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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상속세와 이재용 사면
[박상인의 경제직설]
[134호] 2021년 06월 01일 (화)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정상적인 상속세 납부를 이재용씨 사면을 요구하는 근거로 활용하려는 여러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 날리는 삼성 사기. 연합뉴스


상속세 신고 기한 마지막 날인 2021년 4월30일을 이틀 앞두고,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은 감염병 대응 및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지원 등에 총 1조원을 기부하고, 개인소장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는 한편,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을 포함해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기부금, 기증 미술품, 상속세 등의 규모가 가히 역대 최고라 할 만하다. 그러나 2008년 삼성 특별검사 때 조세포탈로 문제가 된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면서 증권거래세만 납부한 뒤 나머지 재산은 이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차명재산의 현재가치가 6조원 이상임을 고려하면, 이런 상속 계획이 고인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삼성의 상속세를 보는 시각
그럼에도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공익법인에 증여하는 등의 편법을 쓰지 않고 약 12조원을 납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이런 평가를 받는 건 그동안 한국 재벌 총수 일가의 상속 과정이 워낙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에게서 이건희 회장으로의 상속도 삼성문화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이용해 이뤄졌다. 이병철 회장이 1965년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으로 꾸준히 계열사 지분을 이전했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다시 사는 방식으로 지분을 상속받았다. 당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사업에 기부한 재산은 상속 및 증여 과세액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결국 이건희 회장은 증여세 5억원과 상속세 176억원만을 납부하고 1987년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었다.
이재용씨 등 3세가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도 수많은 불법·편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재용씨 등 3세에게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배정한 뒤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던 삼성생명 주식을 실명 전환해 삼성에버랜드에 저렴하게 판 일도 있었다. 또한 이재용씨 등 3세는 헐값에 인수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밑천 삼아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출자, 상장, 계열사 간 합병 등 온갖 불법·편법적 방법으로 재산을 기하급수로 증식했다. 그 결과 1994~1996년 이건희 회장에게서 61억4천만원을 증여받은 이재용씨의 재산은 2019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추산으로 약 7조1400억원이 됐다.
세대에 걸친 불법·편법 증여와 상속의 특혜를 이재용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누렸음에도 또다시 편법 상속을 시도했더라면 국민적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불법·편법의 유혹을 떨치고 이번만이라도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기로 결정한 건 분명 평가받을 만하고, 이것이 한국 재벌 총수 일가의 증여와 상속 관행에 분기점이 된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정상적인 상속세 납부를 이재용씨 사면을 요구하는 근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 상속세 납부도 또 다른 꼼수에 불과하며, 이재용씨 사면은 사법정의의 죽음,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 형해화를 가져올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으로 약 87억원을 횡령해 뇌물로 공여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재용씨는 최종적으로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뇌물·횡령액이 50억원이 넘으면 최소 징역 5년의 실형에 처해야만 하는데도 재판장의 자의적인 작량감경(법률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법원이 그 형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는 것)으로 절반의 형만 선고받은 것도 엄청난 사법 특혜였다. 뇌물을 수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것과도 비교된다.
그동안 한국 재벌 총수 일가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범죄의 유형·경중과 무관하게 3년 징역형에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이른바 ‘3-5 법칙’의 수혜자였다. 3-5 법칙이 존재한다는 건 법의 지배가 무너졌고, 재벌 총수 일가가 사회적 특수계급이 됐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적 특수계급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에 배치되며, 결국 정치적 민주주의가 허울뿐인 사회가 됨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다원성과 약자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이고 시장경제의 기초이며, 다양성과 공정경쟁을 담보함으로써 혁신과 진보를 가져오는 제도적 장치다.

이재용씨 사면은 민주주의의 문제
이재용씨가 사면되면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서의 미-중 분쟁이나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막연한 억지는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오만이다. 자동차용 반도체 등에 대한 일시적 공급망 교란과 미-중 대립을 특정 기업인이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버젓이 하는 언론과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를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반도체를 주고 백신을 받자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단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삼성 재벌의 영향력이 과도함을 보여줄 뿐이다. “사적 권력이 민주국가 자체보다 더 강력해지는 지점까지 이르도록 커지는 것을 감내하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자유는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지적이 뼈아프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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