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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왜 보건체계를 개혁하려 하는가
[핀란드 복지국가 산책]
[131호] 2021년 03월 01일 (월) 신영규 youngkyu@gmail.com

신영규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 방문연구원

   
▲ 2020년 수립된 산나 마린 내각은 새로운 보건복지서비스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 새 개혁안 역시 주의회 구성을 통한 서비스 제공 책임 이양 계획을 담고 있다. 산나마린 핀란드 총리(왼쪽)가 2020년 8월 탐페레에서 열린사회민주당 전당대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는 한국의 방역 대응체계와 보건의료서비스 전달체계가 여느 서구 복지국가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우리 시스템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건 위기 상황에서 밤낮없이 헌신하는 많은 사람의 노고 덕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유럽 의료진이 최근 영웅으로 불리지만, 그들도 한국 의료진의 엄청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은 전문가 사이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에 사는 많은 한국인도 의료서비스는 유럽이 한국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높은 복지에 비해 낮은 보건서비스
높은 복지 수준을 자랑하는 핀란드도 의료서비스에선 인력 부족, 낮은 접근성, 긴 대기시간 등 고질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비상시국이지만 핀란드 정부와 정치권이 보건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개혁 방안을 수립하는 데 큰 노력을 쏟을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하고 중요하다. 2020년 사회발전조사기구(Social Progress Imperative)가 발표한 사회발전지수(Social Progress Index) 가운데 핀란드는 ‘질 좋은 보건서비스 접근성’ 항목에서 163개국 가운데 세계 65위의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서비스 관련 항목 대부분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것과 상반된다. 이런 평가는 핀란드 시민들이 보건서비스 접근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의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려면 2~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하고, 감기 증상으로 처방전을 받으러 보건소(Terveysasema)에 방문하면 진료를 위해 2~3시간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민간 의료기관은 비교적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 비용이 20분 진료에 100유로(약 13만원)가 넘으니 일반인은 이용하기 어렵다.
현재 핀란드 310개 지방정부(Municipalities)는 보건서비스법(Health Care Act)과 사회복지법(Social Welfare Act)에 따라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보건서비스법은 지방정부의 보건소 설치 의무와 건강증진서비스, 1차 의료서비스, 치과 치료, 전문의 진료 등의 제공 책임을 규정한다. 사회복지법은 상담, 보육, 요양 등 다양한 대인사회서비스 제공 의무를 명시한다.
재정 측면에서 핀란드 보건서비스는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와 같이 조세를 바탕으로 보편적 서비스 제공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하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300개 넘는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서비스 제공 효율성이 떨어지고, 지역 간 서비스 품질과 예산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됐다.
핀란드가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핀란드의 낮은 인구밀도 때문이다. 핀란드 국토는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넓지만, 인구는 우리나라의 10% 수준이다.
헬싱키 같은 큰 도시와 다르게 인구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예산과 인력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인구 고령화와 도시화는 지역 격차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민간의료 시장의 성장에 따른 공공부문 의료인력 이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핀란드 정부는 부족한 의사와 간호사를 충당하기 위해 러시아, 에스토니아, 터키, 필리핀 등에서 긴급히 인력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핀란드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건복지서비스 개혁을 추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 가운데 2015년 4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집권했던 유하 시필레 내각은 포괄적인 개혁안을 수립해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이 개혁안의 핵심은 보건복지서비스 제공 책임을 지방정부에서 주정부(Counties)로 이양하고, 이를 위해 선거로 기존에 없던 18개 주의회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규제 완화로 영리·비영리 기관들의 서비스 제공 참여 기회를 넓히고, 보건복지서비스 정보를 디지털화해 정보통신기술 활용을 확대하는 것도 주요 내용에 포함됐다.
하지만 2019년 2월 핀란드 헌법위원회(Constitutional Law Committee)가 이 개혁안은 위헌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발표하면서 개혁은 중단됐고, 곧 정권이 바뀌었다.

산나 마린 내각, 새 보건개혁안 마련
2020년 수립된 산나 마린 내각은 새로운 보건복지서비스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 새 개혁안 역시 주의회 구성을 통한 서비스 제공 책임 이양 계획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난 내각이 추진했던 민간기관의 서비스 참여 확대 계획은 제외됐고, 정보통신기술 활용 계획은 많이 축소됐다. 대신 예산 확충으로 인력을 늘리고 통합적인 전달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서비스 접근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예방적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 추가됐다. 이 개혁안은 현재 의회에서 검토 중인데 그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앞 사례는 핀란드 복지국가가 항상 효율적이거나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핀란드도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스웨덴 역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통 국내에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긍정적인 점이 주로 소개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적합한 복지국가 모델을 찾기 위해 그들의 명암을 폭넓게 검토하는 일이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한편, 계속된 실패에도 꾸준히 개혁을 시도하고 국가적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핀란드는 복지국가의 안정적인 개혁을 위해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혁신과 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특히 핀란드의 사회정책이 어떻게 시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는지 탐색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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