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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성장을 넘어 공존의 시대로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녹색복지국가를 향하여 ⑦ 지탱가능한 성장
[138호] 2021년 10월 01일 (금) 이창곤 goni@hani.co.kr
   
▲ ‘도넛경제학’의 원리는 개인 삶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토대와 지구 전체의 안녕을 이루는 생태적 한계 사이에 인류를 위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이 펼쳐진다는 데서 출발한다. 초록지대(굵은 실선 안)가 도넛이다. 안전지대인 도넛 모양의 두 경계 안에 있을 때,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다. 한겨레 자료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저서 <탄소사회의 종말>에서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세 길이 있다고 말한다. 환경의 길, 경제의 길, 사회의 길이다. 환경의 길에는 탄소중립, 미세먼지 저감, 자원순환과 그린 인프라 등이 제기된다. 사회의 길에는 인식의 전환과 기후커뮤니케이션, 녹색사회, 인권과 사회정책 등이 논의된다. 경제의 길에는 녹색경제, 그린뉴딜, 에너지전환 등이 핵심 과제로 언급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세 길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선택하는 ‘녹색정치’가 더 결정적인 사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과학기술자와 기업인들은 기술과 과학, 지식의 힘을 강조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이 전달돼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생태적 전환이 이뤄질 수 없다면서, 결국 사람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다. 따지자면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어떤 길이라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을 듯하다. 생태위기가 인류 공동체에 전방위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그 대응도 전방위적일 수밖에 없다.

생태위기 극복 앞에 놓인 성장의 장벽
이 모든 길에는 극복해야 할 숱한 장벽이 놓여 있다. 무수한 난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슈는 무엇보다 경제의 길로서 ‘성장의 문제’다. 보통 성장이라고 하면 더 높은 생산성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경제성장을 가리킨다. 국내총생산(GDP)으로 응축, 표현된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후 대부분의 산업국가는 이를 국가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성장은 오늘날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특히 한국인에게 이토록 효능을 강하게 체감케 한 개념이 또 있을까 싶다. 지난 40여 년(1961~2008)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를 넘었다. 성장은 가난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부상케 한 것은 물론, 민주화에 이어 복지국가 대열로 진입케 한 원동력이었다. 이런 성장은 2019년 국내총생산 1919조원이란 성과를 낳아 대한민국 경제 규모를 세계 10위권인 선진국 반열에 오르도록 했다.
산업혁명 이후 질주해온 성장지상주의(GDPism) 고속열차는 이렇듯 우리에게 역사상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실어다줬지만, 경이로운 속도와 화려한 빛만큼이나 어둡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끔 했다. 생태위기는 실상 이 폭주한 성장의 결과다. 성장을 위한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배출은 기후위기를 불러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극심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해 숱한 갈등을 유발했다. 이는 성장 자체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끔 했다.
1972년 로마클럽(Club of Rome)이 발표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성장에 의문을 던지고 성찰한 최초의 지구촌 대응이었다. 이후 생태위기가 가속하고, 더는 고성장이 어려운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는 등 성장에 여러 균열이 일면서, 기존 경제성장 일변도의 조류에 대해 다양한 갈래의 비판과 대안 담론이 나타났다. “생산과 소비의 규모를 줄이고 문명을 사실상 탈산업화해야 한다”며 숫제 산업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생태주의자들의 탈성장론에서, 성장 일변도가 극심한 불평등을 낳았다면서 성장을 위해서도 분배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포용성장론, 성장과 생태위기 관리를 조화시키거나 아니면 생태위기 극복을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으로 삼을 수 있다는 녹색성장 혹은 녹색경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안 성장 담론’이 나라 안팎에서 계속 제기됐다.
GDP 외의 다른 지표와 가치를 계량화해 새로운 회계 방식을 제안한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경제학’이나 최근 최영준 연세대 교수를 비롯한 국내 연구진이 제시한 ‘참성장 전략’ 등은 기존 GDP 중심의 성장론을 극복해보려는 국내외 대안 담론들 가운데 의미 있는 시도다. 최 교수는 “참성장 전략은 성장이 모두의 진전으로 이어지고, 지속가능한 환경과 지구를 미래세대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지닌 근시안적 성장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성장 전략”이라며, 이 전략 실현의 핵심 요소로 기술과 지식을 꼽았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부부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성장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 무엇이 그것을 촉진하는지, 어떤 정책이 도움되는지도 명확히 알아내기 어렵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급기야 두 경제학자 부부는 “성장을 논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숱한 ‘대안 성장 담론’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성장지상주의에 나름의 경고를 던졌다는 의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어떤 담론과 주장도 GDP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수정하거나 대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갑론을박 과정에 더 명확해진 것이 있다면, 바로 생태위기 시대에 더는 과거 같은 고도성장 신화의 재현은 어렵고 GDP 중심 성장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5.2% 역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이 컸다고 짐작된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0년 이래 경제성장은 이미 “핏기를 잃고” 저성장 그래프를 그린 지 오래였다. 생태위기와 불평등, 저성장이란 복합 위기의 상황이다.

무성한 질문 속 아직 답은 없다
문제는 이렇듯 상황이 엄중하고 답해야 할 질문이 무성하지만, 답을 찾거나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장 없는 번영이 가능한가? 성장이 한 사회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해도 필요조건이 아닌가? 특히 한국처럼 개방형 수출 주도 경제를 갖춘 나라에서는 성장이 없는 건 곧 죽음에 가까운 추락이 아닌가? 생태위기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질과 기회 평등을 높이는 좋은 성장을 이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장 방식을 바꾼다면 좋은 성장이 가능할까? 이를 위해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하지만 답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대응마저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공존을 위한 노력이 아닐까. 소수의 성장보다는 모두의 번영을 이룩하고, 무엇보다 인류는 물론 지구촌에 삶의 터를 둔 뭇 생명이 함께 누리는 공존의 해법을 찾는 게 어쩌면 ‘우리들 공동의 미래’와 ‘공존의 시대’를 위한 ‘지탱 가능한 발전 또는 성장’의 해법이 아닐까.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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