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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과 성장축소 이분법 넘어
[COVER STORY] 녹색경제- ④ 탈성장
[133호] 2021년 05월 01일 (토) 홍기빈 tentandavia@naver.com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 ‘녹색경제로의 전환’이란 주제로 2011년 ‘제6차 녹색성장을 위한 서울이니셔티브(SI) 정책포럼’이 부산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6개국의 환경 공무원,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등 7개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국내 학계·산업계 인사 등 120여 명이 참가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를 비롯해 각종 생태위기가 다가오는 지금,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의 총체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구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성장 vs 성장축소’의 이분법이다. 일자리도 부족하고 아직 인구의 많은 부분이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상황에서 생태적 가치만 주장하며 급진적인 변화를 말하는 건 이상론이라는 것이 한쪽의 주장이다. 이들의 논지는 성장과 생태위기 관리를 조화시키는 지속가능한 성장, 혹은 후자를 전자의 전략으로 삼는 ‘녹색성장론’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대하는 쪽은 ‘성장 축소’를 주장한다. 생태위기의 원인은 산업화에 있으므로 그 논리에 따라 벌어지는 대량생산·대량소비를 20세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만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녹색성장이란 절대 성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의 언어도단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대중 기만에 불과하다고 본다.

반성장과 녹색성장의 사잇길
이런 화해 불가능한 이분법을 넘어서서 부의 개념을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이 아닌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좋은 삶’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그 의미로서 부의 확장을 새로운 산업사회의 조직 원리로 삼자는 ‘탈성장’이란 견해에 선 ‘도넛 경제학’의 입장도 있다.
경제학과 경제정책에서 ‘성장’이 열쇳말이 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19세기, 아니 1920년대까지만 해도 고전파와 신고전파를 잇는 주류 경제학의 핵심 관심사는 ‘균형’이었다. 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아예 성장이 멈춘 ‘정상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보기도 했다. 즉, 인류는 태곳적부터 빈곤을 면하기 위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왔지만, 그것이 GDP 성장으로 계측되는 ‘경제성장’이란 형태로 나타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바로 그 100년이 채 되기 전에 지구 생명권 전체는 파멸적인 손상을 입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성장’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따져볼 이유를 찾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혹은 그와 비슷한 ‘국민 생산/소득’의 개념은 기실 화폐로 계산된 부의 총량이나 총액을 일컬을 뿐이다. 인간과 자연과 사회는 항상 자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움직이게 돼 있다. 그중에서 오직 화폐로 계산된 채권·채무 관계를 발생시켜 장부에 포착된 활동만큼 금액으로 기록하고 계산하는 것이 GDP 개념이다. 아무리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무형의 것이라고 해도 화폐적 채권·채무로 포착되지 않는 한 여기에서 빠지게 돼 있다. 남녀의 가사노동을 생각해보라. 위키피디아가 창출한 어마어마한 ‘풍요’를 생각해보라. 한 푼도 받지 못하지만,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악보를 쓰는 예술가를 생각해보라.
그래서 도넛 경제학 같은 탈성장의 입장에선 GDP와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 인간사회의 부를 측정하는 (아주 불완전하고 미흡한) ‘회계 방식’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 대신 인간, 사회, 자연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화폐적 소득의 총량 외에 그것으로 수량화할 수 없는 여러 소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한다. 나아가 그것을 화폐 이외의 방식으로 수량화해 측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GDP 증가라는 하나의 목적(Telos)으로 짜인 회계시스템이 아니라, 병렬적인 여러 가치를 모두 계량화하고 종합적·복합적으로 평가해 집단행동의 선택지를 다변화할 수 있는 회계시스템으로 산업사회 조직을 관리·조정해나가자는 것이다. 산업사회를 되돌리자는 것도 아니며, 지금처럼 GDP 성장과 생태위기 사이에서 절망적인 줄타기를 계속하자는 것도 아니다. 산업사회를 조직하는 대안적인 방식을 마련해, 그 목표를 인간과 자연과 사회의, 진정한 의미의 더 많은 ‘좋은 삶’으로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경제시스템
이러한 여러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계량화할 것인가?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학>에서 아주 중요한 시도를 내놓는다. 생태시스템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 확인된 절체절명의 9개 자연적 지표를 내놓는다. 해양 산성화, 기후변화, 오존층 파괴, 대기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토지 개간, 담수 고갈, 질소·인 축적, 화학적 오염 등이다. 지금까지 9개 문제를 객관적으로 측량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로 발생하는 인간·사회·자연의 피해를 측량하는 방법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모두에게 최소한의 평등·자유·정의가 보장되도록 하는 12개 지표를 이야기할 수 있다.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성, 성평등, 주거, 각종 네트워크의 접근권, 에너지, 물, 식량 등이다. 이에 대해서도 같은 목적으로 마찬가지의 회계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산업활동 상한선은 앞의 ‘자연적 한계’의 회계로, 하한선은 ‘사회적 한계’의 회계로 조절해 그 사이에서 (두 원 사이의 ‘도넛’ 안에서 산업활동이) 이뤄지도록 조절하자는 것이다.
‘간디냐 스탈린이냐’는 2차 산업혁명기의 이분법을 21세기에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 스탈린을 따라 산업화의 악몽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고, 간디를 따라 물레 돌리는 삶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탈성장 경제학은 산업문명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GDP 성장의 강박에서도 풀려나올 것을 요구한다. 대신 인간·사회·자연의 더 많은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경제시스템의 성립이 이른 시일 안에 가능하며 그런 전환으로 우리의 모든 행동 방향을 시급하게 맞추자는 주장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방향이 잘못됐다면 속도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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