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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배상은 언제 필요한가
[박상인의 경제직설]
[138호] 2021년 10월 01일 (금)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2020년 11월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일반적 징벌배상제도 도입’ 공청회에서 (왼쪽부터) 명한석 변호사,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김남근 변호사, 김선정 동국대 석좌교수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하반기에 법무부가 돌연 징벌배상제(Punitive Damage)를 상법에 도입하는 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조물 책임법 등 약 20개 법률에 이미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법률별 상이한 요건과 효과를 통일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개정안이라고 평가됐다.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손해의 최대 5배를 넘지 않는 범위로 제한하고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가 빠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증거개시제도 특례법을 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매출액에 비례해 최대로 설정해야 고의적 위법행위를 억제하는 실효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증거개시제도는 법원의 승인하에 원고 쪽 법률대리인에게 형사소송에서 검사가 가지는 심문과 압수수색 등의 증거 수집 능력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술탈취 막는 손해배상 법제화
그런데 법무부가 발의한 상법개정안은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대신, 2021년 7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대·중소기업상생법) 일부 개정안에서 기술탈취 방지를 위해 수탁기업과 위탁기업 사이에 비밀유지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고 기술탈취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증거개시제도를 대신해 피해의 입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여전히 해당 손해액의 3배로 한정했다.
상법개정안에 포함됐던 언론의 고의·중과실에 따른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삽입됐다. 개정안에는 입증책임 전환뿐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매출액’의 5배까지 부과하도록 했다. 기술탈취 방지를 위한 대·중소기업상생법 개정안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더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상법개정안에 포함했을 때부터 논란이 됐다. 반대쪽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축할 수 있고,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과 언론중재위나 민사재판을 통한 손해배상도 가능하므로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징벌배상제는 언제 필요하고 또 어느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소송의 기대이익이 소송비용보다 커야만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제기의 기대이익은 ‘배상액×승소 확률’이다. 증거개시제도나 입증책임전환제도는 원고의 승소 확률을 높인다. 물론 둘 중 어느 제도가 승소 확률을 더 높일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들 제도가 없으면 사실상 승소 확률은 ‘0’에 가깝다. 징벌배상은 배상액을 높여 소송제기의 기대이익을 높이는데, 법원이 인정하는 실손은 실제 손실액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송비용은 변호사 비용 등 소송 관련 실제 비용과 소송으로 인한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의 허위 보도로 피해를 입을 때 소송비용은 변호사 비용 등 소송 관련 실제 비용에 한정될 뿐이며, 소송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음의)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소송의 기대이익이 높지 않아도 가짜뉴스 관련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개연성이 높고, 사실 이런 소송은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재벌기업들에 의해 사실상 전속계약 관계에 있는 하청기업이 기술탈취 소송을 제기하면 즉시 보복을 당하게 된다. 거래가 끊겨 망할 수 있는데, 사업을 더는 영위할 수 없는 것이 소송의 기회비용이 된다.
징벌배상제는 민사소송 제기로 원고의 피해보상을 유인할 뿐 아니라 피고의 고의적 위반을 스스로 억제하도록 유인하기도 한다. 즉, 고의적인 가짜뉴스 생산이나 기술탈취로 인한 피고의 이익이 소송을 당해서 패소할 때의 비용보다 적을 때 이런 일탈을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 그런데 패소시 피고의 비용은 ‘(배상액+소송비용+이미지 실추 등 기타비용)×패소 확률’로 계산할 수 있다. 따라서 징벌배상이 적용될 때 배상액이 커지고 증거개시제도나 입증책임전환제도가 있을 때 패소 확률은 더 높아져 일탈을 스스로 억제할 유인이 커진다. 그런데 가짜뉴스 생산의 경우에는 징벌배상이 아니라도 미디어 바우처 적용 제외 같은 장치를 통해 기타 비용을 높임으로써 유사한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중소기업은 기술탈취를 당해도 소송의 기대이익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소송 자체를 제기할 엄두를 못 내는 실상이다. 2020년 2월25일치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대기업의 기술탈취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246개나 되고 피해액은 5400억원이 넘는다.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침묵한 중소기업들과 실태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중소기업까지 고려하면 기술탈취 피해 현황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언론 징벌배상, 비합리적 선택
기술탈취 방지에 더 강력한 징벌배상이 필요한 이유는 징벌배상으로 훼손되거나 지킬 수 있는 가치의 차이도 꼽을 수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배상이 오히려 이것의 오·남용으로 이어져 언론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손상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에 비해, 기술탈취에 대한 강력한 징벌배상은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약자의 재산권 보호를 촉진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대·중소기업 상생법이 아니라 언론중재법에 매출액의 5배까지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설정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했다. 중소기업이 기술탈취로 당하는 고통에 여당이 가짜뉴스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진정으로 공감한다면, 기술탈취를 근절할 제대로 된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이처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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