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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연구개발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박상인의 경제직설]
[136호] 2021년 08월 01일 (일)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이석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성과평가정책국장이 2021년 6월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R&D) 예산 집행 관련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변리사회가 2021년 19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특허청에 등록한 384건의 특허를 10개 등급으로 나눠 분석했더니 가장 우수한 1등급은 단 한 개도 없었고, 2등급이 1개, 그리고 5·6등급이 절반 이상(57.8%)이었다. 사실상 출연연이 등록한 특허 대부분이 ‘장롱특허’라는 뜻이다. 
최근 10년간 사용되지 않은 특허를 의미하는 장롱특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절반 정도가 출연연에 배정돼왔음에도, 출연연 특허의 대부분이 장롱특허임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출연연이 보유한 장롱특허의 비중은 2013년 66.4%, 2014년 68.6%, 2015년 71.6%로 증가 추세였다. 
이는 출연연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기술이전 총수입은 2018년 기준 870억원이었는데, 이는 2016년 기준 미국 프린스턴대학 한 곳의 기술이전 수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6년 12월에 펴낸 <미래 성장동력 정책 평가> 보고서를 보면, 3년간 2조2872억원을 투입한 노무현 정부의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5년간 16조3706억원을 투자한 이명박 정부의 3개 분야 17개 ‘신성장동력 산업’, 약 7조5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던 박근혜 정부의 4대 분야 19개 ‘미래 성장동력 산업’ 등이 별다른 성과와 파급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 연구개발 비중은 미국·유럽보다 높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과학기술 분야 지표’(MSTI)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정부 연구개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3%로 미국(0.65%), 유럽(0.59%), 일본(0.48%)보다 월등히 높다. 그런데도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은 왜 계속 실패하는 걸까?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는 문책당할 만한 일은 피하려는 속성이 있다. 정부가 특정 분야를 육성하거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특정해 지원할 때, 이들은 사전에 객관적 지원 기준을 정하고 사후에 정량적 평가지표를 만든다.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Animal Instinct)보다 ‘기술성’이 객관적 기준으로 선호되고, 결국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기업가나 연구자들은 기술을 위한 기술 개발로 내몰린다. ‘시장성 없는’ 세계 최고나 세계 최초의 기술이 쏟아지고 이를 기초로 하는 특허는 당연히 장롱특허가 된다. 그러나 ‘특허 수’라는 정량적 평가지표를 충족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정부 연구개발 과제를 받은 공공기술 기반의 창업 기업 103곳을 대상으로 중앙일보와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연구개발 지원 제도의 문제점으로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 지원체계가 부족하다”고 (복수) 응답한 기업이 67%로 가장 많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은 관료의 속성일 뿐 아니라, 예산 편성과 집행의 시차에 따라 고위험의 새로운 시도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기술을 국산화하는 추격형 기술 개발에 더 많은 정부 지원이 가게 된다. 연구개발 예산 항목은 실제 집행되기 1~2년 전에 편성돼야 하는데, 이미 성공적인 분야나 충분히 성공이 예상되는 분야에 예산이 집중적으로 배정되기 마련이다. 한번 예산이 배정되면 새롭고 예측하기 어려운 융합형 연구에 지원금을 사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은 ‘불확실성’이라는 근본적 혁신(Drastic Innovation)의 특성과 양립할 수 없고, 오히려 연구개발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기술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추격형 기술 개발로 유인하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가 기초연구 지원 외에는 손을 놓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 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정부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 역할이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의 발굴·육성에서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부 역할은 혁신 기반 마련하는 것
첫째, 연구개발 정책이 특정 기술에 편향되지 않도록 ‘정책 중립성’(Policy Neutrality)을 지켜야 한다. 노키아 몰락 이후 핀란드의 노키아 출신, 또한 1985년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 시행 이후 이스라엘 방위산업 관련 종사자들의 실직과 이직이 새로운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공으로 이어졌다. 핀란드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에게 자금 지원을 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묻지 않는 정책 중립성을 철저하게 지켰다. 또한 이들 정부는 벤처캐피털 구실을 대신하지 않고, 외국 벤처캐피털과 신생 벤처기업을 연계해줬다. 이후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자국 벤처캐피털로 되돌아오는 선순환이 생기고 있다. 
둘째, 정부의 역할은 혁신형 경제가 잘 작동하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특징인 혁신형 경제에선 혁신의 기회와 유인이 보장돼야 한다. 기회와 유인의 중요성은 국내 B2B(기업과 기업 사이에 이뤄지는 전자상거래)와 B2C(기업이 소비자를 상대로 행하는 인터넷 비즈니스) 산업에서 유니콘기업의 발생을 보더라도 명확하다. 최근 미국의 경제일간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도 언급하듯, 한국의 B2C 분야에서 유니콘기업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간재 산업에 해당하는 B2B 분야에서는 유니콘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20년 벤처기업 정밀 실태조사에 따르면, B2B가 벤처기업 매출의 75.4%를 차지하고 B2C는 4.3%에 불과하다. B2C와 달리, B2B에선 재벌 대기업 중심의 전속적인 하청거래로 공정한 경쟁과 혁신의 기회가 없고 기술 탈취와 단가 후려치기로 혁신의 유인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0% 정도를 담당하는 제조업, 제조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재 산업에서 혁신이 없다면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징벌배상·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공정한 경쟁과 중소기업의 재산권을 보장하면, 중간재 산업에서도 혁신은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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