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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는 누구의 뺨을 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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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정태인 economyinsight@hani.co.kr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책장을 넘기면서 누군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50쪽쯤 읽었을 때 그 이름이 떠올랐다. 루쉰의 ‘아Q’다.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돌려버렸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때린 다음에는 기분이 가라앉아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것은 다른 사람 같은 기분이 되었다.”(<아Q정전> 중에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쓴 <한미 FTA를 말하다>를 보면, 그는 여전히 멕시코가 자랑스러운 것 같다. “보도 내용과 달리 멕시코는 NAFTA 발효 후 5년간 연평균 3.0%, 10년간 연평균 3.3%의 건실한 GDP 성장을 기록했으며, NAFTA를 계기로 중남미 제1위의 해외직접투자 유치국으로 부상했다.”(120쪽) 수출이 증가하고 해외직접투자(FDI)가 대폭 유입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993년에서 2007년까지 수출은 311% 증가했고, 외국인 투자 역시 3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1인당 경제성장률은 15년간 연평균 1.6%에 불과했다. 도대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성과인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일반균형연산(CGE) 모델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 생산성이 1% 올라서 성장률은 6~7%가 돼야 말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표현대로 ‘FTA 후진국’인 아시아 나라들은 물론, 미국과 FTA를 맺지 않고 비정통적 경제정책을 사용하는 브라질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멕시코에 대한 심각한 오해
그 이후는 더욱 비참하다. 금융위기 이후 2008년의 국내총생산(GDP)은 1.3%, 2009년에는 -7.1%를 기록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목적대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주요 공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이들 기업이 외부 자본시장에 의존하고 심지어 파생상품을 다뤘기 때문이다. 멕시코 은행을 인수한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자국이 위기를 맞자 달러를 회수했고, 멕시코는 외환위기 상태에 빠졌다.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가 2001년 금융위기 때 자본통제 조처를 취했다가 2009년까지 47건의 투자자국가제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멕시코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가 한 장을 할애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곳곳에서 강변하는 투자자국가제소권의 실체다.
내부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2006년 현재 실질임금은 아직도 1996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지니계수는 0.47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그런데도 그는 “NAFTA가 멕시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부가 효과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인지 관심이 캐나다로 바뀌었다”(158쪽)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한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캐나다도 NAFTA 이후 미국을 따라 공공지출을 줄인 결과 한국보다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가 됐다.
김현종에게 멕시코는 또 다른 면에서도 모범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FTA를 맺어서 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전세계 시장을 대부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바로 김현종의 꿈인 ‘FTA의 허브’이다. 그러나 냉정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양자 간 협정에서 언제나 허브는 강대국이 되기 마련이다. FTA 전문 경제학자인 볼드윈은 이를 ‘스포크 함정’(Spoke Trap)이라는 말로, 즉 여러 강대국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는 현상으로 묘사한다. 불행히도 볼드윈은 한국이 멕시코 꼴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국의 협상가들은 언제나 그의 실력과 꾀에 당하고 만다.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 측이 세부 이슈에 대한 요구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역대표부의 고위급은 물론 분과장마저도 포지티브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다.” 과연 그럴까?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을 하기 직전인 2005년에 체결한 오스트레일리아-미국 FTA(AUSFTA)의 핵심 쟁점이 바로 이 포지티브 리스트에 의한 약값 산정 방식(PBS)이었다. 고작 1년 뒤 한-미 FTA 협상이 되자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그들의 골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던 PBS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일까?
실제로 약값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리스트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건 김현종 자신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협상이 시작된 뒤에야 “협상 전에 미국이 이른바 4대 현안 중 하나로 새로운 약가제도 도입 자체를 요구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 조각이 비로소 맞추어진 느낌이었다.”(127쪽) 이런 사람이 우리 협상을 지휘했던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된 날 미국 제약 업계는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그는 의약품에서 양보한 것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당한 것일까? 무역 구제 분야의 비합산 조치처럼 한국 기업들의 숙원이지만 전혀 관철하지 못한 이슈는 그가 단지 전략적 미끼로 썼기 때문이란다.
그에겐 ‘경쟁적 자유화’라는 미국의 FTA 전략을 고안한 로버트 졸릭도 한 수 아래로 보였다.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자체가 졸릭이 고안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다. “김현종을 만났을 때 졸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중국을 순응하게 만들 대리인,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 거기 있었다.”(정태인, <시사저널> 2006년 4월)
그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통상교섭본부를 확 바꿔놓은 인물로 자신을 되풀이해서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개성공단을 FTA에 포함시킨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보기로 생각하는지 책 곳곳에 개성공단이 등장한다. 그는 2004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 대통령에게 한-싱가포르 FTA에 개성공단을 포함시키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이 흐뭇해한다. “FTA에서 그런 것도 다룹니까? 개성공단 인정받으면 거참 좋겠네.”(48~49쪽) 하지만 김현종에게 싱가포르와의 FTA에 개성공단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건 바로 나였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김현종은 한-일 FTA를 중단시켰다. 그는 대통령 보고서에서 “부품소재 …를 집중 보호해야 하며 자동차, 기계, 정밀화학도 경쟁력이 약해 보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309쪽). 한편, 그는 한-미 FTA 때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러 온 화장품업 대표에게 실망한다. “(관세 혜택으로) 일종의 ‘국민보조금’을 준 셈이었다. …그런 대기업의 간부가… 관세 철폐가 되면 도태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다.”(178쪽)
그러나 화장품은 그가 한-일 FTA 때 걱정한 정밀화학의 대표적 상품이고, 정밀화학은 정밀기계와 함께 한-미 FTA에서 가장 타격받을 제조업 분야다. 일반적으로 봐도 제조업의 물적 생산성은 일본이 미국의 약 80%고, 한국은 기껏해야 40%가량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 대해서는 보호를 해야 하고, 더 강한 미국에 대해서는 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종은 대통령이 자신의 이런 모순된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대통령은 2005년 2월1일 “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믿지 못하겠다. 정 비서관이 한-일 FTA를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나에게 지시했다. 그해 5월 내가 잘렸지만 나 없이 완성된 한-일 FTA 보고서는 2006년 3월, 한-미 FTA 반대 보고서와 함께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미국과 안 하면 쇄국, 일본과 하면 합방?
한-미 FTA 비판자를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는 그가 왜 한-일 FTA가 되면 ‘제2의 한일합방’이 된다는 극단적 상상을 하는 걸까? “노대통령은… 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59쪽) 그 역시 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에서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뿔싸, 그 선진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다.
‘아Q’는 자신의 무지와 허세 때문에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Q’는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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