
돌봄 노동 ‘숨겨진 비용’을 측정하라

필자가 2004년 생활시간 조사 자료를 사용해 연구한 결과, 자녀 1명을 0살부터 18살까지 양육하는 시간 비용은 맞벌이 가구에서 약 1억1900만원, 홑벌이 가구에서는 1억8300만원으로 분석됐다. 금전 비용은 맞벌이 가구에서 약 2억6400만원, 홑벌이 가구에서 약 2억2900만원이었다. 그 결과 자녀 1명을 양육하는 총비용 가운데 시간 비용의 비중은 맞벌이 가구가 31%, 홑벌이 가구가 44%였다. 2004년 한 해 부모가 자녀 양육을 위해 투입한 시간의 가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5%였고, 교육서비스업과 보건 및 사회복지 분야 총생산액의 비중보다 커 부모의 자녀 양육 시간이 노동력과 사회 재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세대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의 투입은 미래의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정확한 자녀 양육 비용 규모를 측정하는 것은 개별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 출산 및 양육과 관련된 각종 의사결정에 유용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출산 정책과 공적 부조를 포함하는 사회정책 계획 수립과 시행 측면에서도 지원 수준 결정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부모의 돌봄 시간이 화수분에서 무한정 넘쳐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노동력과 사회 재생산에 ‘숨겨져’ 있던 시간 비용을 감안하지 않으면, 각종 저출산 대책은 공염불에 머무를 것이다.

jayoung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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