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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 이성 아닌 도그마 추종”
[INTERVIEW] 언어학자 존 맥호터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134호] 2021년 06월 01일 (화) 르네 피스터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 컬럼비아대학 언어학 교수인 존 맥호터(56)는 ‘정체성 정치’를 표방하는 좌파를 도그마적 종교집단이라고 여긴다.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슈피겔>이 맥호터 교수를 만나 그가 왜 정체성 정치를 위험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르네 피스터 René Pfister <슈피겔> 기자

   
▲ 미국 컬럼비아대학 언어학 교수인 존 맥호터는 ‘정체성 정치’를 표방하는 좌파를 도그마적 종교집단이라고 여긴다. 위키피디아 제공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미국 학계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좌파 독선주의에 경고했다. 미국 대학은 자유세계에 위험이 되고 있는가.
=그렇게까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적이라 할 만한 세계관으로 예술의 자유와 지성적 토론 문화가 점차 밀려나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모든 것이 권력구조와의 투쟁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 이 새로운 종교는 이성을 깊이 불신하며 이성의 자리에 자신이 억압적 체제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억울함을 채워넣는다.

   
▲ 한 시민이 2021년 3월13일 미국 연방수사국(FBI) 미니애폴리스 지부 건물 위에 올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좌파 독선주의 비판하는 흐름
-이 현상은 ‘깨어남의 혁명’(Woke-Revolution), ‘캔슬 문화’(Cancel Culture), ‘정체성 정치’ 등 여러 개념으로 논의된다. 이 개념들을 설명해달라.
=5년 전만 해도 권력구조 분석으로 현실을 새롭게 밝히는 방법을 획득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깨어났다’(woke)고 칭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뜻이 달라졌다. 이제는 좌파의 한 흐름이 되면서 자기 시각을 관철하려는 의도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공담론에서 반드시 추방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을 이른다. 미국에서 ‘캔슬 문화’ 개념은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빌 코스비 사건으로 유행했다. 코스비는 수년간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코스비는 그가 하던 쇼를 전부 잃었고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말하자면, 그는 ‘캔슬’된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일이다. 그런데 이 개념도 변화했다. 이제 캔슬 문화란 어떤 사람이 이른바 금단의 선을 넘어서는 의견을 표했기 때문에 직업을 잃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발언을 해서 해고되는 게 왜 잘못인가.
=물론 잘못이라고 할 건 없다. 다만 무엇이 정확하게 인종차별인가? 최근엔 아무 문제도 안 되는 것을 이유로 캔슬되는 일이 매주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매사추세츠로웰대학(UML) 간호대 학과장이던 레슬리 닐보일런은 2020년 일자리를 잃었다. 그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으로 사망하자 닐보일런은 흑인이 경찰 폭력에 과다하게 노출된 현실에 유감을 표하는 전자우편을 보내며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 이걸로 이미 (해고에) 충분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직업인 한 여성이 왜 모든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한 말 때문에 직장을 잃어야 하는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의 학술기자 도널드 맥닐 주니어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2년 전 여행하면서 ‘깜둥이’(nigger)라는 단어를 인용했다는 이유로 (2021년 2월) <뉴욕타임스>에서 퇴출당했다.
-‘깜둥이’란 말은 큰 상처를 주기 때문에 백인에게는 절대 금기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미국에서 강하다.
=그 말은 옳다. 그렇지만 맥닐처럼 이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을 밝혀주기 위해 썼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건 내 주장이지만,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타네이시 코츠 같은 흑인 작가도 이렇게 주장했다. 특정 음절의 연결이 영원히 우리 언어에서 추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미개한 생각이다. 이 경우 우리는 이성의 영역을 떠나 종교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엔 논리적 의미가 없다. 기독교도가 식사 전에 기도하거나 유대인이 그들의 의례 규칙에 부합하는 음식을 먹는 건 신앙의 확고함을 보여주는 의식이자 상징일 뿐 논리적 의미가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이러한 세계관(Weltsicht)을 ‘선민의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했다. 무슨 뜻인가.
=내가 말하려는 건,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자들이 정말 자신은 훨씬 더 지혜롭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선 그들은 칼뱅주의 같은 근본주의적 종교의 신자와 같다. ‘선민’ 개념이 부정적 뉘앙스를 가졌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게 바로 내 의도다. 역사상 자신이 최종적이고 궁극적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며 추진한 많은 운동이 인류에게 큰 불행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좌파는 최저임금, 의료보험 등과 같은 실질적 목표를 위해 투쟁한 고전적 의미에서 좌파가 아니다. 화려한 수사의 야구방망이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두들겨 패는 정체성 정치의 패거리를 말한다.
-정체성 정치는 차별받는 집단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려는 정당한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정체성 정치는 1960년대부터 써온 분명치 않은 개념이다. 오늘날 이 개념이 의미 있는 이유는 사회 영역에서 인간의 지위가 특히 피부색이나 성별로 규정된다는 관념 때문이다. 성별은 단지 남녀 두 그룹이 아니라 더 많은 하위 그룹으로 나뉜다. 여기엔 백인 남성이 권력의 판테온에 앉아 다른 모든 사람을 상이한 방식으로 억압한다는 가정이 깔렸다. 이러한 권력구조를 끊기 위해 피억압자의 발언을 절대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내용, 또한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의 문제가 아니라 불만을 제기하는 자의 정체성만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운동을 종교와 비교한다. 말하자면 이성(이해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종교적 신조를 따르는 것이다.
-당신은 새 세대의 반인종주의 운동가를 선민에 넣는다. 이 새 세대는 1960년대의 마틴 루서 킹이나 그와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과 어떻게 다른가.
=미국에서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첫 단계에선 학교, 대중교통, 식당 같은 곳에서 인종분리를 철폐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이 마틴 루서 킹의 운동이었다. 두 번째 흐름은 1970년대 초에 일어났다. 흑인도 백인과 같은 권리를 획득하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였다. 세 번째 새로운 단계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간다. 백인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반인종주의를 실현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종류의 생각을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존 맥호터 교수는 수맣은 언어학 관련 저서를 발간했다. 그의 대표작 <언어의 거짓> 표지.

‘인종주의’ 담론의 이면
-이런 견해를 표방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로빈 디앤젤로가 쓴 책 <백인의 취약성>(White Fragility)을 보라. 이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독일에서도 출판됐다. 디앤젤로는 이 책에서 철두철미한 인종주의적 체계에선 모두가 백인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설득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백인의 특권을 향유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인종주의적 속성을 마주하기에 너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출구가 없는 순환논리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원죄 관념이 깔렸는데, 성경과 놀랄 만큼 닮았다.
-디앤젤로는 백인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인종차별적 선입견을 마주 대하길 원한다. 여기에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인가.
=잘못 없다. 단지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되는 생각을 100% 정화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다. 백인의 아주 작은 잘못도 인종주의 결과라고 낙인찍을 정도로 완벽해져야만 미국 흑인(운동)이 성공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인류 역사상 한 집단이 성공하기 위해 그렇게 완벽한 상황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백인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들이 하는 건 무엇이든 잘못이 된다.
-무슨 뜻인가.
=항상 백인하고만 데이트하는 백인은 그가 인종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백인이 흑인 여자랑 만나면 그가 모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비난을 받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백인이 흑인이 많이 사는 구역에서 이사를 나가면 백인 도주로 질책한다. 백인이 흑인 구역으로 이사 오면 젠트리피케이션(도심 인근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로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부추기는 것처럼 말한다. 이토록 모순적인 운동은 뭔가 잘못됐다. 백인의 인종주의를 폭로하는 데 몰두하다보니 논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 흑인의 선민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해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데올로기로 반인종주의 투쟁이 일차로 연기적(Performativ) 행위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흑인을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돕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반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이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흑인과 라틴계 청소년이 폭행죄를 저질러 백인이나 아시아계 청소년보다 빈번하게 퇴학당하는 몇몇 학군이 있다. 선민들은 이때 이 숫자에 구조적 인종주의가 드러난다고 한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 사이 어떠한 차이든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에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주위 사람들에게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청소년을 반인종주의(행위)라는 명목으로 퇴학시키지 않는다면 학생 모두의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흑인이 그 학교 학생의 다수다. 상징적 차원에선 인종주의를 물리쳤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립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하려는 흑인 학생은 희생되고 만다.
-통계상 미국이 여전히 인종차별적 사회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세계적 감염병은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심한 타격을 줬다. 백인 한 가구의 평균재산은 18만8천달러(약 2억1100만원)이며, 이는 흑인 한 가구 평균재산의 8배에 이른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약 13%를 차지할 뿐이지만, 미국 감옥 수감자 중 약 3분의 1이 흑인이다.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이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이 차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사회 과정은 복잡하다. 감옥에 가는 흑인이 백인보다 훨씬 많은 것은 단지 인종차별주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서 벌인 마약과의 전쟁과 여기서 파생된 형법의 처벌 강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인종 문제에 별 의식이 없으면서 특히 흑인 범죄를 근절하려는 백인들이 주도했다. 그럼에도 이 대책은 흑인 구역에서 갱들의 범죄를 몰아내려 한 유명 흑인 정치인 다수의 후원을 받았다. 흑인 수감자가 인구 비율에 비해 감옥에 많은 이유가 단지 인종주의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낭독한 흑인 작가 어맨다 고먼의 시를 유럽에서 백인 여성 시인이 번역하자 최근에 항의가 빗발쳤다.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떤 운동도 죄가 되는 모든 생각에서 인간을 해방하지 못했다.
=흑인 번역가가 그 과제를 더 잘해냈을지의 문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왜 그래야 하는지 누구도 묻는 것 같지 않다. 흑인 작가만이 흑인의 시를 번역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흑인이 비밀스럽고 영적인 공동체를 이룬다는 관념이 숨어 있다. 마치 19세기 민족주의적 독일 역사학자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가 독일성(Deutschtum)이 있는 양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낡은 형태의 사유가 반인종주의적인 것으로 유통되면서 복권됐다.
-그 항의는 최소한 흑인 번역가 한 명이 일을 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수자를 후원하려면 좀 가혹한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말에 확실히 한 점의 불꽃 같은 진리가 들어 있다. 그러나 혁명이 가혹해지고 로베스피에르(프랑스대혁명 때 급진파 지도자로 공포정치를 펼침)를 추종한다면, 똑같이 추한 방법을 취하는 반대운동의 역풍이 분다.
-미국 의회 난입 사건을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근원적 위험이 분명하게 우파로부터 오는데, 이 상황에서 좌파의 캔슬 문화 위험을 경고하는 건 과장이 아닌가.
=더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 학문에 적대적이고 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한 우파 운동은 문제가 있다. 나는 물리적 폭력을 취하지 않으나 자신과 다른 독자적 의견을 취하는 모든 사람을 추적하고 박해하는 좌파 학자 역시 마찬가지로 두렵다. 지식인은 한 국가의 영혼에 속한다. 만약 그들이 단순하고 이기적인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된다면 그건 우리나라가 가진 정신적 진실성에 대한 위험이며 비극이다. 그것은 트위터상에서 치고받는 몇 가지 싸움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학교에 침투하고 있다. 벌써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의 ‘1619 프로젝트’가 공식 학습 자료다. 이 프로젝트는 연속으로 기사를 출판하고 있는데, 핵심적으로는 미국 독립전쟁이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건 사실이 아님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난센스다. 남부의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장군들의 기념비를 미국에서 제거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전세계 백인이 어떻게 흑인의 목을 짓눌렀는지 서술하는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다루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선민 이데올로기가 좌파의 위대한 세계 설명 공식이었던 마르크시즘이 궁극적으로 폐위된 바로 지금 꽃피우는 건 우연일까.
=모든 물음에 답이 준비된 모델을 찾는 경향이 있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는 마약과 같다. 마르크시즘이 오랫동안 이 역할을 했다. 이제 우리는 백인 지배 모델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새 학설을 갖게 됐다. 이를 따르면 좋은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든다. 서구인의 근본 감정은 죄의식이다. 이 학설은 죄의식을 덜어준다. 나는 사람들이 이 학설을 따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집단에는 서로 파문하는 경향이 있다.

   
▲ 미국 <뉴욕타임스>의 ‘1619 프로젝트’는 미국의 진정한 시작은 1619년 흑인 노예들의 첫 도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공화정이 아닌 ‘노예정’(Slavocracy)으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의 노예 역사를 환기해 반성과 고찰을 유도하려는 것이겠지만, 존 맥호터 교수는 이런 주장이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뉴욕타임스> 이미지 갈무리

트럼프가 오바마를 성자로 만들어
-유럽도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는 문화투쟁을 준비해야 하는가.
=유럽의 급진적 좌파가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노선과 다른 모두를 벌주려 한다면 그래야 할 것이다. 이 운동은 기존 우파 세력과의 심한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깨어남의 혁명은 자신의 급진성으로 어느 날 실패할 것인가.
=그걸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집단에는 아무튼 서로 파문하는 경향이 있다. 이 효과는 사회 매체에 의해 더 강화된다.
-미국의 대표 반인종주의 활동가인 이브람 X. 켄디는 버락 오바마를 비난했다. 오바마는 (대선 후보로 출마한 2008년 ‘아버지의 날’에) 연설하면서 흑인 아버지들이 (자식을 돌보는 역할을 저버리고) 집에 없다며 유감을 표했기 때문에 인종주의적 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캔슬될 수도 있을까.
=버락 오바마는 걱정할 필요 없다. 그의 후임자가 어느 정도만 정상적이었어도 그의 업적이 분명 비판적으로 조명됐을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를 성자처럼 나타나게 했다. 이 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 Der Spiegel 2021년 제11호
Weisse stecken in einer Zwickmühle: Was sie auch machen, es ist falsch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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