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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화폐권력 집중’ 가속화 우려
[FINANCE] 디지털화폐의 그림자
[132호] 2021년 04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1년 2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쇼핑몰의 계산대에 모바일 간편 결제 수단인 알리페이, 위챗페이와 더불어 시험 사용 중인 인민은행의 ‘디지털 위안’으로 결제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REUTERS

최근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각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발행 준비를 하고 있다. 2021년 초 국제결제은행(BIS)은 65개 중앙은행 가운데 86%가 어떤 형태로든 CBDC 관련 작업을 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앙은행의 15%는 시범적 시행을 위한 연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화폐를 현실화한 나라도 있다. 중국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일부 지역에서 일부 주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 실험을 진행 중이다. 공식 사용도 멀지 않았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전후가 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득하게만 보였던 미래가 우리 곁에 와 있다. 돈은 이미 물리적 형태를 벗어나 급속히 전자화하고 있다. 현금이 사라지고 있지만 삶을 영위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CBDC나 물리적 화폐나 중앙은행이 발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점은 없다. 얼핏, 그것이 본격화한다고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인류 역사를 반추해보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미래를 그려보는 게 의외로 정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 고양된 인류의 자유는 21세기 들어 조금씩 잠식돼간다. 기술 발전 때문이다. 이미 현대 기술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는다. 마음만 먹으면 개인 동선은 물론 어디서 무얼 먹고 어떤 일을 했는지까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익명성과 프라이버시에 기초한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CBDC는 이런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일거에 파괴 또는 왜곡할 수도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선악’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것의 후퇴는 불가피하다.

금융시스템 왜곡
개념은 간단하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민간 암호화폐와 동일한 기술을 사용한다. 즉각적 지급결제, 더 빠른 정산, 낮은 거래비용을 장점으로 한다. 다른 점도 있다. 분산화보다는 집중화를 특징으로 하고, 현금과 일대일의 가치를 갖는다. 핵심은 CBDC가 금융기관만을 상대로 할 건지, 아니면 일반 대중에게도 발행할 건지다.
현재 중앙은행 시스템은 상업은행에만 예금계좌를 제공한다. 중앙은행은 이들 은행을 대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계좌 개설을 허용한다면 상황이 매우 극적으로 바뀔지 모른다. 중앙은행은 국가 뱅킹 시스템 감독자, 최종 대부자에 더해 상업은행의 경쟁자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중앙은행은 적어도 기술적으로 파산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에 예치한 예금이 가장 안전한 이유다. 중앙은행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예금을 수취한다면 가계와 기업 대부분은 중앙은행에 예금하려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상업은행은 중앙은행과 경쟁 관계에 놓인다.
상업은행이 살길은 경쟁에서 이기려 높은 이자를 제시하는 것밖에 없다. 이는 통화시스템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현재는 중앙은행이 설정한 기준금리에 따라 시중은행 금리가 결정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예금을 유치하면 시중은행 금리가 기준금리와 동떨어져 움직일 수 있다. 이는 다시 은행 간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은행 간 금리가 오르면, 뱅킹 시스템의 스트레스는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은행 위기가 발생할 때다. 이때 CBDC는 금융시스템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은행 위기를 수습할 책임을 진다. 은행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고 재구조화를 시행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의 경쟁자가 된 상황이라면 이런 전통 수습책이 작동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은행 위기 때 시중예금은 중앙은행으로 몰릴 것이 분명하다. 이는 비교적 건강했던 다른 상업은행의 위기를 증폭한다. 최악의 경우, 중앙은행이 경쟁자인 민간은행을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정한 은행을 살리기보다는 폐쇄하는 선택을 할 개연성이 높다. 정치인도 이에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구제금융에 비판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민간은행 폐쇄, 해당 은행 예금의 중앙은행 이전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전체 뱅킹 부문의 국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의 선악을 떠나 금융시스템 재편은 불가피하다.
CBDC는 인류의 경제적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예금 통제를 통해서다. 중앙은행의 금리 설정에 한계가 없어진다. 중앙은행은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시장과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마이너스 금리 벽을 언제든 허물 수 있다. CBDC를 제외한 물리적 현금을 없애거나 그것의 인출을 금지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중앙은행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할까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금융위기를 동반한 심각한 침체에 중앙은행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 1순위는 마이너스 금리가 될 것이다.
추가로, 이미 알고 있듯 현금이 사라지면 익명성, 즉 프라이버시가 사라진다. 모든 거래는 추적된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없다. 이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신용카드와 디지털화폐 사용만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우린 벌거숭이가 된다. CBDC는 이런 흐름을 가속한다. 중앙은행이나 정부 기관은 모든 소비자의 경제 심리 프로파일링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긍정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지만, 반대로 자유를 억압하는 데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CBDC 남용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유일한 힘은 정치인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다. 하지만 경기 침체 또는 위기 때 방어막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업률이 오르고 정치적 불안정이 깊어지는 긴급한 상황에서 경제를 구해 국민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다.

   
▲ 2020년 6월 블록체인 강국인 리투아니아의 조폐국 직원이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와 교환하기 위해 만든 실버 코인을 살펴보고 있다. REUTERS

정부 기관화
CBDC가 본격화하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현재보다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으로 정부 기관화가 될 수 있다. 현재의 뱅킹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을 조절한다. 이는 민간은행에 돈을 공급하는 것에 그친다. 돈의 유통은 민간은행이 책임진다. 최종적인 돈의 흐름을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할 수는 없다.
중앙은행이 CBDC로 소매금융까지 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필요한 곳에 직접 신용을 공급할 수 있다. 이는 권력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통화정책이 정부 재정 정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중앙은행 통제가 더 강해짐에 따라 중앙은행의 정부 기관화가 가속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앙은행이 CBDC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 직접적 제재나 통제를 가할 힘을 갖는 것이다. 중국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최근 중국은 공산당 비판자의 계좌를 동결했다. CBDC로 이런 절차는 더욱 간단해진다. 예를 들어 과속이나 무단횡단, 쓰레기 무단투기 등을 빈번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인출 한도를 줄이거나 계좌에서 벌금·과태료를 빼내갈 수 있다.
‘화폐권력’ 집중은 불가피하다. 설마 이런 미래가 올지 회의적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정부 압제의 강화나 전체주의는 생각보다 쉽게 온다. 인류의 지성은 발전하지만 전체주의 망령은 여전하다. CBDC 발행의 첫 단계는 금융기관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은행·금융 위기 때 이것이 일반 대중으로 확대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유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앙은행이 공익을 위한 자비로운 기관이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양적완화, 초저금리 정책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정책으로 일어나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좋은 걸까?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중앙은행의 각종 정책으로 자본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은 사라졌고, 창조적 파괴란 자본주의 개념은 퇴색했다. 사라져야 할 기업이 숨을 쉬면서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란 경제 원칙이 무너졌다. 저금리로 예금자와 은퇴자의 고통이 가중되지만,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은 끝없이 부풀고 있다.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의 부채는 나날이 늘고, 투기는 투자란 이름으로 포장돼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비웃는다. 모두가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부작용이다.
모든 제도나 정책의 시행에는 명암이 함께한다. CBDC는 분명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 그림자를 봐야 한다.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이다. CBDC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자유를 원한다면 자문해봐야 한다.
인류가 자유를 쟁취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 대부분은 억압의 시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콤한 자유의 시대가 미래에도 보장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중앙은행 경제 전체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럴 때가 됐다. 인공지능 윤리를 세우듯, 미래 중앙은행 권한과 윤리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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