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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팩션의 조건
[CULTURE & BIZ] <조선구마사> 조기 종영 사태
[133호] 2021년 05월 01일 (토)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드라마 <조선구마사> 홍보 화면. SBS 제공

최근 SBS에서 제작한 판타지 사극 <조선구마사>가 시청자들의 항의로 2회 만에 조기 종영됐다. 16부작으로 기획돼 제작비 32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던 대작 드라마가 80%나 촬영을 마친 상태에서 전격 폐지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시청자가 반발하면 폐지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것이어서 영상 제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논란이 된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어 역사물을 기획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이 깃든 좀비 형태의 ‘생시’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주요 시놉시스였다. 하지만 첫 회부터 태종이 악령에 홀려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고,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구마를 위해 바티칸 사제를 불러오는 설정 등이 지나친 역사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 조선 역사를 폄훼하는 부분이 다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여기에 배경으로 나온 중국풍 기생집과 음식 소품, 의상 등이 중국 ‘동북공정’의 연장선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조선구마사>의 작가가 전작 <철인왕후>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을 무시하는 대사를 썼던 점 등이 부각되면서 중국 자본이 동북공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드라마에 압력을 가한 것이라는 의심이 확산됐다. 특히 드라마 <빈센조>에 중국 비빔밥 제품을 넣었던 점 등과 연결되면서 ‘드라마 폐지’ 주장은 순식간에 공감대를 넓혔다.

의도적 설정? 우발적 사고?
시청자가 분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야기 설정과 대사 등이 역사왜곡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의심될 만큼 중국풍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두 주장은 맞물리지만 개별 사안으로 분리될 수 있는 문제였다.
중국풍 배경 문제에는 의도적 개입과 우발적 오류의 두 가능성이 모두 있다. 최근 드라마 제작 수가 늘어나다보니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욕구가 커진 상태다. 공상과학(SF)물, 히어로물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정교한 스토리 전개보다는 강한 ‘비주얼’이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극에서도 기존 이미지를 넘어 화려한 비주얼을 추구하는 경향이 확산됐다. 고려, 삼국, 더 나아가 삼한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제작이 늘고 있다. 과거 사극들이 주로 다뤘던 조선시대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특히 조선시대 이전은 사료가 적어 고증도 쉽지 않다.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기 더 쉽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금 더 색다른 화면을 위해 중국풍, 일본풍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한다. 어차피 철저한 고증이 어려우므로 차별화된 동양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인접 국가 이미지를 슬쩍 섞는 것이다.
<조선구마사>도 이런 차원에서 중국풍 이미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편당 2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작 사극이라면 새로운 비주얼을 위해 많이 고심했을 터다. 이 과정에서 “이 정도는 상상 가능하겠지” 하며 손쉽게 중국 이미지를 썼을 수 있다. 최근 드라마, 음악방송 배경에서 자주 나타난 ‘왜색’ 논란도 이런 맥락에서 불거진 사건들이었다.
실제 그랬다면 이 문제는 제작진이 더 경각심을 가지고 고증과 점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우리 드라마, 영화 제작 때 이런 고증 작업이 허술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특정 세력의 압력이 아니라 제작 관행이 문제인 것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도 현재 드러난 정황만으로는 이 가능성이 커 안타깝다.
그러나 스토리와 배경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이었다면 논의는 어려워진다. 역사물에서 어느 수준부터가 ‘왜곡’에 해당하는지, 영화나 드라마는 얼마나 상상력을 더할 수 있는지 등을 가르기가 쉽지 않다. 고증을 중시하는 일부 역사학자가 정통 역사물이 아닌 <조선구마사>에서 다뤄진 부분을 모두 역사왜곡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격차 효과’와 ‘불쾌한 골짜기’
<조선구마사>가 역사와 허구가 섞인 팩션장르여서 더 그렇다. 팩션이란 역사적 사실을 뜻하는 ‘팩트’와 가공의 이야기를 뜻하는 ‘픽션’을 합성한 말이다. 주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가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장르를 지칭한다.
팩션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팩션 스타일을 잘 알린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가장 대중화한 것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한다. 베스트셀러 소설의 영화화로 큰 성공을 거둬 영상물에서 팩션 장르가 굳건히 자리잡게 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이 영화로 성공하면서 팩션 장르가 정착됐다. 이후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같은 팩션사극 영화들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끌어 흥행 보증 분야로 자리잡았다.
상상력이 더해지다보니 팩션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난다. 역사왜곡 논란이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김기덕 교수는 ‘팩션 영화의 유형과 대중적 몰입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성공적인 팩션이 되려면 ‘대중적 몰입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호응 높은 팩션물이 되는 조건은 얼마나 역사에 근접했는지가 아니라, 대중적 몰입을 높이는 상상이 더해졌는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김기덕 교수는 대중적 몰입을 높이기 위해 ‘격차 효과’와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격차 효과는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어느 정도 정보 차이가 있어야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허용 범위를 넘어서면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팩션물에 이 이론을 접목하면, 우리가 알던 역사적 사실에 색다른 점을 가미해야만 주목받을 수 있다. 그 새로움이 일반인들의 사실 체계에서 너무 동떨어지면 대중적 몰입도가 떨어진다. 중간 정도의 새롭고 낯선 정보가 유입될 때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개입하면서 흥미를 느끼고 몰입감을 높인다는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과 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인간과 유사점이 높을수록 호감도가 상승하다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영상물에서는 과거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3D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는 일화로 유명해졌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3D 인물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됐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무서운 느낌을 줬다. 영상물에서 현실감을 주는 건 중요하지만 관객의 ‘주관적’ 느낌을 고려하지 않은 어설픈 현실감은 역효과를 낸다는 이야기다.
팩션물에서도 불쾌한 골짜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중의 역사적 인식체계를 무시한 상상이 덧붙여진 상태에서 기술적·내적 완성도만 높아지면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김기덕 교수의 평가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당대의 대중적 상상계에 부합하는 것을 추가해야 대중의 몰입이 높아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구마사>의 상상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왜 태종 시대에 악령과 생시들이 출현했는가, 태종은 왜 백성을 죽여야 했는가, 서양 구마사들은 왜 필요했는가 하는 점 등에서 대중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부분도, 설명을 원하는 부분도 찾기 어렵다. 역사왜곡이란 외피를 입은 비호감이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리얼라이즈픽쳐스 제공

<광해> 성공의 이유
성공적인 팩션 사극으로 일컫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사료 <광해군일기>에 기록되지 않은 15일을 담은 영화다.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일기의 단 한 줄이 영화의 모티브다. 영화는 이 한 줄에서 15일간 또 다른 광해군이 있었다는 과감한 픽션을 끌어냈다. 그 상상이 기존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부분을 대중에게 풀어주고, 대중이 원하는 군주의 모습으로 구현돼 높은 호응을 얻었다. 아무도 이 과감한 상상을 역사왜곡이라 하지 않는다.
최근 JTBC가 제작 예정인 드라마 <설강화> 논란도 비슷한 차원에서 생각해봄직하다. 1980년대 운동권인 줄 알았던 청년이 실제로는 북한 간첩이었다는 설정이 대중의 기대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부정했던 군사정권의 정치논리에 가까워 불쾌한 골짜기를 불러낼 가능성이 크다. 실수로 북한에 떨어져 북한 군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가능해도 이런 설정에 대중이 깊게 몰입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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