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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의 잠룡 ‘실리콘힐스’
[세계는 지금]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131호] 2021년 03월 01일 (월) 윤태웅 twyoun@kotra.or.kr

윤태웅 KOTRA 댈러스무역관장

   
▲ 음악, 영화 페스티벌에서 혁신의 상징이 된 SXSW가 오스틴에서 열리고 있다. KOTRA 제공

‘텍사스’는 외국인에게 참 익숙한 지역 같으면서도 막상 이곳을 이야기하자면 떠오르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땅과 많은 인구, 텍사스 바비큐,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WTI), 제임스 딘의 영화 <자이언트> 정도 아닐까.
텍사스주에 있는 4개 주요 도시 댈러스(6위), 휴스턴(7위), 오스틴(25위), 샌안토니오(29위)는 경제 규모로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상위에 들 정도로 미국에서도 지명도가 높다. 최근 역대 미국 대통령 10명 중 3명이 텍사스주 출신인 점도 이 지역의 무게감을 더하는 이유다.
텍사스의 석유 생산과 보유량은 각각 세계 1위, 9위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유가 담합에 더는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유가를 조절하는 스윙 프로듀서로 부상했다. 텍사스 지역 서쪽에 넓게 형성된 퍼미언분지의 셰일 개발 현장을 방문해보면 전세계 에너지 집결지로서 영원해 보이는 에너지 대국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테크기업과 스타트업의 허브
오스틴은 미국에서도 기업과 사람이 몰린다고 입소문이 난 도시다. 세계 3대 컴퓨터 제조사인 델(Dell)이 이곳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1984년만 해도 인구 56만 명에 불과하던 작은 도시가 이제는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서며 텍사스 주도로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20년 뒤 인구 400만 명을 넘어서고 경제 규모에서도 휴스턴·댈러스와 어깨를 견줄 날이 머잖아 보인다.
오스틴의 급격한 인구 증가는 6500개의 스타트업과 테크기업 활동에 기인한다. 지난 2년간 페이스북·아마존·구글·애플 등 캘리포니아에서 내로라하는 ‘테크 자이언트’들이 개인 소득세 면제, 낮은 법인세 등 기업 운영 여건이 뛰어난 오스틴으로 대거 이전했다.
2020년 12월에는 캘리포니아에서 50년 이상 터줏대감이던 오라클(Oracle)도 본사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전기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는 테슬라도 신규 대단지 공장 입지를 오스틴 인근 지역으로 정해 추진 중이고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미니 엑소더스’로 불리는 기업 이전 추세는 관련 업계로 불길이 번지는 형국이다. 세계 2위 규모의 데이터센터인 디지털리얼티도 16년간 지낸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정리해 오스틴으로 움직인다고 발표했다. 전기료가 싸고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텍사스 내 30여 곳에 이미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면적은 400만제곱피트, 용량은 120메가와트(MW)에 이른다.
정치적 이유로 강화되는 여러 규제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물가가 낮은 지역을 선택해 직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우수한 직원을 채용하기까지 장기적으로 무려 세 마리 토끼를 차례차례 모두 잡는 격이다.
삼성전자도 일찍이 1998년부터 오스틴에 자리잡고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누적 투자액이 무려 170억달러에 이르고 앞으로 공장 증설까지 고려하면 미국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 최대 규모로 손꼽힌다. 이와 더불어 1999년 반도체 장비 주성엔지니어링, 2007년 반도체 정밀세정·특수코팅 전문 코미코, 2018년 반도체 공정용 케미컬 소재 이엔에프 테크놀로지가 진출해 늘어나는 현지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오스틴은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허브다. 2012년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이 처음 10억달러를 넘어선 이후, 2019년엔 총 17억달러(전년 대비 17% 증가)로 미국 도시 중 7위를 기록했다. 명실공히 실리콘밸리를 잇는 차세대 ‘실리콘힐스’(Sillicon Hills)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보수로 유명한 텍사스에 있지만, 자유와 진보 측면에선 ‘텍사스 주내 캘리포니아’로 불리기도 한다. 투자 금액 면에서 보면 텍사스주 전체의 58%를 차지해, 스타트업 기업당 평균 1200만달러 펀딩이 이루어진 셈인데 다른 3개 주요 도시(댈러스·휴스턴·샌안토니오)의 투자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실리콘힐스에선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고르게 제공하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 미국 평균보다 저렴한 생활비, 높은 수준의 기술인력, 낮은 인건비, 일찍이 창의적인 예술과 음악이 태동한 자유로움 등이 어우러져 최적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자랑한다. 여기에 ‘텍사스에는 모든 게 크다’(Everything is Big in Texas)라는 문구로 대변되는 텍사스만의 넉넉함과 오스틴의 슬로건인 ‘오스틴을 특이하게’(Keep Austin Weird)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혁신과 창의를 더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스틴의 대표적 인큐베이터인 캐피털팩토리(Capital Factory)의 탄생(2009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액셀러레이터, 공유오피스, 벤처캐피털 등 스타트업에 필수 불가결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년 10월 초 ‘오스틴 스타트업 위크’(ASW)를 열 만큼 오스틴 스타트업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일반인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3차원(3D) 프린팅을 건축에 접목한 아이콘(ICON·2018)은 캐피털팩토리가 키운 대표 스타트업이다. 2019년에는 주택 한 채를 하루 만에 완성하는 기술력을 선보이며 현재까지 총 5100만달러 투자펀딩에 성공했다.
워드프레스(WordPress) 웹 호스팅인 WP엔진(2010) 역시 캐피털팩토리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출신이다. 2018년에는 2억5천만달러라는 대규모 펀딩 금액을 유치했다.
이외에 캐피털팩토리는 미국 공군기지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클러스터화(협력지구)한 정보기술(IT)을 발판으로 미 국방성에서 6천만달러를 유치해, 30여 개 스타트업과 연결해 또 다른 글로벌 기업의 산파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스틴 하면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South by Southwest)를 빼놓을 수 없다. 혁신의 상징이며 세계적 지명도가 높은 SXSW는 1987년 음악, 영화, 미디어 페스티벌로 작은 규모에서 시작했다. 2000년 창의와 자유가 넘치는 혁신 흐름에 IT가 스며들면서 전문성이 더해졌고, 2007년과 2009년에는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피치(Pitch)가 각각 메인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34년 역사를 자랑하는 SXSW는 2019년 참가 인원이 28만 명, 경제적 창출액만 해도 3억6천만달러에 이르고 이 중 68%에 해당하는 금액이 방문객에게서 직접 거두는 효자 산업이다. 고정된 대규모 국제 전시회가 없는 텍사스주로서는 유일한 북미 최대 IT·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와 <포브스>는 오스틴이 기술과 혁신의 신기술 흐름 본고장이라고 표현하면서 SXSW 역할을 치켜세웠다.
특히 총 4개 분야에서 스타트업 피치가 있는 인터랙티브 부문은 미국 스타트업 축제인 ‘테크 크런치 디스럽트’(Tech Crunch Disrupt·2011)와 핀란드의 대표 스타트업 행사인 슬러시(SLUSH·2008)에 견줄 만큼 아주 유명하다.
SXSW 피치에는 지금까지 총 553개사 넘게 참가해, 이 중 80%가 펀딩에 성공했다. 그중 18%에 해당하는 100여 개사가 구글·애플 등 거대 IT 기업에 매각됐는데, 펀딩과 매각대금을 합하면 무려 76억달러에 이른다. 이곳에서 탄생한 제품 가운데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제법 많다. 2007년 트위터(Twitter) 출시는 SXSW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복도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콘퍼런스 참가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이벤트 진행 상황을 보고 서로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 글로벌 고객에게 트위터 플랫폼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케이팝 등 60개사 도전
인공지능 비서 시리(Siri)는 2010년 SXSW 피치 이후 한 달 만에 애플에 매각될 만큼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중소기업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캐비지(Kabbage)는 지금까지 총 9억9천만달러의 펀딩이 되면서 SXSW의 최대 수혜 기업이 됐다. 클라우트(Klout), 힙멍크(Hipmunk), 와일드파이어(Wildfire), 푸드스포팅(Foodspotting), 탱고(Tango) 등 유수한 스타트업이 이곳을 거쳐갔다.
그간 한국 대기업을 포함해 많은 스타트업이 SXSW 문을 두드렸다. 음악·미디어 분야에선 2005년 밴드(YB) 공연 참가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 아이돌 스타와 록밴드 음악을 선보이면서 케이팝(K-Pop)을 세계 팬들에게 알렸다. 2014년부터 국내 스타트업도 눈에 띄게 늘어 지금까지 총 60여 개사가 참가했다. 대기업으로는 2015년, 2018년 각각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여러 콘셉트 제품을 선보였다.
이런 도전의 결과, 2020년에는 드디어 한국 기업 1개사(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부문)가 최초로 피칭 이벤트 결선 40에 선정됐지만, 개최 일주일 전에 코로나19 확산으로 SXSW가 전격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SXSW 2021’은 3월16일부터 닷새간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특히 첨단 테크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킬 준비가 한창이다. 13번째를 맞이하는 SXSW 피치는 인공지능(AI), 데이터, 헬스, 혁신기술 등 총 8개 분야에서 최신 기술이 3월17일부터 이틀간 온라인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 기업은 2021년에도 변함없이 10여 개사가 도전장을 내밀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갈 기회를 노린다. 오스틴에서 국내 13번째 유니콘 기업 탄생을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바라본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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