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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그림 미술계 미래인가
[TREND] 디지털 진품
[133호] 2021년 05월 01일 (토) 파트리크 보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일시적 광풍에 불과할까, 아니면 미술계 일대 혁명일까. 인터넷에서 자유로이 공유되는 미술작품이 ‘디지털 진품’으로 인정돼 거액에 판매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파트리크 보이트 Patrick Beuth
미하엘 브레셔 Michael Brächerr
베냐민 크나크 Benjamin Knaack
카롤라 파트베르크 Carola Padtberg
<슈피겔> 기자

 

   
▲ 미술계 신성으로 주목받는 비플은 그림파일 콜라주 작품 <일상: 첫 5천 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로 세 번째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영상 속 남성은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있다. 그는 뱅크시의 판화 에디션 작품에 라이터를 바짝 들이댄다. 라이터를 여러 차례 켜고, 카메라는 흔들린다. “천천히 불이 붙습니다”라고 남성은 말한다. 몇 초 뒤 판화 에디션은 라이터의 불길에 점점 사그라진다.
2021년 3월 초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의 한 공원에서 벌어진 ‘불탄 뱅크시’(Burnt Banksy) 이벤트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이 이벤트는 평이한 미술평론이 아닌, 디지털 미술작품 경매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판화 에디션은 불에 타서 파괴됐지만, 인터넷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Non Fungible Token)이라는 디지털 원본 보증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파일로 계속 존재하게 된다. 즉, 인터넷에서 탈중앙적 데이터베이스인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작품을 암호화하고 유일성을 인증해주는 일종의 ‘디지털 진품 인증서(Token)’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불탄 뱅크시’ 이벤트에 참여한 한 익명의 작가는 “우리는 신기술 옹호자와 미술가 양쪽 모두에 영감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 디지털 그림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현상은 일시적 광풍에 불과할까, 아니면 미술계 일대 혁명일까. 한 남성이 독일에서 열린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REUTERS

디지털 그림파일 6900만달러로 거래
블록체인, 뱅크시, NFT 등 암호광들의 세계와 미술계의 빅뱅을 둘러싼 열풍이 각종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21년 3월 초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국 아티스트 비플의 디지털 그림파일 콜라주(화면에 종이·인쇄물·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고 일부에 가필한 작품)가 블록체인 인증 방식이 적용된 예술품 형태로 6900만달러(약 772억원) 이상의 거액에 낙찰됐다.
미술계 신성으로 주목받는 비플은 그림파일 콜라주 작품 <일상: 첫 5천 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로 세 번째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현대 아티스트로 손꼽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그림 가격을 훌쩍 상회했다. 이것이 미술계의 미래일까.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NFT로 거래가 가능하다. 미술작품과 영상뿐 아니라 스포츠 명장면, 컴퓨터게임, 카툰 등 디지털 작품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트위터 게시물도 NFT를 붙이면 상품화할 수 있다.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의 2006년 최초의 트위터 게시물에 대한 경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잭 도시 CEO는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지금 막 내 트위터 설정했음”(just setting up my twttr)이라는 자신의 2006년 트위터 게시물 스크린샷을 NFT로 판매하겠다며 경매에 부쳤으며, 최종 291만달러(약 32억5484만원)에 낙찰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NFT 열풍에 합류했다. 머스크는 2021년 3월16일 음원을 NFT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머스크의 연인이자 캐나다 팝아티스트 그라임스는 신기술 NFT를 활용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몸소 보여줬다. 그라임스는 컬렉션 2점과 NFT 거래소 ‘니프티 게이트웨이’ 이미지 4점으로 구성된 20여 분 분량의 <전쟁의 요정>(WarNymph)을 경매에 내놓았고 약 58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디지털 아트 구매자는 미치광이일까, 아니면 차세대 미술계 붐의 선구자일까.
NFT 구매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익이라고 미술시장 전문가 로만 크로이슬 교수는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지루함을 느끼면서 대거 재테크에 나섰다.” 크로이슬 교수는 룩셈부르크대학과 스탠퍼드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로만 크로이슬 교수에 따르면 NFT 기술은 “혁명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 NFT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미술작품이 비로소 제대로 거래된다는 것이다. NFT 기술은 복제 천국 디지털 시대에 희귀해진 고유성을 가진 디지털 진품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핵심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에 투입된 블록체인 기술이다. 작가가 작품을 NFT로 전환해 NFT 거래소에 등록하면 작품 생성 시간, 소유자, 거래 내용 등이 블록체인을 통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는다. 수없이 복사된 미술작품은 그렇게 유일무이한 디지털 진품이 되는 것이다.
최초의 NFT인 디지털아트갤러리 크립토펑크(CryptoPunks)는 2017년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두 명이 배포했다. 크립토펑크는 개별 알고리즘이 만든 캐릭터 1만 개로 구성됐다. 초기에는 크립토펑크가 무료로 배포됐다가 지금은 개당 평균 2만5천달러에 판매된다. 2021년 1월 희귀한 크립토펑크는 약 85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예술적 가치는 없을지라도 크립토펑크보다 더 인기 있는 것은 가상 고양이를 사고 키우고 거래하는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라는 게임이다. 크립토키티 보유자는 짝짓기를 보내는 가상 고양이의 가격을 정할 수 있다. 크립토키티의 나이가 많을수록 향후 교배에서 가격이 올라간다. 가상 고양이가 무작위로 갖고 태어나는 속성(Cattribute)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NBA 명장면으로 2억달러 벌어
지금까지 이상하고 낯설게 들리는 NFT는 실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갖고 있다. 크립토키티의 제작사이자 NFT를 이용한 디지털 수집품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퍼랩스(Dapper Labs)는 최근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뒤 자산가치가 20억달러로 급성장했다.
대퍼랩스는 크립토키티에 그치지 않고 스타 야구선수들의 경기 명장면도 판매한다. 대퍼랩스는 미국프로농구(NBA)와 공동으로 NBA 카드 수집 서비스 ‘NBA탑샷’도 운영하고 있다. NBA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소속팀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상대팀의 덩크슛을 막아내는 명장면을 담은 짧은 영상에 한 익명의 유저가 무려 10만달러를 내기도 했다. NBA탑샷으로 지금까지 이룬 매출액만 2억달러에 이른다. NBA는 NBA탑샷에서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자동으로 수익을 올린다.
독일 뤼네부르크 출신 크리스토퍼 마르콰르트(39)는 NBA탑샷을 자주 방문하는 수많은 수집가 중 한 명이다. 마르콰르트는 과거에 NBA 명장면 사진첩을 수집했다가, 이제는 NBA탑샷을 수집하고 있다. 그는 NBA탑샷을 투자 수단으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첫 NBA탑샷을 18달러에 사서 20달러에 팔았다. 이후 그의 NBA탑샷 거래는 급물살을 탔다.
마르콰르트는 최근 ‘프리미엄 팩’이라는 수요가 몰리는 수집용 패키지를 샀다. 디지털 구매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만 20만 명이었는데, 스무 명 중 한 명꼴로 99달러 ‘프리미엄 팩’을 샀다. 그는 NBA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신인선수 앤서니 에드워즈의 명장면을 5천달러 넘는 가격으로 재판매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도 현재까지 NFT 경매 사상 최고가는 6900만달러에 낙찰된 비플의 디지털 그림 작품이다. 마이크 윈켈만이라는 실제 이름을 가진 비플조차 자신의 디지털 그림 작품이 경매에서 6900만달러에 팔리자 “세상에”(Holy Fuck)라고 반응했다. 구매자가 엄청난 경매 가격을 치른 작품이 “물리적으로 소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디지털 작품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비플의 디지털 그림 콜라주를 구성하는 개별 사진 5천 점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NFT로 판매된 단 하나의 디지털 데이터만이 ‘진품’이다. 해당 데이터가 NFT에 의해 진품으로 인증됐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NFT 디지털 아트 구매자는 으스댈 권리”를 사는 셈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다만 60만달러에 낙찰된 크리스토퍼 토레스의 날아다니는 팝타르트(과자의 한 종류) 모양의 고양이 애니메이션 GIF(이미지파일) ‘냥캣’(Nyan Cat)으로 으스대기를 원할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술사학가 이자벨 그라브는 이러한 디지털 미술작품을 “내용이나 비주얼이나 대부분 겉핥기식 단순한 작품”이라고 일축하면서 “예술적 관점에서 흥미가 떨어지므로 디지털 미술작품을 거론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단호한 평가를 한다.
기존 미술계 옹호자들은 디지털 미술작품 열풍을 투자 가치를 노린 경제적 동기로 국한하며 야박한 평가를 한다. 미술 거래상들은 아트박람회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줄줄이 취소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비해 디지털 아트에는 기존 물리적 갤러리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나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를 비롯한 온라인 마켓 플랫폼은 천문학적 수익을 기록하는 가운데, 기존 미술 거래상과 컨설턴트가 설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명백한 승자는 디지털 아티스트다. 디지털 아티스트는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유되는 디지털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데 애먹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NFT 덕택에 마침내 수익의 기회가 열렸다. 블록체인으로 작품이 재판매돼도 수익이 발생한다. 이렇게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 GIF 및 애니메이션은 NFT를 통해 유화(Oil Painting)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블록체인을 통해 위조 걱정 없이 안전하게 소유를 증명할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진품’을 박물관에도 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미술작품이 더 손쉽게 예술의 한 형태로 정착하게 됐다.
다만 투명성 부족은 디지털 아트계의 발목을 잡는다. 대표 NFT 거래소인 슈퍼레어(SuperRare)와 니프티 게이트웨이는 과거 갤러리들처럼 목에 한껏 힘을 주며 거들먹거린다. 디지털 미술작품 판매 시장은 불투명한 기준으로 초대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는 NFT 거래소에 자신의 디지털 아트를 판매하려면 불투명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플의 <일상: 첫 5천 일>을 낙찰받은 익명의 구매자인 메타코반은 자신이 경영하는 세계 최대 NFT 펀드업체 메타퍼스(Metapurse)를 통해 직접 디지털 아트 투자자를 유치하고 있다. 메타코반의 뒤에는 싱가포르 출신 테크 투자가가 있다고 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아트 열풍은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것인가? 미술시장 전문가 로만 크로이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현재 목도하는 것이 미술계 가격 거품에 불과한지 디지털 혁명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비플 그림 작품 경매는 예술사에 기록될 역사적 사건인 것만은 확실하다.”
‘불탄 뱅크시’ 제작자들도 해당 이벤트가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고 자평한다. 일단 이 이벤트는 짭짤한 수익을 기록했다. 판화 에디션은 비록 불탔지만, 블록체인을 통한 ‘디지털 진품’은 거의 40만달러에 팔렸다. 이는 원작 가격 9만5천달러의 4배에 이른다. 수익금은 좋은 목적에 기부됐다고 한다.
‘불탄 뱅크시’의 판화 에디션 제목인 ‘멍청이’(Morons)는 이만큼 적절한 표현을 찾기도 힘들다. 멍청이는 다름 아닌 경매 응찰자들을 가리킨다.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글귀가 적힌 뱅크시의 판화 에디션은 경매장 풍경을 희화화한 그림이었다.


ⓒ Der Supigel 2021년 제12호
Die Kopie als Original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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