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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적 유럽연합 실패할 수밖에 없다
[INTERVIEW] 독일 ‘좌파’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의 이색 주장
[137호] 2021년 09월 01일 (수) 랄프 키르히 economyinsight@hani.co.kr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74·Wolfgang Streeck)은 독일 쾰른에 있는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이다. 그는 자신을 좌파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보수주의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이해하며, 영국의 브렉시트를 찬양하고, 유럽에서 개별 민족국가의 재부흥을 바란다. 도무지 좌파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장을 펴는 그의 뜻은 무엇일까.

랄프 키르히 Ralf Kirch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슈피겔> 기자

   
▲ 볼프강 슈트렉(74)은 독일 쾰른에 있는 막스플랑크사회 연구소에서 1995∼2014년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소장이다. 쾰른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기도 한 그는 영국 좌파잡지 <뉴레프트리뷰> 필진으로 참여해 이름을 떨친 독일의 대표 좌파 지식인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당신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추종자인가.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할 줄 알았다.
최근 출간한 당신의 책 <전 지구주의와 민주주의>에 나오는 많은 구절은 유럽연합에 비판적이며 포퓰리즘(대중영합)적인 오르반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 문제는 유럽연합(EU) 같은 위계적 정치체제의 통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런 체제의 통치력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중앙집권화와 위계적 관리를 그만두고 지방분권화와 수평적 협력으로 경로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내 책은 이런 문제를 연구했고, 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 볼프강 슈트렉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오른쪽)이 <조종을 울린다> <시간벌기> 등의 저서를 놓고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학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과도한 통일은 유럽연합 붕괴 불러올 것
-그렇다면 헝가리의 오르반, 프랑스의 마린 르펜,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가 유럽의회에서 일으키려는 우파 진영의 ‘집합운동’(여러 정치세력이 같은 목적을 두고 연합하는 현상)도 환영하는가.
유럽의회 차원에서 유럽연합이 나아갈 길에 관한 전략적 문제를 논의한다면 기본적으로 유럽연합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유럽연합이 과도하게 통일돼 있고 그 때문에 망할 것이다.
오르반은 유럽연합을 소비에트연방과 비교한다. 당신도 망해가는 제국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장된 주장이 아닌가.
정확하게 읽어주면 좋겠다. 유럽연합은 군사적 수단을 쓰지 않고 자신의 내적 결속을 지켜야 하므로 나는 ‘자유로운 제국’이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하려면 활용 가능한 자원이 기본적으로 돈과 훌륭한 말솜씨다. 꽤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 ‘자유로운 제국’이 펼치는 중요한 정치 도구는 엘리트 관리인 것이다.
-무슨 뜻인가.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경우, (유럽연합 권력) ‘중심’에 친화적인 정치적 엘리트가 소속 국가에서 정권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주권 국가들의 공동체다. 브뤼셀(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곳)이 마음에 안 드는 정권을 폭력으로 내쫓으려 한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유로화 위기에 처했을 때 유럽연합이 그리스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해보라. 혹은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연합 국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해 재정정책 전문가인 마리오 몬티가 이탈리아에서 정권을 잡은 것을 생각해보라. 현재는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한 유럽연합의 지원을 끊거나 줄여 정권교체를 유도하려는 노력을 ‘중심’이 하고 있다. 폴란드의 경우, 도날트 투스크(2007~2014년 재임한 전 폴란드 총리)에게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걸었다.
-브뤼셀은 법치국가의 메커니즘을 통해 유럽연합의 재원이 목적과 다르게 오용되지 않는지 검토한다. 여기에 잘못이 있는가.
이 (우파) 정부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됐다. 폴란드의 집권 우익 정당인 ‘법과 정의당’은 도날트 투스크의 정당 ‘시민연단’(제1야당)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벽에 부딪혔기 때문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제국’의 통치가 가진 한 가지 문제는 개별 국가의 정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외부나 위에서부터 처방하려 한다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유럽연합의 개입 시도는 오르반에게 선거 정치 측면에서 오히려 혜택을 줄 것이다.
-유럽연합은 특히 헝가리에서 사법부 독립성이 침해되고 언론 자유가 짓밟히는 점을 비판한다.
헝가리 내부의 그런 갈등에 판결을 내리는 것이 유럽연합의 과제인지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그 나라 국민이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도 마찬가지다. 이 중 어떤 나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외부에서 유입된 유럽의 획일화된 처방으로 통치할 수 없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모든 위기를 잘 넘겼다. 화폐통합이 그랬다.
간단히 말해, 유로화는 독일인에겐 번영의 원천이고 지중해 지역에는 경제적 낙후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다. 유로화는 유럽을 통합한 것이 아니라 분열시켰다. 적어도 2008년 재정위기 이래 유럽의 재정정책은 거듭되는 원조나 위기관리로 화폐통합(체제)을 그때그때 땜질해왔을 뿐 근본 문제에 손대지 않았다.

   
▲ 2017년 4월4일 볼프강 슈트렉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명예소장(왼쪽)이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강연을 마친 뒤 청중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보스턴대학 제공

“유로화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좋았다”
-유럽연합은 재건기금을 설립함으로써 연대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독일에서 강력한 동의를 얻어 결정됐고, 이탈리아에서 (이를 계기로) 정치 분위기가 유럽연합 친화로 바뀌었다. 이건 성과가 아닌가.
그 기금은 이탈리아에 정말 필요한 정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7500억유로(약 1010조원)면 상당히 큰 금액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회성 지원일 뿐이다. 유로화 체제를 유지하려면 유로화로 손해 보는 지역에 항시적으로 이전해줘야 하는데,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은) 이런 지원이 아니다. 독일이 옛 동독 지역에 했던 것과 같은 항시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십 년간 화폐통합 체제의 긴축재정 처방 아래 축소된 교육, 공공행정, 보건체제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서 새로 구축할 수 있다.
-유로화를 폐지하려는가.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다. 지금 없애버리기는 아주 복잡해졌다. 1990년대 중앙집중화와 통합의 열광 속에서 회원국들은 자국을 가장자리로 내몰았다. 거기에서 다시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헝가리나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도 유럽연합에 있는 편이 낫기 때문인가.
그 나라들은 유럽연합에 속하는 것이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사회를 형성하려는 요구와 얼마나 오래 합치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있다. 이는 지속해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중앙집권 세력과 지방분권 세력 사이에 비생산적인 줄다리기를 유발한다. 남쪽에도 동쪽에도 서쪽에도 절단선이 있으며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절정에 이른다.
-당신은 국제질서를 다시 (개별) 민족국가 중심으로 세우자고 호소한다.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지방분권화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 지역 스스로 통제와 (그에 따른) 지역의 책임성을 부활시키자는 요구, 상이한 삶의 방식과 경제 운영 방식을 허용하는 여백에 대한 요구가 전세계적으로 있다고 본다. 개별 민족국가는 세계사회의 복잡성을 분해해 민주적으로 통치하게 하는 유일한 단위다. 칸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구부러진 나무가 그나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나무다.
-당신은 ‘주권국가들의 유럽’(개별 국가의 주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국가 간 협력체로서 유럽을 상정하는 구상으로, 개별 국가 위에 존재하면서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는 공동체 같은 유럽 통합은 거부함)이란 오래된 구상을 하고 있다.
나로서는 ‘모국들의 유럽’이라 해도 좋고, ‘유럽 알라카르트’(개별 국가가 화폐·외교·국방·난민·치안·사법정책 등에서 원하는 협력 분야만 골라 통합체를 이루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주권을 행사하는 구상)라고 해도 상관없다. 유럽인이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별로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호소하는 구상은 유럽 국가 (통합)체제가 제국적 위계질서가 아닌 이익공동체적 협력질서로 운영되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유럽 국가 체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위한 똑같은 획일화한 시장이 아니라, 유럽 각국이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공동으로 수행하는 사업, 즉 선택별·분야별·사업별로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어야 한다. 이것이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이며 기술관료 형태의 전지구화와 탈민족화에 갇혀 있다가 새로이 나타나는 시대 경향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유럽 통합의 이전 단계인 유럽경제공동체 같은 것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듯하다.
‘돌아간다’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단계별로 경제정책 구상의 변화에 영향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지닌 여섯 나라가 있어 몇몇 선택된 경제 부문을 공동 관리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건 유럽인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좀더 많은 경제협력을 원했으니까. 무엇이 문제인가.
그 ‘유럽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그로부터 여러 단계의 변형을 거치다가 1990년대에 보편시장(유럽 단일 시장)이 됐다. 어떤 대중민주주의적 간섭도 치밀하게 차단한, 헌법 제정 기관 같은 유럽 법원이 이 과정에 관여했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몇몇 협약으로 재화와 용역, 자본과 노동을 아무런 방해 없이 유통하는 경제헌법을 확정했다. 화폐통합을 시행하면서 더 나아가 독일식 경화(Hard Currency·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통화)에 자국을 예속시키고, 재정정책에서 자신이 가진 민주적 결정의 자유를 폐기하는 엄격한 규정을 받아들였다.
-당신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건 ‘작지만, 너무 작지 않은 민주적 주권국가’인 것 같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크기여야 하는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크기 같은 것을 계산하거나, 심지어 국가들의 체제를 위부터 재조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국가들은 중요한 장점을, 큰 국가들은 중요한 단점을 각각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큰 국가들은 많이 분산돼 있지 않으면 적절하게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들은 민주주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작은 국가들보다 다른 국가를 공격할 가능성도 더 크다. 그 나라들은 그들의 사회적 결속을 폭력으로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현재보다 더 확대되거나, 우리의 중앙집중성이나 기술관료 성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나 덴마크 같은 작은 나라는 어떻게 하는가. 그들이 어떻게 중국 같은 나라를 마주해야 할까.
전 지구적이던 미국 제국의 종언 이후, 오늘날 세계에 세 지역이 부상했다. 문제는 이 지역들이 통일적으로, 아니면 상이하게 조직돼야 하는가다. 초국가적 질서 대신 협력하는 지방분권적 국가 간의 질서로 이루어진 유럽을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유럽 대륙이, 프랑스 모델처럼 세계 지배욕을 지닌 비슷한 거대 체제로 변하지 말고, 다른 두 거대 국가에 대해 구조적 등거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당신의 답은 뭔가.
우리에게 유럽을 지방분권화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국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제국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독일과 관련 있다. 독일이 아니고는 군사적 유럽의 초지역적 권력을 (투사할 국가를) 떠올릴 수 없다. 독일은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끝냈고, 곧 사헬지역(아프리카 북부 사하라사막과 중부 사바나기후 지역 사이에 띠 모양으로 분포하는 반건조 사막화 지대) 개입을 끝내고 이후 미국의 이름으로든 프랑스의 이름으로든 국외 문제에 개입할 의사가 없을 것이다. 잘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개별 국가의 주권
-브렉시트가 개별 민족국가의 주권을 다시 획득하기 위한 성공 사례라고 보는가.
내게 중요한 문제는, 정부가 자신을 선출한 국민에게 민주적으로 보고할 의무를 지는가다. 이는 국가의 주권이 전제되지 않으면 공허한 문제다. 이제 영국 정부는 ‘브뤼셀이 이걸 못하게 하고, 유럽 법원은 저걸 못하게 한다’ 따위의, 브렉시트 이전에 전형적으로 사용한 핑계를 더는 댈 수 없게 됐다.

ⓒ Der Spiegel 2021년 제29호
Die EU ist zum Scheitern verurteilt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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