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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ESG 플러스’에 노동재해 포함해야
[박상인의 경제직설]
[135호] 2021년 07월 01일 (목)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한국에서 ESG 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이를 위한 기관투자자의 능동적 역할이 절실하다. 2021년 4월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2차 대한상의 ESG 경영 포럼’에서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오른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가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국제 행사가 열렸다. 사흘간 열린 이 행사는 연속 토론회와 국제학술대회로 꾸려졌다. 연속 토론회의 각 세션에선 ESG 관련 세부 주제를 놓고 정부 또는 국제기구 관계자, 기관투자자, 학계 전문가 등이 라운드테이블 형식으로 토론했다. 나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라는 세부 주제를 다루는 세션에 학계 전문가로 참여했다.

2015년 유럽에서 제기된 ESG
당시는 ESG의 중요성이 유럽과 미국의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강조되면서 ESG의 본질과 실행 전략을 활발히 논의할 때였다. 1989년 엑손모빌 소속 유조선 엑손발데즈가 미국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해협에서 좌초되면서 원유 24만 배럴이 유출된 최악의 해상 환경 파괴 사건과 2008년 미국과 유럽을 강타한 금융위기로 대형 금융기관들이 파산한 사건 등을 겪으면서, 장기 투자를 주로 하는 대형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기업 수익률과 재무 위험 외에 장기적 위험 관리 차원에서 ESG를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피투자 기업에 대한 관여(Engagement), ESG를 고려한 투자 전략과 투자기금을 운용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내가 기업지배구조 토론 세션에 초대받은 이유는 한국 기업의 기업지배구조 취약성을 미국과 유럽의 기관투자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대 기관투자자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들도 참석했다. 나는 한국이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사외 이사나 기업 공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미식 기업지배구조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나 한국 재벌의 출자구조 또는 소유지배구조라는 맥락에선 이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과, 결국 소유지배구조 개혁 없이는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세션 이후 많은 토론회 참여자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내 의견에 동의를 표명해줘 다소 놀라기도 했다. 그들의 질문과 지적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한국에서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
2020년부터 우리나라에도 ESG 열풍이 불고 있다. ‘왜 지금일까’라는 질문에 두 가지 정도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ESG 강조와 ESG 점수 공개 등으로 국내 기업들도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둘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재차 표명되면서 환경문제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 우리나라에선 기관투자자들의 ESG 활동이 극히 저조했는데도 기업들이 오히려 먼저 ESG 경영을 선언했다. 둘째, ESG 채택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취약한 기업지배구조는 주목받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과 환경문제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업들이 ESG 경영을 기업의 홍보 수단이나 ESG 배점표에 빈칸을 채워야 하는 일종의 자발적 규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강조했던 SK그룹의 경우를 봐도 이런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7월17일 기준으로 환경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사람은 6817명이고 그중 사망자는 1553명이다. 또한 파악되지 않은 사망피해자는 1만4천 명으로 추산되고 건강피해 경험자는 6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1991년 유공이었을 때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의 제조 방법을 개발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주요 제조사와 유통사인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공급했다. 2017년 12월19일에는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김상조 위원장이 가습기살균제 문제 처리 과정에서 SK케미칼과 애경에 면죄부를 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까지 SK그룹이나 최태원 회장이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사과하거나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
한국 증시에서 사실상 유일한 거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도 최근에야 ESG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 5월21일 ‘ESG 플러스 포럼’을 열면서 적극적인 행보를 다짐한 것은 늦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국민연금공단이 진정으로 한국에서 ESG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나선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편승한 것인지 헷갈린다. ‘ESG 플러스’로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강조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ESG 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이를 위한 기관투자자의 능동적 역할이 절실하다. 또한 서구에서 시작된 ESG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내 실정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 ‘노동’ 문제가 ESG ‘플러스’에 포함돼야 한다.

한국 기업 산재를 위험요소로 인식해야
제조업에서 안전의 외주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뿐만 아니라, 이른바 플랫폼기업인 쿠팡이나 마켓컬리 그리고 정보기술(IT) 공룡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벌어지는 노동재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엑손발데즈호의 원유 유출로 환경재해나 금융위기 이후에 기업지배구조 취약성이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초기 ESG 주창자들이 생각했듯이, 국민연금도 한국 기업들의 노동재해를 기업의 비재무적 위험요소로 인식해 다뤄야 한다. 노동재해를 방지하는 것이 바로 국민연금의 ESG ‘플러스’가 돼야 하는 이유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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