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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이제는 보육이 아니라 교육이다
[핀란드 복지국가 산책]
[138호] 2021년 10월 01일 (금) 신소영 soyoung.fin@gmail.com

신소영 자유기고가

   
▲ 핀란드 헬싱키 시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들이 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 날씨에도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신소영

핀란드에 살며 큰아이를 공립 어린이집에 보낼 때의 이야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를 만나더니 단어 몇 가지를 배워왔다. 부모가 가르친 적이 없는데 스스로 배웠다는 게 기특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우리 아이는 핀란드어도 금방 배웠다며 관찰력과 집중력이 좋아서 무엇이든 금방 배울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너는 알파벳도 아는구나, 대단한데!”라며 아이를 치켜세웠다. 혹시나 해 어린이집에서 알파벳이나 숫자를 가르치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선생님의 대답이 명언이었다. “아니,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에게 글자나 숫자를 가르치지 않게 돼 있어. 우린 그저 소개할 뿐이야.”

가르치지 않는 어린이집
가르치면 가르치는 거고 안 가르쳐도 그만인데 소개만 할 뿐이라는 대답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소개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다시 물었다. 아이가 글자에 대해 궁금해하면 그게 어떤 글자인지 알려주고 글자는 읽고 쓰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정도이지, 아이를 앉혀놓고 단어 카드를 보여주거나 알파벳이나 숫자를 쓰게 하거나 외우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기관에서는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만 6살부터 정식으로 글자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만 6살이 되면 에스카리(Eskari)라고 부르는 교육기관에 입학하는데, 이곳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1년 동안 기초교육을 하는 예비학교다. 이곳에 입학하는 아이 가운데 가정에서 알파벳과 숫자를 배워 이미 터득한 경우도 있고,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알든 모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알고 있다면 대단한 일이고 모르면 그때부터 배우면 된다. 원래 그 시기에 배우게 돼 있어 창피할 일도 걱정할 일도 아니다. 여기서도 글자와 숫자를 깨우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올라가는 아이가 있다. 그래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우면 된다.
“애들은 노는 게 최고의 공부야! 그냥 신나게 놀면 돼. 친구와 규칙을 지키면서 사이좋게 말이야!”
핀란드 교육가들에게 영유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뭐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답이다. 핀란드에서는 어릴수록 몸을 쓰고 활발하게 노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린이집 활동에서 두세 시간은 야외활동으로 채우도록 권장하고, 실제로 많은 어린이집이 이 지침을 따르고 있다. 신체활동으로 감각을 발달시키고 자기 몸을 시험하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날씨와 상관없이 밖에 나가 놀아야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비 오는 날엔 비를 맞으며 놀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밖에 나가기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렇게 노는 과정에서 사회생활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법을 모르는데, 글자를 알고 숫자를 셀 줄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사회성 기르기’는 핀란드 어린이집 교육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기 위해 규칙을 지키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과 어울리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의 영유아 교육 철학이 실현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영유아 교육을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핀란드 어린이집은 의무교육이 아닌데도 대부분 공립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이 깔려 있다. 1800년대 후반 핀란드는 전쟁으로 인해 남성 노동력이 감소하고 경제 사정이 악화해 여성들도 대거 노동에 투입됐다. 일터로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남겨진 아이들은 가난과 기아 속에 허덕이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 독일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한 독지가 한나 로트만은 1888년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모아 무상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교육했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에서 어린이집의 시작이었고 그 역사는 벌써 130년이 됐다. 로트만이 설립한 어린이집은 노르딕국가(북유럽의 다섯 국가, 즉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아이슬란드·핀란드) 중 노동계층 자녀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어린이집이기도 하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로 보육이 필요한 영유아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핀란드에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돌봄 서비스를 공적 영역이 맡게 됐다.
이후 수십 년간 핀란드의 영유아 교육은 부모를 위한 서비스였고 사회복지 차원에서 발달했다. 하지만 2013년 영유아 교육이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담당 부서가 바뀌면서 기조가 변하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키르시 타르카 영유아교육 선임연구관은 “우리는 지금 보육을 논하는 게 아니라 영유아 교육이 아이들의 권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핀란드 사람들도 배움의 관점에서 영유아 교육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이 의무교육이 아님에도 아이들이 질 좋은 영유아 교육에 참여해 그룹 속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경험을 쌓도록 국가가 영유아 교육을 관리하는 것이다.

어린이 80% 이상 공립 이용
이제 핀란드에서 어린이집은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는 보육시설을 넘어,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아이들을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기초를 닦는 교육기관이 됐다. 그리고 많은 아이가 질 좋은 영유아 교육을 받도록 대다수 어린이집이 공립으로 운영된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에 따르면, 영유아 23만 명이 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4만5천 명이 사립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는 모든 아이가 가정환경이나 지역과 상관없이 최고의 교육을 받기 바란다. 영유아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삶에서 배움의 기초가 이 시기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집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유기적으로 연계된 교육과 복지를 제공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따뜻한 유대관계가 형성돼야 하고, 어린아이가 어떻게 배우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놀이하고 활동적으로 주변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말이다.” 키르시 타르카 선임연구관의 말이다.

* 한국에서 법조 전문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핀란드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낯선 땅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만 6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이력을 살려 간간이 핀란드의 정치·교육·문화 뉴스와 한인 동포 소식을 고국에 전하는 YTN 핀란드 해외리포터로 활동했다. 더불어 국내의 한 장애인권단체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핀란드 장애인 관련 복지제도를 소개했다. 최근 고국에 돌아와 핀란드에서 겪은 출산·육아 경험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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