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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브로너의 ‘거대한 생각’
[경제와 책]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윌리엄 밀버그 지음 홍기빈 옮김 미지북스 | 2010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 교수는 ‘새로운 산업국가 또는 풍요의 아들’이란 제목을 단 짧은 서평에서 존 K. 갤브레이스 교수의 책 <새로운 산업국가>(1967)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과 태도를 넌지시 꼬집었다. 그는 갤브레이스 교수가 펴내는 책마다 대중적으로 폭넓게 읽히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는데, 갤브레이스의 책이 유독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 경제학자들이 스스로 구축한 학문적 기득권 혹은 단순한 게으름 등이 한 원인일 수 있지만, 좀더 근원적인 이유는 경제학자들의 질투심이라고 솔로 교수는 말한다. “갤브레이스는 톡특한 경제학자이다. 그의 책은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읽히고, 또 즐겁게 읽을 만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중요한 대중적 인물이며, 전세계적으로 명성도 높다. 반면, 강단의 경제학자들은 갤브레이스에게 모종의 질투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의 책을 폄하하는 불편하고 복잡한 심사를 갖고 있다.”
   
 

솔로의 얘기를 좀더 해보자. 그는 “갤브레이스의 책은 책상에서 읽을 만한 경제학 전문서적이 아니라 저녁식사 테이블에서 이야기할 만한 내용을 담은 대중적 책”이라며 “갤브레이스는 ‘거대한 생각’(Big Thinking)을 하는 유형의 독특한 경제학자인 반면, 일반적인 경제학자 집단은 ‘작은 생각’(Small Thinking)을 하는 유형이다”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집단은, 만약 개인과 기업의 소득세가 오늘 10% 인상하는 정책이 의회에서 통과되면 가계 생산과 자동차 생산이 얼마나 변할 것이며 이것이 물가지수와 자동차산업의 기업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따지는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거대한 생각을 하는 갤브레이스의 책은 바로 그 특징 때문에 경제학계보다는 그 바깥에서 훨씬 더 많은 독자를 지니는 것이다.
솔로가 말한 “경제학자들의 질투와 무시”를 갤브레이스처럼 어느 정도 받으면서 동시에 대중적 명성이 높은 또 한 명의 경제학자는 로버트 L. 하일브로너가 아닐까싶다. 하일브로너는 자신의 최고 인기작인 <세속의 철학자들>에 이어 <자본주의…>에서도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특출난 스토리텔러로서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19세기 말 미국 자본주의 발흥기에 마크 트웨인이 이름 붙인 이른바 ‘금칠갑 시대’(Guilded Age)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당시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운 연회 이야기가 나오는데, 순전히 부의 냄새를 빨아들이는 즐거움을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이들은 산책 나갈 때 1만5천달러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개목걸이를 씌운 강아지를 데리고 길을 나서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1962년 출간된 뒤 40여 년 동안 개정과 추가를 했다. 세속적 이야기와 학문으로서의 경제사가 적절하게 교직된 대중적 경제교양서이다. 옮긴이는 해제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 역사를 다룬 수많은 책과 다른 독특한 성격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며 “1960년대 이후 지난 40여 년은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격이 크게 변화한 역동적 시기로, 개정판을 12번이나 내면서 지난 40년간의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와 저자의 사유가 나이테처럼 빼곡히 적혀 있다”고 쓰고 있다.
하일브로너의 견해와 사유가 가장 흥미진진하고 날카롭게 펼쳐지는 대목은 제6장 ‘대공황’ 편이다. “대공황이라고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굳이 애써 관찰한다면 그전보다 길거리의 사람 수가 준 것을 볼 것이며, 문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띌 것이며, 거지들이 확실히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여기저기에 늘어선 무료급식 줄이 보일 것이며, …” 이렇게 대공황을 묘사한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그러나 무심한 관찰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겠으나, 국내총생산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어버렸다. 그 결과 실업률이 하늘로 치솟았다”며 “문제는 농업이 계속 정체되어 있는 동안 제조업 부문은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제조업이 생산량을 늘려나가는 중에 온 나라 인구의 5분의 1을 점하는 농업 인구의 구매력이 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으므로, 결국에는 제조업의 발전 또한 잠식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대공황을 설명한다.
하일브로너는 1929년 당시 경제가 취약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분배·농업·제조업의 관계 속에서 간명하고 날카롭게 설명한다. “생산성 증가에서 나온 이득을 저소득층에게 분배하지 못한 대신 잠재적으로 지출하지 않으려 드는 사람들의 소득이 크게 불어난 광경에 주목해야 한다. …1929년에 자본재 산업들이 총노동력에서 차지하는 고용의 비율은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이 산업들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실로 막대한 것이므로, 1933년경 전체 실업의 3분의 1은 이 산업들의 침체에 기인한 것이었다. 대공황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밀턴 프리드먼도 슈바르츠와 함께 대공황의 화폐적 측면(통화의 역사)을 연구한 적이 있고, 갤브레이스와 벤 버냉키도 대공황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대공황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이토록 짧으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는 통찰력 있는 글을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제5장 ‘산업기술이 가져온 충격’에서는 ‘자본주의 경제의 꽃’으로서 모든 기술이 집약된 자동차의 역사가 흥미롭게 언급되고 있다. “헨리 포드라는 이름의 32살 기계공이 자신의 첫 번째 사륜차를 판매한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 경제 전체가 실로 놀랄 만큼 ‘자동차화’됐다. 즉, 바퀴가 달려 스스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없이는 아예 작동조차 할 수 없는 경제가 됐다. 만약 어떤 이상한 일이 생겨서 우리의 자동차 군단이 일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중세의 파멸적인 기근만큼이나 심대한 사회적 재난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1974년과 1979년 아랍의 석유 봉쇄가 벌어졌을 때 산업 세계 전체가 뒤흔들린 것이 어찌 놀랄 일이겠는가.”
다른 경제사를 다룬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도표도 군데군데 제시되고 있다. 포드자동차의 매출과 가격(1907∼17)에 대한 표가 그중 하나다. 1907년 포드자동차 ‘모델K’는 판매량은 6398대이고, 가격은 대당 2800달러였다. 그 뒤 ‘모델T’가 등장했는데 1908년 모델T의 가격은 850달러, 판매량은 1만607대였다. 그 후 모델T는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912년에는 16만8304대, 가격은 600달러로 떨어졌다. 1916년에는 무려 73만41대가 팔리면서 가격은 360달러로 더 떨어졌다. 대량생산뿐 아니라 대량 소비를 통해서도 자본 축적이 가능해진 이른바 ‘포드주의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하일브로너가 보기에 ‘자본주의 황금시대’(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 년)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시 경제에서 시작해 냉전 시기까지 이어진 군수 부문이었다.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등 대량 소비된 온갖 내구재 품목들의 기술 발전을 가능케 한 것도 바로 군수 부문이었다. 이것이 서구 세계 전반과 특히 미국 경제의 성장에서 깊고도 오래 지속되는 추동력을 제공했다.” 황금시대를 연 또 다른 축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의 최혜국 조항 △자본-노동 간 협약(Accord·생산성 협조를 통해 임금 몫과 이윤 몫의 일정한 유지를 가능하게 한 타협)이었다. 이렇게 휘황하게 빛나던 황금시대가 왜 녹슬기 시작했을까?
제10장 ‘황금시대, 종말을 고하다’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일브로너는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의 20년간은 희망과 위대한 성취가 가득한 시대였건만, 지구 경제의 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무력감만 가득 안겨주고 끝난 시대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다음에 나올 장들이 어떤 제목을 달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이제 우리가 중요한 전환점에 도착했음을 독자 여러분도 느낄 것이다. 이제부터 독자들은 시야와 관점을 널리 확장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일브로너의 책이 왜 매번 대중적 인기를 끄는지 그 비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일브로너는 “이 책은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를 발견해나가는 과정”(379쪽)이라고 말한다. 
하일브로너는 자본주의 문명 비평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가져오는 여러 경제적 결과들이 어떤 것인가를 보기 위해 자동차가 가져온 충격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과는 경제적 차원의 충격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발명 능력이 갖는 파괴력 때문에 여러 면에서 심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만들어 아무렇게나 공기 중과 물속에 뿌려대는 독극물, 대기권에 뿜어대는 엄청난 열을 생각해보라. 원자력을 지배하면서 함께 얻게 된 폭발의 능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경제학 고전 옮긴이로서 홍기빈의 뛰어난 번역도 읽는 재미에 한몫 가세하고 있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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