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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년’이 주는 교훈
[박상인의 경제직설]
[132호] 2021년 04월 01일 (목)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이스라엘의 지중해 경제도시 텔아비브에서 2018년 12월 생활물가 인상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만8천달러(약 4300만원)였다. 2011년 1인당 GDP가 처음 3만달러를 넘어선 뒤로 연평균 2.4~4.0% 성장을 지속한 것이다. 2020년 1월 현재 이스라엘 인구는 약 91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아랍계가 인구의 20.9%, 세속주의를 극단적으로 배격하는 초정통파인 하레디(Haredi) 유대인이 11.8%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아랍계와 하레디 유대인은 사회·종교적 이유로 교육수준이 낮고 노동시장 참여율도 저조하다. 이들이 전체 인구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데도, 이스라엘 경제가 이처럼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경제성장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과거를 극복한 두 차례의 과감한 구조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좌파 페레스 총리의 경제개혁
1948년 건국 이후 1984년까지 이스라엘의 경제는 이스라엘식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체제인 ‘마파이(Mapai) 체제’였다. 이 체제에서 정부와 노동조합연맹(히스타드루트)이 이스라엘 주요 기업들을 소유했는데, 1985년 기준으로 이들 기업은 제조업 생산량의 5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특정 부문에 투자보조금을 제공하고 노동소득에 높은 세율을 매기는 정책으로 생산요소 배분에 관여했고, 최저소득을 보장해주고 주택·건강보험·사회서비스를 거의 공짜로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런 마파이 체제 아래에서도 이스라엘 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을 기습적으로 공격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정부지출 비중은 국방비 지출이 급증함으로써 가파르게 상승했고,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유대교의 성스러운 기간인 ‘욤 키푸르’(속죄의 날)에 일으킨 전쟁 이후에는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
정부지출 급증은 조세 부담과 재정 적자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1974~1985년 재정 적자는 GDP의 14% 수준이었다. 조세 부담과 재정 적자 급증은 인플레이션, 경제에서 불확실성 증가, 높은 이자율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민간투자 부진, 성장률 저하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욤 키푸르 전쟁 이후인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의 기간을 ‘잃어버린 10년’(The Lost Decade)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10년 기간인 1977년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 집권한 우파 정권은 이스라엘 경제체제를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재정지출 축소와 민영화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결국 1984년 선거에서 좌파와 우파가 대연정을 구성했고, 노동당 당수인 시몬 페레스가 대연정의 첫 2년 동안 총리를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좌파인 노동당의 페레스 총리가 이스라엘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개혁에 착수했고, 이른바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1985 Economic Stabilization Program)을 통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급속한 전환을 이뤄냈다.
그런데 1985년 이후 20여 년간 추진한 민영화의 결과로,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거대한 금산복합 재벌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경제 전반에 ‘경제력집중’(Economy-Wide Concentration) 문제가 부각됐고, 2010년 전후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학계·언론·정부 차원에서 본격화했다. 이스라엘 의회(Knesett)는 2013년 12월 ‘반경제력집중법’(Anti-Concentration Law)을 반대표 없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경제력집중법에서 기업집단의 출자 단계 제한과 금산분리 조항의 집행은 2019년 말에 완료됐고, 경제력집중 해소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경제력집중 재발을 막기 위해 지속해서 반경제력집중법의 경제력집중 억제 조항을 집행하고 있다. 이러한 반경제력집중법을 입안하고 집행한 정치세력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정권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1960년대 이후 나라를 가난에서 탈출시키고 세계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정부주도-재벌 중심의 박정희 개발 체제가 오늘날 한계에 도달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른바 진보정권에서도 정부주도-재벌 중심 정책의 본질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정부주도 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직접 ‘승자를 선택’(Winner-Picking)하는 개입이다. 그 정책 이름이 산업이든 벤처지원이나 연구개발(R&D)이든 허울일 뿐이다. 정부의 승자 선택 정책은 제조업에서 재벌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했고, 경제력집중의 해소 없는 규제완화는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더 심화하고 있다.

늦출 수 없는 ‘재벌 개혁’ 시사
경제력집중 심화는 재벌을 사실상 우리 사회의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만들었다.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와 단가 후려치기가 여전히 만연하고, 임금과 소득 불평등은 확대됐다. 공정(Process) 혁신에선 성과를 내고 있으나, 슘페터적인 ‘근본 혁신’(Drastic Innovation)은 제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경쟁력 중심의 제조업은 조기퇴직과 자영업 포화상태, 노인 빈곤으로 이어지고, 이를 지켜보고 ‘공시족’(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내몰린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지원책으로 양극화와 인구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더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개혁을 늦출 수 없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10년’ 이후 개혁을 곱씹어봐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반면교사 삼아봐도,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자명하지 않은가.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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