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 특집 2011
     
한국, 아시아의 할리우드 가능한가
[Special Report]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고정민 economyinsight@hani.co.kr

고정민 홍익대 교수·창조산업연구소장
 
 ‘텔레노벨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텔레노벨라는 남미에서 유행하는 드라마(Soap Opera)다. 남미는 라틴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그런데 남미 국가에서 왜 미국이나 라틴유럽의 드라마가 아닌 텔레노벨라가 인기를 끄는 걸까? 이는 ‘문화의 지역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화의 지역화 현상이란 문화적 근접성에 기인해, 문화와 정서가 비슷한 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적 문화 블록을 말한다.
이는 ‘문화의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 문화는 미국 문화, 즉 할리우드 문화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미국의 막강한 자본과 인력을 바탕으로 세계 문화를 점령하고 있는 할리우드는 미국 문화로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문화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문화 글로벌화의 흐름 속에서도 문화와 정서가 비슷하고, 언어적으로 소통이 용이한 지역끼리 동일한 문화적 조류와 접점을 형성하면서 문화적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 
   
▲ 심형래 감독·주연의 영화 <라스트 갓파더>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반발
텔레노벨라는 문화의 지역화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텔레노벨라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 제작되는 TV 시리즈물로서, 텔레비전의 ‘텔레’(tele)와 소설을 의미하는 ‘노벨라’(novela)의 합성어다. 우리나라 드라마와 비슷한 형태로 멜로물이 주류를 이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 독일이 결승전에서 맞붙었는데, 브라질에서 자국의 결승전 중계방송의 시청률보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텔레노벨라의 시청률이 더 높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텔레노벨라는 역사적·언어적 동질성에서 출발해 제각각 이질적으로 발전해온 라틴아메리카의 각 구성원을 다시 하나로 묶는 문화적 접착제 구실을 하고 있다.
텔레노벨라는 이제 남미에 머물지 않고 할리우드처럼 글로벌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트콤 <어글리 베티>는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1999년 처음 만들어졌으나 2000년에는 멕시코, 2003년에는 이스라엘과 인도, 2005년에는 러시아와 독일, 이어서 중국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브라질의 방송 복합기업인 <글로부>는 총매출의 3분의 1은 자국, 3분의 1은 미국,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기타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현재 텔레노벨라는 80개국 언어로 번역해 120개국에 수출한다. 전세계 20억 명의 시청자, 즉 전세계 인구 3분의 1이 시청하는 글로벌 드라마다.
비슷한 예를 인도에서도 볼 수 있다. 인도는 연간 약 1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세계 최대 영화제작국으로서, 제작 편수로 볼 때 연간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드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보다 앞선다. 인도는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98%로 매우 높고, 3시간 이상의 상영 시간과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춤과 노래가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인도 영화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예술성이 높아 인도 인근 지역과 일부 이슬람 지역에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따라서 인도 영화도 문화의 지역화 현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인도 영화 ‘발리우드’가 세계시장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고 있다. 인도 영화는 텔레노벨라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지역화를 넘어 글로벌화로 비상하고 있다. 인도의 영화 제작 노하우를 기반으로 세계인이 좋아하는 보편적 스토리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인도 영화사가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가 하면 해외 사모펀드, 영화 스튜디오, 영화 펀드 등 해외 투자사들이 인도 발리우드로 몰려오고 있다. 발리우드가 ‘제2의 할리우드’로 발돋움하려는 것이다.
문화의 지역화 현상 중에 아시아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문화가 있다. 바로 ‘한류’다. 한류는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붐을 형성하는 문화 지역화 현상이다. 1997년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방송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한류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접목된 혼종 문화로, 이 지역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류의 역사를 보면 항상 안정적으로 인기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한류는 시대별로 강약을 거듭하며 지속 가능성에 항상 의문이 존재했다. 1990년대 말 가수 ‘H.O.T.’ 등이 중국에서 인기를 끈 뒤 침체기에 돌입하면서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욘사마’ 붐을 일으키면서 한류의 맥을 이어갔다. 이후 드라마 <대장금>이 다시 한류를 확산시켰지만 그 뒤 ‘킬러’ 콘텐츠의 부재로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팽배해졌다. 그러나 이제 걸그룹 등 음악이 ‘신한류’를 이어가면서 한류가 부활하고 있다.
   
▲ 노래공연을 열고 있는 아이돌 가요 그룹 ‘수퍼주니어’.

 
걸그룹이 주도하는 ‘신한류’
이처럼 영화·드라마·음악·게임 등이 상호 교차하면서 한류를 견인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드라마, 90년 후반에는 음악, 2000년대 중반에는 영화와 드라마, 2000년대 후반에는 음악과 게임이 각각 한류를 주도했다. 지역별로 보면 1990년대에는 중국과 동남아, 2000년대 초에는 동남아, 2000년대 중반에는 일본, 2000년대 후반에는 중앙아시아·서아시아·일본·동남아 등으로 한류가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야와 지역을 번갈아가며 한류가 발전하는 포트폴리오적 한류 흥행 공식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본과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한류 붐을 이끄는 것은 신한류다. 화려한 외모와 노래 실력, 현란한 춤 등을 내세워 소녀시대와 카라 등 걸그룹이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드라마가 중심이 됐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생성되기 시작한 케이팝(K-Pop) 중심의 신한류로 한류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신한류는 처음 동남아에서 시작됐지만, 남자 아이돌 가수에서 걸그룹으로 급격히 선회하며 최근에는 일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일본에서 소녀팬들이 한국 걸그룹의 춤·화장법·패션 등을 따라하는 등 신한류는 일본 문화에서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한류의 확산은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시사한다. 신한류는 한류가 침체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부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류가 지속 가능함을 보여줬다.
드라마와 음악, 게임은 한류의 주류로서 자리잡았지만, 영화는 어떠한가. 2000년대 초 <쉬리>가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높은 평가와 함께 영화 한류가 형성됐다. 그 뒤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미녀는 괴로워> 등으로 영화 한류가 성장했지만, 드라마와는 달리 장기간 붐을 형성하지 못했다. 유럽 등에서는 한국의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등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김기덕이나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현지 극장에서 상영돼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일부 마니아 사이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한류의 주 고객층인 대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영화 한류는 한류의 부산물적인 성격도 있다. 한류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은 한류 스타가 출연한 영화가 해외에서 흥행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영화의 작품성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형성된 한류의 후광을 받은 것으로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을 정점으로 2006년 이후 영화 수출이 급격히 하락해, 한국 영화산업의 돌파구로 모색되던 한국 영화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영화의 해외 관객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실제로 한국 영화의 수출은 2005년 7500만달러에서 2006년에는 2400만달러, 2009년에는 1400만달러로 하락했다. 이는 영화 한류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구나 일본 외 지역에서는 실적이 미미하다. 해외에서 한국 영화 관객이 줄어들면서 한국 영화의 편당 해외 판권 가격도 2005년까지 38만달러에서 2007년에는 8만달러로 대폭 하락했다.
그런데 최근 영화 한류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연예인의 현지 진출이다. 한국 배우가 미국 영화에 직접 캐스팅돼 영화 한류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류는 콘텐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배우로서 미국 영화에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 미국 시장은 우리나라로서는 궁극적으로 진출해야 하는 미답의 신대륙이다. 미국은 막대한 시장규모와 세계적인 영향력 때문에 한국이 진출해야 하는 궁극적인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김윤진·이병헌·정지훈 등 한국의 연예인이 미국 영화에 직접 출연하는 형태로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시작했으며, <만추> <라스트 갓파더> 등은 직접 미국 상륙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진출은 흥행성은 차치하더라도 한류의 또 다른 형태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CNN>은 지난해 말 “한국은 아시아의 할리우드”라고 평가했다. 아시아 대중문화의 기수로서 한국이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한국의 콘텐츠는 아시아에서 경쟁력이 있다. 문화 콘텐츠 산업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경쟁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국가 간 교역이라는 형태를 통해 이동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는 콘텐츠 제작 능력과 CT(Culture Technology)를 기반으로 한 제작 기술 등으로 여전히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할 능력을 갖췄다. 따라서 한국이 ‘아시아 할리우드’로 부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한국인은 끼가 있고, 역동적이며, 유행에 민감하다.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전문적·창의적인 문화예술 인력이 풍부하고, 인터넷에서 직접 작품을 만들며 타인의 콘텐츠를 평가하고 자신의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수많은 네티즌이 있다. 이 능동적인 네티즌들 때문에 한국은 좀더 디지털적인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소셜 네트워크 타고 글로벌로
이제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의 도약이 필요하다. 최근 국경을 초월한 방송매체와 소비자가 만든 콘텐츠 UCC(User Created Contents)가 전세계에 유통돼, 대중문화의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유튜브에서의 인기를 통한 무료 홍보 영향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지역의 변방에 머물던 한류였지만 이제 글로벌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로 인해 한류가 아시아류에서 글로벌류로 발전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류가 글로벌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한류 스타가 나와야 한다. 스타와 콘텐츠는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가졌다. 좋은 콘텐츠가 나오면 스타가 탄생하고,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됐을 때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 특히 스타성이 가장 높은 것은 가수와 영화배우다. 따라서 미국에서 영화나 음악이 인기를 끈다면 세계적인 한류 스타 탄생이 가능하다.
한 콘텐츠의 반짝 성공으로 한류가 지속될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포트폴리오적인 히트 공식을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올인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다양한 분야에서 포트폴리오를 형성할 때 한류는 확대재생산을 통해 붐이 이어질 수 있다.
spin3001@naver.com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정민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1)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