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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
[FINANCE] 금융·자산시장의 현주소
[136호] 2021년 08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1년 7월13일 소닉셰어스의 창업자 폴 소마가 미국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개장 벨을 울리고 있다. 최근 주가가 급등하면서 개인투자자가 크게 늘었다. REUTERS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신세계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 공습의 대응책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자산시장을 말한다.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하지만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그것은 정도가 더 크다. 가상자산은 주춤하지만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여전하다. 특히 주식시장은 평균을 몇 배 웃도는 과매수 상태다. 미국으로 범위를 좁히면 투자자 열기가 2000년 닷컴 거품 때보다 훨씬 뜨겁다. 한국 시장도 같다. 최고가 경신이 계속되고 있다.
미지의 바다다. 당연히 언제 폭풍우가 올지 모른다. 그럴수록 현재 상황에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최소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어떤 국면인지 알아야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열기
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자는 급증했다. 미국 가계와 비영리기관이 보유한 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으로 미국 개인들은 보유 자산의 44%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2000년 사상 최고치인 46%에 근접한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신한은행이 4월20일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29.9%이던 주식투자 비율이 2020년 38.2%까지 치솟았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거의 4명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개인들의 주식시장 참여는 왜 이렇게 늘어났을까? 그 돈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시장 참여 종잣돈은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에 더해 정부 재정지출 확대의 부산물이라 봐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가계에 현금을 공급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소비, 일부는 저축을 했을 것이다. 나머지가 투자에 쓰였다. 물론 초저금리도 한몫했다. 빚내어 시장에 진입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른바 ‘빚투’ 열풍은 글로벌 현상이 됐다. 투자의 일반화는 넘쳐나는 돈 때문이다. 실물경제 파괴로 갈 곳을 잃은 돈이 자산시장으로 몰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주식거래 플랫폼의 발전이다. 100주 단위의 거래만 가능했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됐다. 단주 거래는 당연하고 이제는 소수점 단위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가진 돈이 적어도 투자가 가능하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투자 기회가 결정되지 않는다. ‘로빈후드’를 비롯한 주식거래 플랫폼이 이런 투자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종잣돈이 있어야 접근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도 용돈만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자연스레 시장 참여자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요즘 성인은 게임 세대다. 게임에 익숙하다. 진화한 거래 플랫폼은 주식투자를 ‘게임화’했다. 소액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그 돈을 꼭 지켜야 할 밑천으로 여기지 않는다. 게임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주식 가치의 과잉 혹은 과소 평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게임 화면이 바뀌듯 가격이 움직이면 충분하다. 투자보다는 게임하듯 즐기는 거래가 늘었다. 시장 참여자가 폭증한 이유다.

   
▲ 2021년 6월24일 백악관에서 1400조원 규모의 인프라투자 예산에 초당적 합의를 마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의회 지도자들과 함께 나오고 있다. REUTERS

게임화한 주식투자
본능도 더해졌다. ‘포모증후군’, 즉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은 인류의 유전자에 깊숙하게 새겨 있다. 원시시대에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속성이 여전히 인류의 뇌를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시장 참여자를 늘렸다.
투자자들의 ‘올인’ 현상이 정점에 이른 상황이다. 이에 따라 주식의 시장가격과 기업가치가 역사적 최고치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기업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극히 짧았다. 하락으로 생긴 계곡의 폭이 모든 금융시장 붕괴 가운데 가장 좁았다. 중앙은행의 극한 개입 덕분이다. 가격은 모든 위기 가운데서 가장 짧은 기간에 반등했다. 최고점이 계속 높아지고 여세는 지속된다. 가격 상승으로 기업가치의 정점 또한 치솟고 있다.

위험 요소들
가장 큰 우려는 연료 고갈이다. 시장의 연료는 유동성이다. 강세장의 필수조건이다. 그 연료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진된다. 각종 경기 자극 프로그램으로 생긴 돈은 물론 대출로 확보한 돈이 주식시장에 투입됐다. 실제 미국 투자자들의 자산 배분을 보면 현재 주식 비중은 고점에 이른 상황이다.
2009년 이후 통계를 보면, 2021년 6월 말 현재 미국개인투자자연맹(AAII) 회원들의 보유 자산(주식, 채권, 현금) 가운데 주식 비중이 2017년 정점에 근접한 상태다. AAII는 1987년부터 회원들의 자산 배분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다. 회원들이 어떤 자산에 얼마를 투자하는지 추적한다. 미국 투자자들의 주식 비중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54% 정도로 저점을 찍은 뒤 현재 약 71%에 이르렀다. 2017년 12월 72%가 최고치였다. 과거 정점에 1%포인트 정도 남겨둔 상황이다.
이 비중이 더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금 비중이 14%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경기 자극 프로그램, 양적완화, 신용확대가 없다면 급증하긴 힘든 상황이다. 높아진다 해도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6월24일 인프라 투자 예산을 확정했다. 감액됐지만 8년간 총 1조2090억달러(약 140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렇게 풀린 돈의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갈 수 있다. 다만 인프라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돈은 이전 코로나19 부양책처럼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국면에서와 같은 ‘공짜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백신 접종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최악의 국면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공짜돈을 살포할 명분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1년처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몇조달러의 투입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이 아니라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개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론적으로 자산시장으로 향하는 자금이 현재보다 늘어날 확률은 높지 않다. 주식시장을 밀어올릴 추가 연료가 소진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금리 변화 가능성도 생각해볼 변수다. 금리는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금리와 금융 불안정성의 관계는 명확하다. 강력하게 지속되는 금리 인상은 자산시장에 큰 충격을 준다. 예외가 없다. 2000년 닷컴 거품 붕괴, 2008년 금융위기, 2010년 유럽 국가부채 위기, 두 차례에 걸친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 발작 등은 모두 미국의 금리 상승과 그 궤를 같이한다.
제로금리를 통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위험 자산에 대한 전례 없는 레버리지 투자를 부추겼다. 금리가 반전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시장과 경제가 얼마나 허약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부채 경제에서 금리 변화는 소비에 거의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물론 부정적 영향이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소비가 차지하는 미국에서는 그 부정적 영향이 극대화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정부는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연준은 공언한 대로 양적완화와 ‘평균물가목표제’를 통해 장기금리 상승을 제어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오더라도 금리를 제로 상태로 유지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금리 인상은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강력하게 지속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설령 금리가 오르더라도 자산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금리 인상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여전한 불확실성
시장이 지금보다 더 가열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2021년 말까진 상승 탄력을 유지할 수 있다. 큰 폭의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기간은 짧을 것이다. 금융조율사인 중앙은행이 뒷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정도와 빈도를 늘릴 수 있다. 중앙은행이 더욱 공격적으로 통화정책을 펴는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개입이 앞으로도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냐다. 누구도 모른다. 모든 조처는 반복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과잉 충전된 시장에 천문학적인 연료를 공급했다. 자산시장의 폭발은 불가피했다. 노동만으론 ‘벼락거지’를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됐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조바심은 모든 세대를 위험시장으로 내몰았다.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2021년 3월 말, 빌 황의 아케고스 사태가 미국 월가를 뒤흔들었다. 일부에서는 이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대부분은 벌써 잊었다. 월가의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였던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게 2007년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2008년에야 본격적으로 주저앉았다. 이런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 투자자라면 현재 시장이 어떤 국면에 있는지,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고점에서 가장 많이 사고 저점에서 가장 적게 산다. 기억해야 할 금언이다. 새로운 시대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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