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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진 유럽, 고통받는 빈민
[In-depth]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세르게이 수믈렌니 Sergei Sumlenniy economyinsight@hani.co.kr

세르게이 수믈렌니 Sergei Sumlenniy <엑스페르트> 베를린 특파원
알렉산드르 코크샤로프 Alexander Koksharov <엑스페르트> 런던 특파원
 
런던 카나리워프 지역의 마천루에서는 주변을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다. 유리와 강철로 만든 고층 건물에는 은행원·중개인·회계사·법률가 등 여러 분야의 고급 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그들은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뿔뿔이 퇴근한다. 그들 중 아무도 런던 동부의 공공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지 않는다.
   
한 독일 여성이 정부의 복지 축소에 항의해 적십자사의 신발기부함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공공 주거단지 중 하나인 세작 지역의 ‘엘리스베리-이스테이트’는 카나리워프에서 지하철로 불과 네 정거장 거리에 있다. 회색빛으로 퇴색된 아파트 창문을 통해 비즈니스센터 마천루들의 불빛을 볼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이 모퉁이의 삶은 비즈니스센터의 풍요함과는 물리적 거리 이상으로 동떨어져 있다.
복지펀드(Citi Parochial Foundation)의 직원 젬마 코비니는 “이곳 공공 주거단지의 주민 상당수는 직장뿐 아니라 은행 계좌조차 없다. 그들은 최소한의 생활시설과 위생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더 불행한 것은 자녀들에게 헤어나오기 힘든 가난을 되물림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실제 주변의 모습에서 확인됐다. 20살도 안 돼 보이는 미혼모들이 저렴한 상점에서 산 운동복을 입은 채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자신의 아이와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들을 마중 나온 한 부인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 속으로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통조림과 싸구려 식료품들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은 시내로 갈 지하철 승차권 구입할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의논하고 있다. 코비니가 덧붙인다. “학교에서 한창 공부할 시간이지만, 이곳 아이들은 어떤 전망도 보이지 않는 학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런던의 다른 지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카나리워프조차 차비가 없어 못 가는 현실이다.”
영국의 빈곤은 런던의 공공 주거단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300만 명 이상이 빈민층에 속한다. 런던 신경제정치대학 경제학 교수인 피터 켄웨이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친 빈곤의 심각성은 가난의 되물림에 있다”고 말한다. 빈민층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의 실업률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보다 3배 이상이다. 7%에 이르는 영국 가정이 최대 명절인 성탄절을 지내지 못하고 있다. 엘리스베리-이스테이트 지역의 한 미혼모는 “아이들은 아직 산타를 믿고 있는데…”라며 푸념한다.

영국, 찰스 디킨스 시절처럼
   
라트비아 동부 작은 도시 리바니의 빈민가
빈곤의 주범은 실업이다. 영국의 실업률은 7.7%이며, 이 중 3분의 1은 장기 실업으로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리버풀 신정책 연구원 톰 매킨스는 이렇게 진단한다. “마거릿 대처 정부의 경제개혁은 기존의 많은 산업도시들- 뉴캐슬과 버밍엄에서 맨체스터와 셰필드에 이르기까지- 에 혹독한 유산을 계승시켰다. 당시 산업 터전을 잃은 제강공과 기계공, 광부들의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소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1980년대에 실직한 사람들의 40~45%는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장애복지기금 같은 사회기금으로 연명하는 계층으로 도태됐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9.4달러(세전)다. 주당 40시간 근무로 따지면 월 순수입은 1340달러에 불과하다. 물가와 비교할 때 이 수준은 빈곤을 뜻한다.
또 다른 복지펀드(Joseph Rowntree Foundation)의 직원 메리언 파렐은 “최저임금을 받는 식당 종업원, 청소부, 슈퍼마켓 점원은 일반 노동시간만 일해서는 빈곤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빈곤을 벗어나려면 주당 60~70시간을 하나 이상의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디킨스 시절처럼 단순노동만으로는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좋은 시절에 부채를 끌어들였다가 한순간에 빈곤국으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헝가리다. 헝가리는 2008년 국가 부도 위기에 이를 정도로 자국 통화가치의 급락을 경험했다.
우리는 국제 채권추심회사(Intrum Justitia)의 헝가리 지사를 방문했다. 불량채권 추심을 담당하는 이 회사의 사무실은 헝가리 인구의 20%가 집중된 부다페스트의 북쪽 끝에 있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거리 곳곳에는 세우다 만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국가경제를 지탱해오던 신용이 고갈되면서 건설이 중단된 것이다. 지사장 피터 팰파루시는 “헝가리는 유럽의 제조공장들을 유치하면서 서구 금융기관에서 급속하게 돈을 끌어들였다. 이때 부채의 90% 이상이 스위스프랑을 중심으로 한 외환이었다. 당시엔 누군가 집을 사려고 할 때 먼저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생계비를 뺀 모든 수입을 대출 상환에 사용했다. 80㎡로 충분한데도 100㎡ 아파트를 구입했다. 이것이 바로 파산의 서곡이었다”고 회상한다.
팰파루시가 말을 이어나갔다. “당시 조금 상황이 나았던 폴란드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실질소득은 6~10% 하락했고, 헝가리는 18%까지 하락했다. 10만 가구 정도가 주택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대출을 받은 대부분이 중산층의 하부 그룹이나 서민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TV 광고에서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당신은 집을 살 자격이 있고, 이것저것을 살 자격이 있다고 반복해 말하면, 사람들은 ‘그래, 난 자격이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은행의 대출상품 광고를 제한해야 한다.”
   
헝가리 시골 마을 무치에서 독일 복지기관 ‘희망의 전달자’ 주재원으로 일하는 베른하르드 쉴링이 주민들에게 나눠줄 옷가지를 손보고 있다.
중·하위층에 닥친 신용위기는 이상한 형태로 전이됐다. 몇 달 전 지역방송은 젊은 헝가리 아가씨가 부모의 주택융자 채무를 갚기 위해 자신의 처녀성을 인터넷 경매에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황색잡지에나 나올 법한 이런 일들이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몇십만 가정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4년 전에도 부다페스트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T34 탱크가 거리를 누볐다.
법원 부집행관 페랭 차스치는 “1930년대에는 농민들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습격하고 죽인 일도 있다. 이들은 무기도 제조했다”고 말했다. 곰 같은 체격에 다부진 얼굴을 한 그가 자랑스럽게 가리킨 집무실 벽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재판용 의사봉이 전시돼 있다. “채무를 부분적으로 이행하도록 설득하느냐고? 아니, 우리는 채권추심회사처럼 일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이니까 지급을 강제할 수 있다.” 그는 빈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빈민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인정을 둔다면 모든 사람이 채무 이행을 거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0가구가 집을 잃고 끝날 일을 1천 가구가 집을 잃도록 만드는 꼴이 된다. 채무를 불이행하는 어느 누구도 법정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는 손바닥으로 허공을 쳤다.
독일에서 온 사업가 안드레아 멜렌도르프의 집은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지역에 있다. 도로변에는 독일과 슬로베니아의 번호판을 단 자가용들이 주차돼 있다. 헝가리의 부유층은 외국에 차량을 등록하는 방법으로 탈세를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요소들까지 지속적으로 생활고를 심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고 있다. 어떤 도로는 유료화로 전환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인플레이션 공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멜렌도르프는 재앙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헝가리의 사회적 여건들은 인내의 한계까지 도달한 것 같다. 헝가리 사업가인 친구가 있는데, 그와 그의 친구들은 내전 가능성까지 예상한다. 그래서 그들은 ‘안토노프’라는 화물기를 임대해 언제든 피란할 준비를 해놓았다고 한다.”
시골 마을들은 훨씬 더 상황이 열악하다. 부다페스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시골 마을 ‘무치’는 150여 년 전 독일 이주민들이 세웠다. 현재 500명 정도가 사는 이 마을에 자동차가 많이 보인다. 20년 전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버린 ‘트라반트’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자동차가 아니라 연료다. 멀리 있는 주유소까지 차를 끌고 갈 돈이 없어 형편이 좀 나은 사람이 대량으로 연료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다.

헝가리 “돼지 축사에 투자해달라”
마을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의 부재와 외부와의 고립이다. 무치 마을까지 가는 도로는 포장이 잘 안 돼 있어 직행버스 노선이 없다.
몇 년 전 이 조용한 마을로 들어온 독일인 베른하르드 쉴링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았다. “저 집 주인은 두 달 전 자신의 우물벽을 해체해 벽돌을 다 팔아버리고, 지금은 이웃에게 물을 구걸하고 있다. 이곳에는 버려진 집이 많아 그 집을 해체해 벽돌을 파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집을 해체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전 뒤 헝가리인과 집시들이 독일인 집에 행했던 일과 동일하다.” 쉴링의 부인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씨감자를 신청해놓고는 밭에 심지 않고 그냥 먹어버리는 일도 많다. 한번은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쌍둥이용 유모차를 신청했다. 좁은 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수직으로 자리가 배치된 유모차를 원해 독일에서 구해 갖다줬다. 하지만 아이 중 한 명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산모는 유모차를 사용하지도 않고 버렸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뒀다.” 그녀는 호소했다.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돼지 축사가 지어지고 있다. 이곳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찾아달라. 이 축사가 마을을 살릴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치 마을에서 1천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라트비아 동부의 작은 도시 리바니는 산업활동이 중단돼 많은 주민들이 떠나버린 가난한 도시의 전형이다. 리바니의 복지기관 대표 로리타 베차는 “내 두 아들도 아일랜드로 떠나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고 말했다.
이 복지기관은 주민들이 기술을 배우도록 도와주고 있다. 서구 펀드들의 지원을 받아 소와 꿀벌통을 나눠주기도 한다. 베차는 “소와 꿀벌통을 받은 사람들은 이듬해 또 다른 가정에 송아지와 꿀벌통을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다.
리바니의 문제는 라트비아의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도 리가에 위치한 가톨릭 복지기관(Caritas)의 직원인 이네세 미추레는 빈민 자녀에게 수프를 제공하는 식당을 몇몇 도시에서 열었는데, 그곳의 학부모들은 종종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가방이나 신발, 책을 사줄 돈이 없어서다.
인구 200만의 동유럽 국가 라트비아는 이번 경제위기로 크게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다. 경제위기 전에도 빈곤층의 비율은 유럽연합 국가 중 최고인 23%에 육박했다. 리가의 카페들은 베를린의 카페보다 비싸다. 관광객의 경제력을 고려한 가격일 것이다.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 주변에는 오랫동안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목재 건물들이 있다. 생기 없는 눈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도 다른 어느 유럽 국가보다 더 많다.
 
라트비아, 거리 청소부의 행운
라트비아 ‘단일인권당’ 당원 유리 소콜로프스키가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지는 일을 하지 않지만 빈민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교사는 한 달 내내 일하고 200라트(라트비아 화폐 단위)를 받는다. 200라트는 아파트 임대료를 내고 최소한의 일용할 양식을 사는 데도 빠듯한 액수다. 리에파 지역의 한 교통경찰서장은 휴가 때마다 덴마크로 간다. 그곳의 양털모피 공장에서 가축의 가죽을 벗기는 단순노동으로 부업을 해왔다. 모두가 부업을 하려고 한다. 교사는 가정교사로, 경찰은 경비원으로.” 그는 라트비아 주민들이 어떻게 빈민화해가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만약 실직을 하면 처음 2개월간은 기존 급여의 70%를 받고, 그 뒤 3개월간은 경력에 따라 50% 이내로 받고, 그 뒤로는 매달 45라트(약 65유로)만 받게 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동절기에 방 두 칸짜리 아파트 임대료가 100라트 정도라는 것이다. 얼마 전 유럽연합의 펀드에서 실직자를 위한 6개월 단기부업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거리 청소부로 한 달에 100라트를 받는 일이었는데, 순식간에 도시의 거리가 깨끗해졌다.”
라트비아 과학·교육노조(LIZDA) 사무실 출입문 위에는 사람들을 묶어놓은 벨트가 그려진 현수막이 달려 있다. 이 그림은 경제정책의 후퇴를 풍자하고 있다.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라트비아의 가장 유력한 빈민 후보들이다. 노조 대표 중 한 명인 일리제 트라판치에레가 말한다. “2009년을 시작으로 교육계 예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현재 받는 급여는 2년 전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처음에는 급여를 줄이더니, 그 뒤 강의 시간까지 줄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비교수인 여자 강사들이 타격을 입었다.”
과학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트라판치에레가 침통하게 말한다. “연구자금이 없다. 많은 제약기관과 화학연구센터의 연구실적을 스웨덴 회사에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든 연구결과가 스웨덴으로 넘어가 그들의 출판물에 인용되고, 특허도 그들이 등록하고 있다. 우리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논문을 쓸 권한조차 없다. 이것은 현대적인 노예제도다. 우리는 일만 할 뿐, 표현의 권리는 박탈당했다.”
그리스에서도 빈곤의 가장 첫 번째 희생자는 교육 시스템이었다. 가장 오래된 유럽연합 회원 국가 중 하나인 그리스는 아직까지 저개발국가로 남아 있다.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포기하고 자녀를 노동 현장으로 동원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 국립사회연구센터(EKKE) 연구원 니코스 부제의 추정에 따르면, 농촌에서 빈민층 수가 30%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는 여성의 지위가 무시되고 교육열이 낮은 사회제도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알바니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요아니나시의 선술집에서 7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종업원으로 일하는 것을 보았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일이었다. 밤이 깊도록 힘든 일은 계속됐다. 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모든 경찰이 시내 대로에 위치한 그 선술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빈곤의 또 다른 문제는 빈민층에게 가족은 사회적 상승 시도를 막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복지기관(Humanet)에서 오래 일해온 청년 요아니스 스칸달리스는 말한다. “가족은 인간에게 유일한 안식처인 동시에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그리스 청년들이 30살이 되도록 부모와 같이 살고 있고, 그 이후에도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지금 제약업체에서 일하고 있어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 젊은이들은 대부분 운이 좋지 않다. “거의 모든 가정에 실업자가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새로운 회사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거의 매일 사람들이 방문해 일자리를 찾는다. 실업을 극복하고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귀농밖에 남지 않았다.”
이 지역의 열성 공산당원인 포티니 촐루가 격분하며 이야기했다. 예전의 농장 근로자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럽연합의 결정으로 이 지역의 거의 모든 농장에서 오렌지 재배를 중단했다. 지금은 오렌지를 브라질에서 수입한다. 또 연간 35만t의 밀을 생산하지만 필요한 양은 100만t 이상이다. 1980년에는 200만t가량의 밀을 수확해서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곳의 공식 실업률은 12.5%지만 실제는 훨씬 더 높다. 통계 계산 때 1년 중 하루라도 일한 사람은 실업자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는 집권 사회당(PASOK)의 정치가들을 교수대 밧줄에 매달아놓은 그림이 그려진 플래카드가 보이고, 기울어가는 건물들의 문 앞에는 ‘매각’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요아니나는 지역 특성상 관광지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지만 쓸 만한 호텔도 없고, 인프라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스의 빈곤이 관광지로의 ‘성장판’마저 닫아버린 것이다. 촐루가 말했다. “정치인들은 가난을 국민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도 빈민들에게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리스, 쟁기질로 돌아가다
아테네에 위치한 그리스 공산당 중앙당사 사무실은 옛 소련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건물 입구 앞에 레닌 동상과 붉은 깃발이 보이고, 건물 안 복도를 오가는 당원들의 손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서가 들려 있다. 여기는 아테네에서 독일제 엘리베이터 오티스(OTIS)가 아닌 노후한 그리스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은 3m 높이의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견고한 출입문은 방탄 부스에 앉아 있는 경비원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당원 앨레지오스 바게나는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선동가들의 전통적인 타깃”이라고 러시아어로 말했다. 건물 한편에는 그리스 집권당을 강타하는 주먹을 형상화한 거대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혁명 선동가들의 위협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답변으로 보인다.
   
실업과 빈곤으로 신음하는 그리스 소도시 요아니나는 낡은 건물을 수리할 재정도 부족하다.

“그리스 빈곤 문제는 심각하다. 공식적 집계에 따르면 빈민층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200만 명 이상이라는 거다.” 공산당원 마키스 파파도풀로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스인 60%가 대출을 가지고 있고, 그중 20% 정도는 상환이 어려운 처지다. 3% 정도는 아예 상환을 포기했다.
야당의 비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확실히 아테네 시내에는 구걸하는 아이와 공원 노숙자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는 아직까지 유럽에서 1인당 주택 면적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높은 급여를 받는 정부 명예직이 있는가 하면, 몇 달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일꾼도 많다. 아크로폴리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의 지급을 요구하면서 유적의 입구를 차단한 적도 있다.
그리스의 기자는 “부자들이 다스리는 가난한 나라”로 그리스를 규정했다. 부자들은 공공연히 탈세를 감행하고, 복지제도는 관료들에게 더 많은 뒷돈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립사회연구센터 연구원 니코스 부제는 “정부 예산 수입을 구성하는 소득세의 70% 정도가 급여와 연금소득에서 징수되고 있다. 즉, 가장 가난한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가 운영된다는 뜻이다. 이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유럽의 상황은 그나마 낫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도시들의 길거리에서는 빈곤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통계로도 알 수 있다. 빈곤의 잠재적 위험을 가진 인구 비율이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전체 인구의 10~12%이며, 빈민층 비율도 7~8%밖에 되지 않는다.
코펜하겐의 국립사회연구센터 경제학자 리스벳 피터슨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덴마크는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가 조세정책을 통해 재분배된다. 사회복지는 부자들이 주위의 빈곤을 없애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에 동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구가 적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이런 복지 모델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빈곤율을 확실히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 복지 모델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첫째, 이미 19세기 후반에 북유럽은 민주주의 정치제도로 탈바꿈을 시작했고, 남유럽은 이보다 한 세기 정도 늦게 시작했다. 둘째, 인구가 적고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이 국가들은 상호 협조가 비교적 쉽게 이뤄졌다. 셋째, 북유럽의 ‘세습 계급’은 남유럽과는 달리 계급 간의 단결을 지향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모든 사회 구성원이 빈곤에서 벗어나 공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안전망’이 구축된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신빈곤층의 형성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경제학자인 얀 에들링은 “복지 혜택은 빈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스칸디니비아 국가에서는 노동 대상 연령의 20% 정도가 실업연금이나 장애연금으로 살아간다. 만약 이런 연금제도가 없었다면 빈곤율이 다른 유럽 국가들의 수준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노동자는 빈곤에 허덕이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임금을 보장받고 있다. 덴마크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21.4달러다. 스웨덴 사회연구소 연구원 에릭 비하옌은 “스웨덴에는 최저임금 개념이 없는 대신 강력한 노조가 임금수준을 보장해 노동자들이 빈곤에 시달리지 않는다. 특히 장기적 빈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국가들의 개방적인 노동시장도 빈곤율을 낮추는 데 일조한다. 노동력의 80%가 여성이며, 퇴직 연령층도 계속 일하고 싶어한다. 경제학자 리스벳 피터슨은 “스칸디나비아 사회에서 빈민층은 주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그룹이나 외부인들이다. 외국 이주자들이 그렇다. 언어 문제나 기술 습득 수준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그들의 전망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고 말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는 최근 10여 년간 소말리아·보스니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의 내전에서 탈출한 난민들이 몰려왔다. 현재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외국계로 구성돼 있다. 경제적 이주자들과 달리 정치적 난민들은 지역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술(보통 농업이나 공예업)은 이곳에서 별 필요가 없으므로 복지연금에 의지해 살게 되는데, 굶지 않을 만큼의 수준일 뿐 빈곤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다. 코펜하겐 노동연대 경제위원 요나스 유울은  “결과적으로 이곳에 새로운 빈민계층, 극빈층이 생겨나고 있다. 빈민 중 덴마크인은 주로 마약중독자 같은 소외계층뿐이다”라고 말한다.
덴마크에서 자국인의 경우 퇴직 연령 인구 중 1.1%만 빈곤층에 속하는 반면, 해외 이주자는 퇴직 연령자의 27.4%가 빈곤층에 속해 있다. 65살이 넘어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복지연금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도시에서 이주자들이 모여 사는 구역의 아이들은 가난에 갇혀 살아간다. 출신 성분, 언어 이해력과 지식 부족 등이 새로운 사회로의 적응을 막고 있다.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말리메는 주민의 30%가 외국 이주민이며, 아이들의 20%가 빈곤한 환경에서 산다. 말리메고등학교 사회학자인 코린나 말스트렘은 이렇게 분석한다. “부모 세대는 스웨덴으로의 이주 자체를 급격한 삶의 변화로 받아들인다. 이곳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굳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필요를 느끼지 않아, 노동시장에 참여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이곳 이주자의 아이들은 낮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내고 고등교육을 받거나 경력을 쌓는 일을 찾지 못하게 된다. 부모들처럼 복지연금을 받는 삶에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경제학자 얀 에들링은 우울한 진단을 내놓는다. “북유럽 이주민 가정의 청소년들은 좌절을 경험한다. 그 결과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근본적 이슬람 교도가 되거나 범죄집단으로 흡수되기도 한다.”
ⓒ EXPERT 733호·번역 정연한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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