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제 > 포커스
     
‘미국 봉쇄’로 독자 개발 시동
[FOCUS] 중국의 소프트웨어 국산화- ① 배경
[137호] 2021년 09월 01일 (수) 허수징 economyinsight@hani.co.kr

허수징 何書靜 <차이신주간> 기자

   
▲ 인터넷으로 연결해 태블릿피시와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는 수치분석 소프트웨어 매트랩. 미국이 중국 인민해방군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제재하는 바람에 하얼빈공대 등에선 매트랩을 사용할 수 없다. 매트랩 누리집

중국 하얼빈공업대학이 수치분석 소프트웨어 매트랩(MATLAB) 사용을 금지당한 뒤 1년이 지났지만 대학교수진과 학생들은 만족스러운 대안을 찾지 못했다. 하얼빈공대 전자공학과 대학원생은 “대체할 국산 소프트웨어가 없어 파이썬 등 프로그래밍 언어에 의존해 버티고 있지만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미국은 하얼빈공대와 하얼빈공정대학 등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이 중국 인민해방군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거래제한 명단’에 올렸다. 이후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학교 계정으로 매트랩에 접속할 수 없었다. 앞서 2019년 5월 미국 상무부에서 화웨이를 거래제한 명단에 포함했다. 화웨이는 최신 버전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를 사용하지 못했다. 기초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중국 목을 조이려는 미국 압박의 영향이 두 사건을 통해 현실화했다.
하얼빈공대 공정물리학 박사는 “공과대학 학생들은 도면 설계나 수치분석 등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매트랩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매트랩은 여러 학과에서 사용하는 함수를 집대성했다. 딥러닝과 스마트자동차 등 핵심 분야에 적용해 검증 속도를 단축했다. 매트랩을 대체할 중국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개발자 쉬빈은 “매트랩은 수학적 기초가 간단해 중·고등학생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함수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며 “36년 동안 6천 개가 넘는 함수를 담았고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소프트웨어는 중국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다. 특히 매트랩처럼 연구개발과 설계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외국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종사자들도 중국산 제품에 대해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2021년 5월 발표된 <중국 산업용 소프트웨어 백서(2020)>에 따르면 생산제어·경영관리·유지보수 분야에서 중국산 소프트웨어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0%, 70%, 30%였다. 반면 연구개발과 설계 분야는 외국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95%였다. 이 백서는 중국 산업기술소프트웨어연맹이 국가 공업정보화부의 지도 아래 작성했다.
연구개발과 설계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종류는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컴퓨터지원설계(CAD)와 컴퓨터이용공학(CAE), 컴퓨터지원제조(CAM) 등 보조 도구로 쓰는 것 외에 수치분석 소프트웨어와 산업 핵심 경험을 집대성한 소프트웨어도 있다. 대형 사업을 진행할 때면 각 분야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종류만 100여 종에 이른다.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향한 제재 수위를 높이자 중국 산업용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거세졌다. 2021년 5월,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원사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독창적이고 주도적인 과학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며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용 소프트웨어 등 여러 분야를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중요한 정책 신호로 받아들였다.
투자자들은 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에 주목했다. 2021년 3월 ‘국산 CAD 1호’ 종목으로 평가받는 중왕소프트(中網軟件)가 내국인 전용 A주시장에 상장됐다. 주가가 발행가 대비 3배 가까이 올랐고, 주가수익률은 200배를 넘었다. 시장에서는 중왕소프트 제품 구성이 중국산 CAD, CAE, CAM 등 소프트웨어 중심이고 외국기업 독점을 타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마땅한 투자 대상이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더욱 관심을 받았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제조사 엠피리언테크놀로지(華大九天)가 상장을 준비하자 시장의 기대가 커졌다. “세계 최고 수준과 격차가 있지만 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투자할 다른 기업이 없기에 중왕소프트가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한 투자자는 A주시장의 현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책과 자본이 움직였다고 해도 산업용 소프트웨어 부문을 육성하려면 긴 과정이 필요하다. 산업용 소프트웨어는 대중적인 소비 분야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복잡하다. 알고리즘 난도가 높고 수많은 업계 데이터와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 소프트웨어 업체가 쉽게 개발할 수 없다. 지난 60년간 선두 외국기업은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기본 기술과 업계 지식, 시장 생태계 등 모든 분야에서 비교적 높은 진입 장벽을 구축했다.
가오수밍 저장대학 교수는 중국의 산업용 소프트웨어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리리라 내다봤다. 40년 가까이 CAD 소프트웨어를 연구한 그는 “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어려운 기술과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이 길고 시장이 협소하다. 그만큼 높은 수준의 산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외국 소프트웨어를 보면 그 분야 대기업이 직접 개발한 사례가 많다. 기업이 제품을 개발하면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개선한다. 일종의 부산물인 셈이다.”
쉬빈은 매트랩의 국산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1년 전 하얼빈의 두 대학에서 매트랩 사용이 금지된 뒤 일부 교수와 학생이 중국산 대체 사업 ‘트뤼페’에 일부 알고리즘을 제공해 크게 고무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트랩을 대체할 만한 제품을 바로 개발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우선 ‘0에서 1까지’ 개발한 다음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개선해 4~5년 안에 출시해도 매우 성공적이다.”

   
▲ 2020년 6월 열린 중국 IC 디자인 대회에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제조사 엠피리언테크놀로지가 업계에 탁월한 공헌을 한 EDA 회사로 선정됐다. 엠피리언테크놀로지 누리집

군수 분야 수요
미국의 기술 봉쇄 위협을 가장 먼저 감지한 곳은 중국 군수산업이다. 이 분야에서 국산화의 필요성을 제일 먼저 제기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는 장제는 “2018년이 분수령이었다”고 말했다. “군수산업의 국산화 대체 수요가 명확해졌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2009년에 설립됐다. 주로 다중물리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하고 군대에 모의훈련 플랫폼을 제공한다.
다중물리시뮬레이션 기술은 CAE 소프트웨어의 핵심이다. 힘, 열, 빛, 전자 등으로 사용자에게 물리적 현실과 비슷한 모의환경을 제공한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다. 앞의 백서 작성 과정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 중국 시장의 상위 10개 CAE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가운데 중국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또 주요 산업용 소프트웨어의 국산화 비율도 매우 낮았다.
장제에 따르면 2018년 이전까지 군수 분야에서 국산화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미국은 중국 기업, 특히 군수기업에 기술 봉쇄를 강화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동안 200개 넘는 중국 기업과 기관을 거래제한 대상으로 지목했다. 항공우주, 원자력, 선박 분야가 포함됐다. 거래가 제한된 제품은 허가받아야 수출할 수 있고, 사실상 허가 과정에서 문이 닫힌 상태였다.
군수산업은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분야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관계자는 말했다. “군수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국산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국산제품의 안전성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국산제품으로 대체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부 제품은 대체할 수 없다. 군수 분야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운영 플랫폼과 제품 관리 등 진입 문턱이 낮은 소프트웨어부터 국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산화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장제의 회사는 군용 항공기 모의비행장치 납품 계약을 수주했다. 매우 신중한 군용기업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모의비행장치의 핵심은 다중물리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지금까지 캐나다 기업 CAE 등 외국기업 제품을 구매했다. 장제는 “수주한 물량이 생산능력을 초과했다”며 “앞으로 민간항공 시장도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간 분야는 아직
군수 외에 일부 민간 분야 국유기업도 대책 마련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사 산수커지(杉樹科技)는 2019년 이전까지 고객사의 대부분이 민영기업과 외국기업이었다. 하지만 중-미 관계가 악화되자 국유기업이 먼저 찾아와 미국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방법을 문의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산수커지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박사 4명이 설립했다. 고객사에 중국산 솔버(Solver)를 제공한다. 기본 소프트웨어인 솔버는 복잡한 문제를 수학 모델로 만들고 최적의 해답을 제시한다. 산수커지의 공동창업자 거둥둥은 전력계통 최적화를 사례로 들었다. “외국기업의 소프트웨어는 4초 만에 결과를 계산하는데 산수커지 제품은 8초가 걸린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체 효과가 있다.”
민간 분야에선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 국산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중국 기업이 외국 개발업체와 경쟁해 사업을 수주하기도 쉽지 않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관계자는 “민간 산업에서 국산품 대체 수요가 있을지 명확하지 않고 이 시장에 진입하려면 외국 업체와 서비스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민간 산업은 미국의 수출제한 압박을 체감하지 못한다. 또 중국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여러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 석유설계원 임원은 “국내에서 설계한 소프트웨어가 공급망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석유와 천연가스 분야에서 지속해서 국산화를 추진했다. 설비와 시스템공학에선 국산화 비율이 높다. 하지만 3차원(3D) 설계와 컴퓨팅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외국산을 쓴다. 일부 핵심 공정에선 외국 솔루션을 통째로 들여온다. “외국 기술은 어느 정도 성능을 보장한다. 천연가스 탈황 설비를 예로 들면, 세제곱미터(㎥)당 20밀리그램(㎎) 이내로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국산 제품은 60㎎ 정도다.” 게다가 국산 소프트웨어는 국외에서 인지도가 낮아 국제 입찰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 ‘중국산 CAD 1호’ 종목으로 평가받는 중왕소프트의 홍보 이미지. 2021년 3월 상장된 이 회사의 주가는 발행가 대비 3배 가까이 올랐다. 중왕소프트 누리집

CAE 도입 단계
일부 소프트웨어에선 제품 개발이 아니라 수요 부족이 문제다. CAE 소프트웨어는 중국에서 사용률이 낮은 편이다. 본격적으로 수요가 형성되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CAE를 사용해 모의환경에서 제품을 평가하면 경험에 의존하거나 제품을 반복 생산해 시행착오를 겪는 것보다 낫다.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류샤오펑 윈루커지(雲廬科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국내 대다수 제조업체는 CAE 시뮬레이션을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CAE 시뮬레이션 솔버 커널(운영체제 핵심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연구진이 중국과학원과 칭화대학 출신이다. 과거 CAE 소프트웨어를 개발·보급했지만 시장이 작아 포기했다. 지금은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인프라 ‘디지털 트윈’(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구현한 것) 분야로 전환했다.
류샤오펑은 “CAE 소프트웨어 사용자는 역학과 수학 기초, 시뮬레이션 컴퓨팅 경험이 있어야 한다”며 “국내기업은 CAE 부서에 투자 경험이 부족하고 종사자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기업의 CAE 도입 목적은 디자인 개선이다. 직접 사용해보면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례가 많다. 오히려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어 CAE의 효용에 회의적인 기업이 늘었다.”
최근 비용 절감을 꾀하는 일부 제조업체에서 CAE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국내 자동차 전장부품 제조사 직원은 “얼마 전 수백만위안을 들여 외국 소프트웨어를 사고 전담 부서를 만들어 CAE를 사용했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시도했는데 코로나19로 비용 절감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류샤오펑은 “일부 고객사가 복잡한 문제를 의뢰해 외국의 범용 CAE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장밍쥐 민생증권 투자은행사업부 책임자는 “최근 CAE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이 이런 유형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오수밍 교수에 따르면 현재 CAE 사용률이 낮은 것은 산업 수준과 연관돼 있다. CAE 소프트웨어는 제품의 시행착오 기간을 단축한다. 혁신적인 제품일수록 CAE가 필요하다. 대다수 중국 제조업체는 제품의 혁신성이 높지 않아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다. “산업 수준이 높아지면 CAE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 財新週刊 2021년 제26호
解困工業軟件
번역 유인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