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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예찬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31호] 2021년 03월 01일 (월) 박중언 parkje@hani.co.kr
   
▲ 2020년 5월 대구의 백화점에서 ‘코로나 우울증’ 극복을 위한 심리상담이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마음의 병’을 들여다볼 차례다. 인생의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시기가 밝고 활기차기는 어렵다. 마땅한 대책 없이 맞이하는 노후는 더욱 우울할 수밖에 없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더 병들기 쉬운 시기다. 나이 든 사람의 우울에는 생물학적 요소도 작용한다.
2020년대 한국은 울화를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괜찮은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애 키우며 먹고살기는 더 힘들어졌다. 집값 폭등과 극심한 경제 불평등, 반칙, 부패는 평범한 사람도 화병 나기에 좋을 정도다. 한국은 선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빈곤율과 함께 압도적 1위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진료 현황을 보면, 우울증 환자의 40% 정도가 60대 이상에서 나온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의 병이 보편화한 지 오래됐다. 고흐, 슈베르트, 헤밍웨이 등 우울을 창조로 승화시킨 예술가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우울증을 대단한 정신장애나 질환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어두운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병원 문을 두드리기 꺼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신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은 우울의 실체를 아는 것이다.
P부장이 처음 정신과를 찾은 때는 2005년 무렵이다. 일본 주재원으로 가족과 함께 도쿄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자책과 강박이 평균을 웃도는 P부장의 성격과 당시 회사 사정, 외국생활 등 여러 요소가 작용했을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증상과 강도는 제각각이지만, 꾸준히 약을 먹으면 1년 안에 완치라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P부장은 그렇지 못했다.

15년의 동행
세상이 특별히 어두워 보이거나, 객관적 상황이 나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약 복용을 중단하면 며칠 지나 어김없이 불편한 증상이 나타난다. 의사조차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털어놓을 고민이 없어 상투적인 몇 마디로 진료를 끝낸다. 결국 그는 항우울제를 고혈압약이나 비타민제처럼 생각하고 먹는다. 공존을 선택한 것이다. 항우울제에 중독성은 없고, 복용량이 워낙 적어 부작용도 미미하다.
P부장이 먹는 약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다. 가장 널리 처방되는 항우울제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 신경세포에 다시 흡수되는 것을 막아 세로토닌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도 비타민 보충제 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약 복용으로 오랜 기간 그를 괴롭히던 과민성대장증상이 싹 가시는 소득도 얻었다.
항우울제와 동행하면서 P부장은 많은 것을 배웠다. 노후에 훨씬 심각해질지 모를 우울함에 대해 선행학습을 함으로써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시련과 실패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근력’인 회복 탄력성이 높아졌다. 세상과 인생을 다시 보게 한 것도 우울이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하루하루 쫓기며 살 뿐 깊이 생각해볼 때가 많지 않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우울은 그런 진지한 고민을 등한시하지 않게 해주는 소금 구실을 한다.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등공신이 바로 세로토닌이다. 행복물질 세로토닌에 대한 연구는 많이 나와 있다. 두뇌 신경전달물질을 지휘하는 세로토닌은 기분·통증·식욕·수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인체 생화학 물질 작용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로토닌 부족이 우울과 불안의 주범이라는 증거는 넘친다. P부장은 세로토닌 부족에 따른 증상을 몸으로 안다. 엄밀히 말해 그의 병은 세로토닌 부족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기분을 좌우하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에는 몇 가지가 있다. 도파민과 엔도르핀은 ‘쾌락’에 가깝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자극과 흥분’에 주로 관여한다. 잔잔한 행복감은 세로토닌의 지배를 받는다. <세로토닌의 비밀>을 쓴 미국 의학박사 캐롤 하트에 따르면, 서른 가지 남짓의 대뇌 신경전달물질을 조정·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총지휘자가 세로토닌이다.
우울증과 관련해 꼭 알아야 할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세로토닌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세로토닌의 ‘동작 스위치’ 기능이다. 왜 우울하면 침대에서 일어나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지를 설명해준다. 세로토닌 스위치가 켜지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다. 세로토닌을 늘리고 활성화하는 것이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해답이다.

일상에서 답을
불행하게도 주사나 약으로 세로토닌을 머릿속에 직접 집어넣을 수는 없다. 두뇌의 혈관이 아주 좁아 세로토닌은 산소와 영양분처럼 피를 통해 들어가지 못한다. 신경세포에서 분비된 세로토닌이 다시 흡수되는 것을 약으로 차단해 세로토닌 활동을 증대시키는 간접적 방식을 쓰는 이유다.
약 복용량이 많으면 부작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적인 것이다. 먼저 햇볕이다. 많이 쬘수록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 삶의 질과 행복도가 높은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나라에서 항우울제 복용이 많은 것은 햇볕 부족 탓이 작지 않다. 다음은 운동이다. 반복적인 근육 움직임은 모두 효과가 있다. 짧고 힘든 운동보다는 덜 과격하게 오래 하는 쪽이 낫다. 걷기와 같이 야외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이 ‘딱’이다.
음식은 좀 복잡하다. 세로토닌 재료는 트립토판이라는 필수아미노산이다. 뇌로 가는 세로토닌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단백질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먹을 때 증가한다고 한다. ‘저단백질/고탄수화물’이 결합된 식사가 세로토닌 생성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결론이다. 햇볕, 운동 그리고 적절한 탄수화물과 식물 단백질 섭취가 세로토닌 친화적인 생활습관이다.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 반갑지 않은 손님인 우울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도 찾아오는 우울은 상담이나 약으로 통제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에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냥 세로토닌 부족을 탓해도 된다. 자신을 물어뜯으며 혼자 끙끙 앓을 때 우울증은 항거불능의 괴물이 된다.
우울을 덜기 위해선 때때로 자기 암시나 주문, 최면도 필요하다. P부장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나오는 ‘하쿠나마타타’(문제없어)나 오키나와에서 산 작은 액자의 글귀인 ‘난쿠루나이사’(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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