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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로드의 전제’ 그리고 ‘새는 물통’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33호] 2021년 05월 01일 (토) 조계완 kyewan@hani.co.kr
   
▲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2021년 4월1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번 개각에서 경제 부처 장관 자리에 모두 관료 출신이 임명됐다. 연합뉴스


2021년 4월16일 이뤄진 일부 정부부처 개각에서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고용노동부 등 경제 부처 장관 자리에 모두 관료 출신이 임명됐다. 개혁보다 안정적 관리를 중시하는 ‘관료 전문가 집단’에 문재인 정부 말기 경제정책 전반을 맡긴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흔히 ‘영혼 없는 관료’라고 부르지만 경제관료는 또 다른 ‘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이다. 선출직 정치인 못지않게 시장·산업 질서와 구조를 바꾸는 막강한 힘을 가졌고, 비공개 실증통계 수치라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각종 경제 데이터는 정책을 만드는 기초다. 특정한 정책·제도를 이런저런 규모로 도입했을 때 다른 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통계자료를 활용해 꽤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국회·언론에는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비밀에 부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관료를 통제한다 해도 사실 ‘진정한 권력’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 관료조직 구조에 새겨 있고 그 안에서 숨겨진 채 작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도의 판단 능력을 갖춘 지적 엘리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치가나 관료가 철저하게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 가정을 케인스가 태어난 영국 지명의 이름을 따 ‘하비로드의 전제’라고 한다. 경제관료가 과연 고결하고 이타적인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경험적으로 볼 때 경제관료는 자유시장 원리를 신봉하는 집단이다. 30~50년 전에 일본 통산성(MITI) 간부들과 한국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국가 주도’ 경제발전을 기획했고 나중에 이를 ‘동아시아 경제 기적의 요체’라고 분석한 책들이 나왔으나, 두 나라 경제관료들이 시장 원리를 정책 신조로 삼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관료의 비효율을 틈날 때마다 공격했다. 자신들의 경제 이념상 관료를 곧 국가·정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부자들한테 거둬들인 세금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종 도달하는 몫은 정작 30%도 채 안 되고 나머지는 ‘물이 새는 물통’처럼 도중에 관료조직의 집행 공무원 인건비 등으로 새어 나간다고 시비를 걸곤 했다.
코로나19 제약 조건 아래서 자본(기업)과 노동, 분배를 둘러싼 정책 조합을 찾을 때 다른 모든 조합보다 나은 이른바 ‘파레토 우월적’인 단 하나의 정책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 정책을 찾는 일은 시장 근본주의 두뇌를 가진 관료 전문가 집단에만 맡겨놓을 수 없고, 본질적으로 정치·사회 과정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빵을 사 먹는 사람은 그 빵의 원료인 밀을 만든 사람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기독교인인지 유대인인지 알지 못한다.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 파시스트 중 누가 재배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시장은 오직 효율적인 자원 배분에만 관심을 둘 뿐 경제 행위와 인종·종교·정치 행위를 철저하게 분리한다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특유의 언설이다. 반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매일 아침 5시30분에 내 아파트 뒷문을 열면 우유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유 배달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당혹감이 사회학자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술회했다.
‘하비로드의 전제’가 맞는지와는 별개로, 단순히 효율적 자원 배분을 넘어 생산·분배 과정에서 기업과 노동이 맺는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공정·정의 가치를 주요 정책 좌표로 삼는 경제 장관들을 고대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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