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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를 위한 눈물
[Special Report]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마티아스 마투섹 economyinsight@hani.co.kr

마티아스 마투섹 Matthias Matussek 저널리스트

그들은 기억력이 좋지 않은 후세가 자신을 잊어버리지 못하도록 이곳 그로먼스 차이니즈 시어터 앞 할리우드 대로 위에 그들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남겨 그 위로 걸어다니도록 했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손자국은 생각보다 작고, 게리 쿠퍼의 손자국은 보통 크기다. 전설적인 댄서 엘리너 파월의 구두 자국은 도금이 돼 있고, 클라크 게이블의 발자국은 보통 사람들의 발자국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어쩌면 좀더 특징적인 것, 그러니까 귀의 모형 같은 것을 남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이 인장들은 “우리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해질 녘 황금시간대에 나타나 길 건너 히스테리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굶주린 팬들이 몇백m에 걸쳐 줄지어서 먹이를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간 자들은, 현재 태양계에서 가장 유명한 빛의 형상인 앤절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였다. 
   
 

 
“앤절리나, 날 입양해줘요!”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는 이제 많지 않다. 팬들은 자신의 우상을 향해 손을 뻗고, 사진을 찍고, ‘앤절리나, 날 입양해줘요’라고 쓴 포스터를 흔들었다. ‘비참한 인생에서 날 구원해 당신의 우주로 데려가줘요’라는 말인 것일까?
팬들이 서 있는 곳은 오스카상 미니어처와 메릴린 몬로 커피포트 같은 저속한 기념품이 떨이로 팔리고 있는 초라한 가게 앞이었다. 열광하는 팬들 앞에 서 있는 앤절리나는 생각보다 체구가 훨씬 작아 두려움이 없는 섬세한 도자기 인형처럼 보였다. 눈길을 주는 곳마다 터져나오는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은 환성 속에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몸을 돌려 사진기자와 리포터들이 기다리고 있는 레드 카펫으로 향할 때까지 앤절리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진기자와 리포터, 이들이야말로 스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좀더 고압적이다. 그들은 고함과 같은 목소리로 “앤절리나, 어깨 위로 얼굴을 돌려요.” “이번엔 패션 샷!” “두 번째 줄에 서요!” “이쪽을 봐요!”라고 지시했다. 그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이날은 새 액션영화의 시사회가 열리는 날로, 주인공은 원래 앤절리나 졸리지만, 수염을 밀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 곁에 서 있는 브래드 피트의 존재 역시 중요했다. 황색언론이 또 한 번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 이후 가장 흥미로운 할리우드 커플에 대해 가십을 쏟아냈지만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컨트롤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업 조건이 예전보다 더 엄격하다. 은막의 신들은 더 인간적이고 더 평범해졌다. 대중은 스타들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매거진 <더 스타>는 두 사람의 결별을 알리는 기사 제목 아래 단독 입수했다는 앤절리나의 흑백 누드 사진을 게재했다. 이에 대항하려면 레드 카펫 위의 쇼가 필요하다. 그곳에서는 기적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두 ‘신의 아이들’이 같이 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상대방의 눈동자 속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브래드가 앤절리나를 놓아주자, 그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녀의 피부, 머리카락, 미소, 막 사랑에 빠진 커플의 짝짓기 춤이었다. 그들은 잠깐 이야기하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마 “토마토 샀어요?”라든가 “아이들이 지금 다 자려나”, 아니면 “로또 상금 받아왔어요?”였을지 모른다.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녹색 눈, 21세기의 세계 불가사의에 포함시켜야 마땅한 기적과도 같은 입술을 가진 앤절리나는 “두 아이를 낳고 난 뒤 다시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자동차 몇 대를 폭파시키는 일이 참 재미있었다”라고 마치 여신처럼 말했다. 출산휴가 뒤 할 만한 일로 그보다 더 멋진 일도 드물겠지만, 약 100년 전 최초로 영화가 촬영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발언 가운데 이보다 더 환상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이곳에서 1911년 네스터모션픽처컴퍼니가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를 열었고, 역사는 시작됐다.
<타이타닉>과 <아바타>라는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만든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할리우드는 단순한 어떤 장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는 관광객이 기념품 상점 사이를 돌아다닐 뿐, 영화는 거의 촬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비롯해 캐스팅과 스태프 채용 및 기획은 아직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진짜 영화는 전세계 곳곳에서 촬영한다.
   
◀ 할리우드 초기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초강대국 미국이 흔들릴지라도 인류에게 남긴 이 문화적 공로는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가 우리에게 비극을 남기고 로마제국이 법을 남겨준 것처럼, 미국이 망해도 할리우드는 남을 것이다. 이는 단지 삶을 감동적이고 낙천적인 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뿐이다.
영화의 위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1910년 그의 수첩에 ‘기차가 지나가자 관람객들은 놀라 굳어졌다’고 적었다. 카프카는 이 문장으로 오귀스트와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 장면이 가져온 인류학적 빅뱅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 위에서 증기기관차가 기차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영화관에서 도망쳤고, 또 어떤 사람은 미친 듯이 웃었다. 이 최초의 영화가 가져올 충격에 준비돼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증기기관차가 달려와 이전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유럽 곳곳의 대목장에서 구경거리로 보이던 이 짧은 영화와 함께 영상의 시대가 열렸다. 이 시대와 함께 이후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고 꿈을 번갯불처럼 가로지르는 영상·기호·신화, 그리고 파워게임의 해일이 우리에게 밀어닥쳤다.
우리 일상생활에는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제약되지 않고 단지 제시됐다. 새로운 신들이 동양 스타일 영화 궁전의 어두운 예배소에 나타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신뢰하고, 어떤 머리 모양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시작했다.
플라톤의 비유와 같이, 영화는 우리에게 세계를 동굴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비추었다. 가끔은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재자들은 영화를 증오했다. 영화는 프로파간다의 도구로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고,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테러리스트였다. 영화는 우리의 운명을 수많은 버전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멜로드라마와 모험에 프란츠 카프카는 어린아이처럼 매혹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그는 ‘영화관에 갔다. 울었다’라고 적었다. 우리 모두가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울고 웃고 열광했다.

 재탕, 삼탕을 일삼는 얄팍한 상술
뚫린 유전에서 석유가 솟구쳐오르듯, 영상은 매일·매시간 끊임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흘러나온다. 우리는 지금 그림과 기호의 마법만이 통하고 그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문자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바보가 돼가지는 않지만 점점 더 실제 위에 덮인 우리 스스로 창조한 전설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 할리우드는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서라면 절대로 어떤 기념일도 놓치지 않는 화려한 세계이지만, 그곳에서는 누구도 축하할 기분이 아니다.
100년이 지나 황혼이 찾아왔다. 거대 제작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MGM은 간신히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고, 드림웍스는 인도에서 투자자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디즈니는 <펄프픽션>과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제작한 알짜배기 자사 미라맥스(Miramax)를 7억3500만달러에 카타르의 금융그룹에 팔아넘기고, 플레이돔이라는 온라인 게임업체를 인수했다.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제작사가 제작 작품 수를 줄였다.
영화는 거액의 판돈을 건 룰렛게임이 돼버렸다. 제작되는 영화 편수가 적어질수록 영화 한 편에 부여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제작비 1억6천만달러짜리 영화 <인셉션>을 찍기 위해 먼저 제작사에 그의 두 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로 10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만들어줘야 했다.
영화는 한때 러브 스토리였지만, 이젠 금융가와 컴퓨터 조작자들의 전쟁 물자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영화는 컴퓨터로 만들어지고 있다. 볼프강 페터젠은 <트로이>로 5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지만, 그의 리메이크작 <포세이돈>은 흥행에 실패했다. 이제 그는 다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진리는 ‘누구도 아는 것이 없다’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한 번 성공한 것을 그대로 한 번 더 한다. 그래서 <토이 스토리 3> <미션 임파서블 4> <해리포터 7>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용기 없는 자들의 영화다. 오스카상 시즌이지만 후보작은 전년보다 30편이나 줄었다.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1980년대의 블록버스터 <그렘린>을 찍었던 조 단테는 “영화는 20세기의 예술양식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21세기에 도달했다.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데 그게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너무 지루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손에 리모컨을 쥐고 있다. 모든 영화에 최소한 47개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들어가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방귀에 대한 개그라도 들어가야 한다. 이게 할리우드 100년 역사의 결말이란 말인가? 팝콘 양동이는 점점 더 커지고, 스토리는 점점 더 약해진다. 잔치는 끝났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한쪽에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짐 지아노플로스, 그는 전세계적으로 280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려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된 <아바타> 제작자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할리우드에서 보스 중의 보스다.

<아바타>와 할리우드의 미래
그는 전설적인 다혈질 영화 스튜디오 창립자 대릴 자눅의 후임자다. 그는 “앞으로 3D가 새로운 황금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영화는 죽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피터 잭슨도 모두 3D 영화를 찍고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아바타> 2부와 3부를 동시에 찍고 있다.
그에게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거물의 사랑>을 아느냐고 물었다. “아, 물론이죠.” 그 책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제작비만 들어가고 흥행 수익은 전혀 나지 않은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람들은 가끔씩 그런 프로젝트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것이 오늘날에도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잭 워너는 한 예비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난 이 영화가 좋아. 이 영화가 얼마를 벌어들이든 아무 상관 없어. 영화가 만들어진 것만으로 난 만족이야.’” 지아노플로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웃음을 멈추기 힘들어했다.
   
◀ 역대 최고 흥행작 <아바타>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도전을 암시한다.

할리우드에 사람들이 모여들던 시대로 돌아가자. 영화산업이라는 스펙터클의 선지자들은 영국 런던에서 온 찰리 채플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온 사무엘 골드피쉬, 그리고 러시아 출신의 샘 워너 같은 가난한 이민자들이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출신의 칼 램믈 같은 몇몇이 자기 소유의 5센트 극장이나 영화관 체인점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영화관에서 상영할 영화가 필요했다.
제작자들이 파라마운트(1912), 유니버설(1912), 워너브러더스(1923), MGM(1924) 같은 영화제작사를 세운 뒤 몇십 년에 걸쳐 관객 1억 명을 위해 주 단위로 영화를 생산해내는 수천 명의 노동자와 고용된 스타로 이뤄진 천재적인 스튜디오, 즉 ‘영화 공장’ 시스템을 확립했다.
이는 문화적 카르텔 시스템이고, 이것은 성공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작사마다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작가·감독·배우의 협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고유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었다. 비 오는 밤거리에서 워너브러더스는 총격전을, MGM은 춤의 무대를, 파라마운트는 드라큘라의 제국을 보여주었다.
영화제작사는 여종업원과 부랑자를 데려다 스타로 만들어 내놓고, 그들이 계속 스타로 머물러 있도록 했다. 보스들은 영화표를 파는 이들이 스타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티에서 전직 배관공이자 소아성애자였던 패티 아버클이 섹스를 하다가 신인 여배우 버지니아 래프에게 중상을 입혔고, 이로 인해 그녀는 나중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스캔들이 일어난 뒤 제작자들에게 명확해진 것은 기본적인 행동강령이 필요하고, 청교도적인 미국을 진정시킬 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이자 뼛속까지 부패해 있던 윌 H. 헤이즈라는 인물을 찾아냈다.
 
채플린의 황금광은 어디로?  
할리우드 언덕에서 스타들의 환상의 세계가 자라나는 동안, 그 뒤에는 대중에게 숨겨야 할 일도 있었다. 무어 제국의 아름다운 궁전, 로마의 요새, 아르데코식 저택을 노니는 스타들에게도 각자 이상한 면이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그의 자동차 냉장고에 똬리를 튼 코브라를 넣어두었고, 톰 믹스는 식당에 무지개 분수를 가지고 있었다. 벨라 루고시는 관 속에서 인터뷰를 했고, 글로리아 스완슨은 검은 대리석 바닥에 설치된 황금빛 욕조에서 물장구를 쳤다. 나중에 그녀는 “관객은 우리가 왕과 여왕처럼 살 것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 요구에 부응한 거죠”라고 말했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바빌론이었다. 그곳에서는 살인사건이 있었고, 금주령에도 술을 퍼마셨고, 마약으로 인한 죽음이 있었다. 로만 폴란스키 사건보다 훨씬 전에 이미 미성년자와의 섹스도 있었다. 챨리 채플린이 전문가였다. 나중에 그는 그가 임신시킨 16살 소녀들과 차례로 결혼했고, 두 번째 부인 리타 그레이와의 이혼은 그레이의 어머니로 인해 추악한 진흙탕 싸움 속에서 이뤄졌다. 이 사생활의 지옥 속에서 그의 영화 중 가장 시적이고 성공적인 <황금광 시대>를 만들었다. 이 영화 역시 모험적 투자였다. 일부는 시에라 네바다에서 촬영했지만, 채플린은 나중에 라브레아 거리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 알래스카를 옮겨오도록 했다.
분명히 1920년대에는 다른 명작도 있을 것이다. 독일 감독 무르나우의 인상주의적 멜로드라마 <일출>이나 버스터 키튼의 <장군>도 그에 속한다. 하지만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는 채플린이 오두막에서 자신과 친구들이 먹기 위해 신발을 끓이면서 미식가의 포즈로 맛을 보고 신발끈을 스파게티처럼 포크로 돌돌 말고, 못을 닭뼈처럼 핥는 장면이 있다. 채플린의 환상 속에서 나타난 빵의 춤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마치 전설적인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라도 되는 양 나른하게 대가의 표정으로 춤을 춰 보였다.

전세계의 연인, 메릴린 먼로
브렌트우드의 한 빌라에 사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들을 방문했다. 은발에 붉은 블레이저를 입은 81살의 마샤 나사터는 뉴욕에서 가장 메마른 유머를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영화제작 스튜디오의 사장이었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블록버스터를 제작했다. 그녀 곁에는 미국작가협회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선정된 87살의 로렌조 셈플 주니어가 있었다. 그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콘도르의 3일>의 시나리오를 썼다.
“어른들이 볼 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요? <아이언맨 2> <트랜스포머 4> <토이 스토리 3>?” 마샤는 “<에브리바디 올라잇>, 소규모 독립영화죠. 거대 제작사에서는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요.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에 참여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로렌조는 안락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1930년대 영화 가운데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언제나 거대한 스펙터클 영화라고 불리지만, 막상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화재 장면 하나뿐이에요.” 마샤는 말했다. 나머지는 멜로소설로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오해에 대한 대화” 같은 것이다.
1940년대는? “<카사블랑카>! 나에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하나죠. 모든 것이 어긋나기만 합니다. 마지막까지 잉그리드 버그먼은 그녀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감독 마이클 커티즈는 ‘공중에 띄워두라’고 말합니다.” 마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1950년대에는 미친 ‘공산주의자 사냥꾼’ 조지프 매카시가 엄지손가락을 돌리고, 젊은 반항아 제임스 딘이 나타나고, 앨프리드 히치콕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뜨거운 것이 좋아>다.
어째서? 또 하나 영원히 남겨질 얼굴이 우주를 비추는 빛의 형상,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메릴린 먼로가 이렇게 웃기고 또 백치미가 넘쳤던 적은 없다. 그녀는 아서 밀러와 결혼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 나라의 연인, 아니 전세계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죽음을 넘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할리우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영화 <킹콩>의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1960년대에 할리우드는 추락을 시작한다. 마샤는 “사람들이 TV를 보기 시작했어요. TV는 더 싸고 더 재미있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장뤼크 고다르나 프랑소아 트뤼포가 할리우드가 잊고 있던 품격과 스타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무너졌다. 일부 제작사들이 묻을 닫고, 또 일부 제작사들은 마피아가 사들여 포르노를 제작했다. 이렇게 딜레탕트의 시대, <이지 라이더>의 시대가 왔다.
로렌조는 “그 시대 최악의 영화였죠. 하지만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지 라이더>는 미국 젊은이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이 영화는 마약에 취해 시스템을 파괴하고 거기에 덧붙여 돈도 벌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1970년대, 얼마나 많은 명작이 쏟아져나왔던가.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앨트먼의 <내쉬빌>,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 보그다노비치의 <마지막 영화관>,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 등. 그럼 1970년대의 최고 영화는 무엇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대부>지.” 로렌조가 답했다. 알 파치노가 영화의 절반가량을 상처 입은 얼굴로 돌아다니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1980년대는 스코세이지의 명작 <성난 황소>와 함께 시작했지만 마이클 치미노의 재앙 <천국의 문>과 함께 시작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대차대조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돌아왔다. <플래시댄스>나 <탑건>처럼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의 세계는 리들리 스콧에 의해 촬영됐다. 항상 비가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우수에 젖은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내용의 공상과학(SF)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권력 장악에 대한 모델과도 같았다. 로렌조가 “이 영화는 최초로 디스토피아를 보여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디스토피아가 뭔가요?” 마샤가 물었다.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입니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이죠.”
1990년대 대표작은 의심할 여지 없이 <펄프 픽션>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도입했고, 존 트라볼타가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새로 시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서부영화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서부영화의 명작으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대표작은 <아바타>가 있다. 이 영화는 나름의 방식으로 활과 화살을 든 원주민과 나쁜 군인들이 나오는 서부영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시각적으로 영화는 은막을 떠나 3D로 넘어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100년 역사의 결말이다. 적당한 결말이었을까? “낡은 이야기죠. 자본주의는 나쁘다, 전쟁은 나쁘다. 이 영화는 약 100년 뒤에 만들어진 우리 시대의 <인톨러런스>예요.” 마샤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로렌조는 “재미있는 것은 TV에 나오고 있죠”라고 말했다. “<매드맨>이라는 드라마 시리즈를 알고 있습니까?”
<매드맨> 시즌 시사회는 스타를 위한 레드 카펫이 깔린 차이니스 시어터에서 마치 거대한 영화축제처럼 치렀다. 이 미국 드라마 시리즈는 아메리칸 무비 클래식 방송사를 거의 혼자서 구해냈다. 최근 몇 년간 TV가 생산해낸 극단적인 스타일의 향연이기도 하다. 수많은 시사회 파티 가운데 때때로 폭파 장면이 하나도 없는 저예산 코미디 <겟 로우> 같은 어른을 위한 영화도 있다. 영화에 출연한 로버트 듀발과 만났다.
“요즘 세상에 1억달러도 안 들이고 영화를 만들다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듀발은 그가 연기한 영화 <대부>의 조직 고문관 톰 하겐처럼 미소를 지었다. “<겟 로우>는 1천만달러도 안 들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750만달러가 들었다.
“어째서 이 영화에 참여하신 겁니까?” 듀발은 아득한 표정으로 다시 미소지었다. “나한테 좋은 역을 주었으니까요. 요즘엔 이런 일이 드물어요.”  

영화인 대신 금융위원회가…
그의 곁에는 전설적인 할리우드의 창시자 대릴 자눅의 손자 딘 자눅이 있었다. 이 소규모 영화를 찍는 데 그는 8년이 걸렸다. 그는 “옛날 영화계 보스들은 모험가였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금융위원회밖에 안 남았어요. 그리고 이들은 확실한 수익을 원하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역시 그림자 예술과 별가루로 만들어진 덧없는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니콜 키드먼은 스코세이지 영화재단을 위해 1933년판 <킹콩> 복원 프로젝트를 위한 기부에 동참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길 중간에 오크우드 아파트가 있다. 여기에서 취리히 출신의 배우 코리나는 지난 2년간 기회를 기다렸다. 할리우드의 영화학교를 다니는 그녀는 이미 50편이 넘는 비디오판 영화에 출연했고, 언제라도 사인만 있으면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할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든지 슬퍼질 수 있단다.
“어쨌든 여기가 취리히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녀에게 지금 당장 울어 보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어깨 위의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의 왼쪽 뺨에는 눈물방울이 검은 마스카라 자국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푸른 하늘과 먼지 쌓인 야자수 나뭇잎 아래에서 흐르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눈물이었다. 아마 이 눈물에 할리우드의 역사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별의 눈물처럼 보였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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