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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의 효과를 과신하지 않았을까
[CULTURE & BIZ] 슈퍼스타 경제학
[135호] 2021년 07월 01일 (목)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소수의 스타가 시장을 지배하는 ‘슈퍼스타 경제 모델’을 본격적으로 다룬 앨런 크루거의 책 <로코노믹스>. 예스24 누리집

“이 책을 그 앨런 크루거가 썼단 말이야?”
얼마 전 책 광고 하나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음악산업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로코노믹스>였다. 록음악과 경제학의 조합이라니, 과거 내가 쓴 책 <박스오피스 경제학>을 세상에 알릴 때 쓴 열쇳말과 유사했다. 혹시 내 책의 경쟁 상대인가 싶어 저자를 살폈다. 아뿔싸, 이런 거물이.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교사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50인’에 선정됐던 앨런 크루거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거친 크루거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서 경제학 연구를 실제 정책에 접목해 우리 삶을 바꾸려 노력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를 학계 스타로 만든 것은 1990년대 중반 패스트푸드점 사례를 대상으로 한 최저임금 연구였다.
이 연구에서 그는 같은 시기 최저임금 상승이 차별적으로 발생한 두 지역을 비교해 “최저임금 상승이 항상 실업 증가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를 입증했다. “최저임금을 높이면 노동비용이 늘어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기존 주류 경제학계의 오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크루거의 연구는 경제학계에 최저임금 논쟁을 촉발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 연구를 기초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대표 경제정책으로 내걸었다.
2012년 소개한 ‘위대한 개츠비 곡선’도 유명하다. 이 곡선은 경제 불평등이 클수록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곡선의 이름은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부자가 된 청년 개츠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따왔다. 미국인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고 개츠비처럼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국가 간 비교연구를 해보니 미국을 비롯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나라일수록 교육·연줄·상속 등으로 자식 세대의 역전 기회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루거는 이 현상을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의 심각성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불평등 경제학자의 일탈?
이런 연구를 해온 경제학자가 음악산업에 대한 책을 썼다. 크루거의 이력을 모른다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역시 이유가 있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 크루거는 음악 애호가다. 음악을 사랑해 미국 대중음악 가수 밥 딜런과 한동네에서 자란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사랑하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덕분에 그는 음악산업에서 새로운 직관을 발견했다. 소수의 일류 뮤지션은 엄청난 돈을 벌지만 나머지의 수입은 형편없는 현상, 이른바 음악산업에 만연한 ‘슈퍼스타 독식’ 현상이 미국 경제 전반에 퍼졌다고 본 것이다.
크루거는 경제자문위원장 시절 이 내용으로 마지막 연설을 장식했다. 그는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 격차가 확대된 현재 미국 경제 문제를 음악산업에서 싹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음악산업의 구조와 작동 원리, 변화 방향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 그의 고민을 담은 것이 <로코노믹스>다. 이 책은 58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마지막 저서로 남았다.
크루거는 이 책에서 음악산업에 내재한 다양한 경제 원리를 다루면서 두드러진 몇 가지 특성에 주목했다. 대표적으로 소수의 스타가 시장을 지배하는 슈퍼스타 경제 모델이다. 음악·영화·방송 등 대중문화 산업에서 스타 쏠림 현상이 유독 심하다는 점을 경제학적으로 밝혔다.
이 모델을 처음 소개한 이는 미국 시카고대 셔윈 로젠이었다. 1981년 로젠은 관객이 1명이든 100명이든 제작비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규모의 경제가 자리잡은 분야에서 평범한 배우가 스타를 대체할 수 없는 ‘대체불가능성’이 존재할 때 슈퍼스타 독식이 나타난다는 ‘슈퍼스타 경제학’을 이론화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이유는 다수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라면 스타 활용으로 제작비용이 늘어나는 게 부담되지 않아서다. 방송과 영화처럼 매체 발전으로 대규모 관객 동원이 쉬워진 대중문화 산업에서 이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다. 또 재능이 떨어지는 사람이 도저히 스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느 산업에 견줘 대중문화 산업에서는 대체불가능성이 강하게 나타나 슈퍼스타 탄생이 빈번하다.
이에 덧붙여 1985년 미국 컬럼비아대 모셰 애들러는 재능 차이 없이 운만으로 슈퍼스타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문화상품을 소비하려면 그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대부분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지식을 쌓는다. 서로 아는 대상이어야 이 과정이 원활하다. 운이든 뭐든 작용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진 사람이 스타가 되고 시장을 차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워싱턴대 글렌 맥도널드는 문화상품은 경험해야만 그 질을 아는 대표 ‘경험재’라고 말한다. 경험재를 소비할 때 다른 사람이 써보고 인정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슈퍼스타 현상은 강화된다.

   
▲ 2020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세계 최정상급 팝가수 저스틴 비버(가운데 모자 쓴 이)가 자신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저스틴 비버: 시즌스> 시사회에 참석해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재능만큼 중요한 운
크루거는 슈퍼스타 독식 현상이 음악산업에서 심해지는 데 주목했다. 2017년 음반시장에서 상위 0.1%가 전체 음반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콘서트 시장에서 상위 1%에 돌아가는 수입이 1982년 26%에서 2017년 60%로 늘었다. 디지털화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 슈퍼스타 경제학의 원리에 따라 음악산업에서 경험 전파가 중요한 요인이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작은 차이가 순식간에 큰 차이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애들러의 설명처럼 운도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크루거는 지적한다. 재능이 뛰어난 뮤지션은 많지만 그렇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 순간에 운이 작용한다. SNS 등을 통한 우연한 상호작용이 행운과 불운의 효과를 상승시킨다. 예를 들어 한 실험에서 두 집단에 48개 음악 목록을 주고 내려받도록 했다. 한 집단에는 이전의 내려받기 순위를 보여주고 다른 집단에는 그러지 않았다. 결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전 순위를 본 집단에서는 그 순위대로 내려받는 경향이 컸다. 즉, 개인의 고유한 취향과 선호로 여겨졌던 것도 운과 정보 전파, 주변 네트워크의 영향 등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슈퍼스타 경제학의 시사점이다.
크루거는 미국에서 승자독식 구도가 강화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봤다. 인터넷을 비롯해 항공·유통·병원 등 대부분 산업에서 생산과 집중이 두드러지며 소수 슈퍼스타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슈퍼스타 기업은 초기에 성공적인 기술 혁신으로 성장했지만 이후 규모의 경제 혜택을 누리며 경쟁을 억눌렀다. 이들이 높은 생산성을 무기로 주변 산업에까지 손쉽게 우위를 점하면서 불평등이 더 심화됐다.
안타깝게도 생산성 높은 기업들이 고용하는 노동자 수는 제한적이다. 이들은 높은 연봉을 받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그렇지 않아 임금 격차가 더 커졌다. “택한 직장의 운이 달라 생기는 큰 연봉 격차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크루거는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이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맹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재 선별 과정에 차라리 ‘추첨제’를 도입하자던 주장과도 맞닿는 지점이다.
크루거는 음악산업이 기술 발전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혁신을 위한 ‘탄광 속 카나리아’ 구실을 한 것도 주목했다. 1999년 음악파일을 주고받는 냅스터가 등장하면서 음반시장이 빠르게 쇠퇴하고 저작권 수익이 줄었다. 이 여파로 음악가들은 콘서트를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 콘서트 표 가격이 이때부터 빠르게 상승했다. 1981~2018년 미국 소비자물가가 1.6배 올랐지만 콘서트 표 가격은 4배나 올랐다.

혁신의 빛과 그림자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산업 구조에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스트리밍 덕에 음악시장 전체 규모가 더 커졌다. 동시에 추천 알고리즘 영향으로 슈퍼스타 독식 현상이 더 심해졌다. 혁신의 경제효과를 ‘파이의 크기’와 ‘분배의 영향’으로 측정한다면, 분명 파이는 커졌지만 분배 구조는 악화됐다. 이런 현상은 음악산업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혁신 경제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뼈아픈 시사점이다.
대가의 책을 한장 한장 곱씹어 읽으며 한 수 크게 배웠다. 한 산업만 들여다보다 그 안에 매몰돼 큰 시사점을 종종 놓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 다음 단계로 전체 경제구조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크루거가 일찍 생을 마감한 게 새삼 안타깝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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