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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거품의 데자뷔, SNS
[미디어 비평]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이봉현 economyinsight@hani.co.kr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새 천년의 달뜬 분위기도 시들해가던 2000년 3월 초. 신문사 국제부에서 야근을 하던 필자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밤, 화면은 미국 월가의 증권거래소를 비추고 있었다. 개장 종이 울리고 30분 남짓 지났을 때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인터넷 열풍을 타고 나스닥 지수가 거래소 설립 29년 만에 처음으로 5천 포인트를 돌파한 것이다. 국제부 야근자의 ‘벗’인 <AP> <로이터> 등 통신사 단말기는 ‘찍찍’ 소리를 내며 긴급 뉴스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 떠들썩함이 ‘끝물’이었다. 1만 포인트까지 단숨에 치고 오를 것 같던 주가는 그달 10일 장중 5133포인트를 찍더니 수직 낙하해 일주일 만에 9% 하락했고, 1년이 지나자 반토막이 났다. 3년이 채 안 된 2002년 10월에는 1108.49포인트로 거의 5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씁쓸한 닷컴 열풍의 기억
세기말의 인터넷 열풍은 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을 순식간에 구름 위로 들어올렸다 땅으로 패대기쳤다. 멀리 갈 것 없이 국내 기업만 해도 여러 사례가 있다. ‘골드뱅크’라는 회사는 별다른 기술도 없이 ‘광고를 보면 돈을 드립니다’는 사업모델 하나로 1999년 말 시가총액이 4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대에 걸맞은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하던 골드뱅크는 결국 2002년 김진호 대표가 공금횡령으로 구속되며 ‘신화’의 막을 내린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새롬기술’이란 회사는 한층 더 명암의 대비가 극명했던 경우다. 새롬의 주가는 1999년 하반기, 불과 석 달 사이에 30배 가까이 올랐다. 다이얼패드로 미국 인터넷전화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호재였다. 당시 신문은 ‘9월에 주당 7천원에 1억원어치 새롬기술 주식을 산 한 노총각이 12월13일에는 26억원의 주식을 가진 부자가 돼 있다’고 소개했다. 눈앞에서 돈이 날아다니는 이런 광경에 평범한 월급쟁이와 주부 가릴 것 없이 ‘닷컴’이나 ‘인터넷’자가 붙은 벤처기업에 투자하려 조바심을 냈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그 뒤 1~2년 만에 빈손이 된다.
   
‘우리파워인컴펀드’ 피해자들이 2008년 10월10일 오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들어가려 하자 청원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다.

닷컴 거품의 붕괴는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시대를 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내린 것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방법으로 인터넷 거품의 후유증을 치료하려 애썼다. 덕분에 한동안 성장세가 회복되고 물가도 안정된 ‘골디락스’(Goldilocks) 신경제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이는 부동산 쪽의 거품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2008년에 곪아터진 거품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부동산보다는 ‘해외 펀드 거품’ 붕괴의 충격이 더 강했다.
외환위기로 평생직장도 사라지고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돈 없으면 죽겠다’는 위기감이 든 국민은 너도나도 ‘재테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에서 비롯된 ‘부자 아빠’ 신드롬과 히트한 광고문구 ‘부자 되세요’로 상징되는 재테크 열풍은 펀드 투자로 이어졌다. 집집마다 적립식 펀드 하나 들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가 되면서 2003년 말에 19만 좌에 불과하던 주식펀드 계좌가 4년 뒤인 2007년 말에는 171만 좌로 늘었고, 9조4천억원이던 주식펀드 수탁액도 10배가 훨씬 넘는 116조4천억원으로 늘어난다. ‘적립식’이란 상품으로 이런 흐름을 한발 앞서 이끈 증권사 미래에셋은 2007년 여름 전체 주식펀드 수탁고의 34%를 보유할 정도로 커져 ‘금융권력’으로 불리게 된다. 중국 모멘텀에 푹 빠진 미래에셋이 ‘대장주’ 삼성전자를 쳐다보지도 않자, 애가 탄 주우식 삼성전자 IR 담당 부사장이 박현주 회장을 찾아와 고개를 숙인 것도 이때의 일이다.
미래에셋이 이끈 펀드 붐은 해외 펀드 투자, 그중에서도 중국 펀드 투자 열풍으로 이어졌다. 박현주 회장은,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런 버핏 같은 이도 과열을 경고하며 중국에서 발을 빼던 2007년 하반기에도 중국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투자를 밀어붙였다. 펀드 열풍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 2007년 10월에 발매된 이 펀드는 투자처를 미리 공개하지 않아 ‘묻지마 펀드’란 말이 있었지만, 발매 10일 만에 4조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말 그대로 ‘강아지를 안고 객장에 온’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쌈짓돈을 묻은 인사이트 펀드는 회장의 소신대로 중국 주식에 ‘올인’했다. 하지만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말에는 원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걸 확인하게 된다. 2008년 한 해에만 펀드 투자자들은 해외 펀드에서 35조원, 국내 펀드에서 29조원을 날렸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원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국내 주가지수가 2100포인트(코스피 기준)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동아시아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자 갈 곳 없는 국제 유동성이 몰려 들어오는 게 상승의 가장 큰 이유다. 항상 그렇지만 주가가 오를 때 개인 투자자의 고민은 새로 시작된다. “다시는 주식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던 2년 전의 처절한 다짐 탓에 아직은 안전자산 근처에서만 서성대고 있지만, “누가 어느 주식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될 때 다시 한번 시장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거품’에 견제구를 던지지 못하는 언론이여
모든 금융 거품에는 모멘텀이 필요하다. 특히 1800년대 중반의 철도 투기, 1900년대 초반의 라디오 투기처럼 기술 발달이 인간 생활의 사회·경제적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란 비전과 결합할 때 투기는 휘발유를 끼얹은 것처럼 타오른다. 투자할 곳을 찾아 세계를 배회하는 국제 금융자본이 새로운 거품의 모멘텀을 찾아낸다면 이번에는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일 가능성이 크다. 5억 명의 가입자를 가진 SNS 사이트 페이스북은 기업 가치가 500억달러(약 58.5조원)로 평가됐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5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인 트위터는 지난해 하반기 기업 가치가 2배로 뛰며 37억달러(약 4.3조원)로 뛰었다. 이들 SNS와 이를 기반으로 한 ‘그루폰’ 같은 마케팅 회사에 기관투자자와 벤처투자자들이 몰리며 1990년대 말의 ‘닷컴 거품’을 떠올리게 하는 ‘SNS 거품’이 우려된다는 보도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티켓몬스터’ 같은 소셜 커머스 업체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기반의 무료 메신저 업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이롭게 하고 생활을 바꾸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기술 발전을 과장해 온통 미래를 장밋빛으로 색칠하는 데서 거품은 시작된다. 이 지점에서 언론은 ‘견제구’를 던기기보다는 항상 거품의 ‘치어리더’ 노릇을 했다. 1990년대 말 언론은 ‘신경제’ 이론 같은 것을 앞세워 수익을 내본 적이 없는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는 것을 옹호 또는 방조했다. 2000년대 후반 언론은 ‘중국 모멘텀’이니 ‘한국의 워런 버핏’이니 하는 용어로 무모하게 중국 펀드를 비롯해 해외 펀드 투기를 조장했다. 최근 스마트폰, 스마트 TV 등 ‘스마트’ 시리즈와 소셜 네트워크, 소셜 커머스 등 ‘소셜’ 시리즈가 부각되는 한쪽에 ‘모바일에 기반한 소셜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유의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사들이다. 어쩐지 지난 거품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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