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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후진국, 미국 예외주의’의 종언인가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보편적 아동수당 추진
[131호] 2021년 03월 01일 (월) 이창곤 goni@hani.co.kr
   
 

미국은 서구 선진국 가운데 특이한 나라다. 봉건제의 계급 질서와 군주제 경험이 없다. 주목할 만한 사회주의운동도 없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하며, 능력주의와 기회균등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인종차별과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라다. 학자들은 일찍이 이런 미국 사회의 특이성을 ‘미국 예외주의’란 개념으로 포착했다.
미국 예외주의는 여러 형태를 띤다. 복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인데도 불평등이 극심하며, 빈곤율이 아주 높다. 놀랍게도 아동빈곤율은 21.2%(2018년 기준)에 이른다. 열에 둘 이상 아동(18살 미만)이 중위소득 50% 이하의 빈곤 가정에서 산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12.3%)과 프랑스(11.7%)에 견주어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폴란드보다 세 배(7.4%)나 높다.
이런데도 보편적 아동수당이 없고, 연금이나 실업급여 수준도 낮은데다 각종 가족정책 또한 부실하다. 결정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전 국민을 위한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없어 인구의 30%가 의료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진국 그림자는 이렇게 깊고 짙다.
일부 학자는 조세를 통한 세금공제나 높은 교육 지출과 사적 복지를 고려해 미국을 ‘은폐된 복지국가’라며 반론을 펼치지만, 미국은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전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복지는 극빈층 지원을 뜻하며, 중산층 이상은 시장을 통해 삶의 안전을 구매한다. 세계경제의 4분의 1을 점유하는 국내총생산(GDP) 부동의 1위를 자랑하지만, 공적 사회복지 지출은 세계 20위 수준(2019년 기준, 18.7%)이다. OECD 평균인 20%에도 못 미쳐 ‘지체된 복지국가’ 또는 ‘복지 후진국’으로 불리는 근거다. 한국은 12.2%로 최하위권인 35위다.

백악관과 공화당의 아동수당 방안
이런 미국 예외주의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복지 확대 정책이 추진돼 눈길을 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는 ‘미국 예외주의의 종언’이란 다소 성급한 제목으로 이런 움직임을 보도했다. 영국 <BBC>나 미국 <뉴욕타임스> <CNN> <CNBC> 등도 잇따라 관련 기사를 내놓으며 이를 조명했다. 언론이 주목한 움직임은 두 개의 아동빈곤 감소 정책안이다.
하나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놓은 새로운 아동수당 프로그램이다. 6살 이하 아동에게 1인당 최대 연간 3600달러, 즉 월 300달러를 지급하고, 18살 미만 아동(7~17살)에게는 연 3천달러를 지급하자는 아동양육보조금 방안이다.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이런 아동수당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2021년 한 해에만 집행할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할지 아직 논의 중이다.
다른 하나는 뜻밖에도 공화당의 밋 롬니 상원의원이 제안했다. 그는 6살 이하 아동에게는 연 4200달러를, 18살 미만에게는 연 3천달러를 지급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지급액만 놓고 보면 롬니의 안은 백악관보다 많다. 다만 롬니 의원 안은 세금공제 형태를 아예 폐지하고, 새 아동수당 방안을 도입하는 대신 기존 몇몇 보조금을 없애는 내용이다.
미국은 현재 빈곤 아동 대책으로 연 2천달러까지 지급하는 ‘자녀양육세금공제제도’를 운용한다. 이는 세금환급 형태로 이뤄지는데, 문제는 자녀양육에 지출하는 비용에 비하면 지급액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급액을 높이고 더 많은 빈곤 아동이 두루 혜택을 받는 보편적 아동수당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이 끊임없이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행정부의 안은 미국 아동빈곤율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고, 롬니 의원 안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실 미국 정부나 롬니 의원이 이렇듯 빈곤 아동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는 충분한 배경이 있다.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 현안이 바로 아동빈곤과 보육 문제이고, 이들 문제로 파생되는 여성 노동인구와 급격한 출산율 감소 현상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많은 탁아시설이 문을 닫아 이 문제를 더욱 심화했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가 내놓은 2019년 아동돌봄 관련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미국 중상층 이하 가정은 비싼 보육료 등으로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살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 가운데 보육료 지출은 각 가정 평균 소득의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 아동양육서비스와 공공어린이집 등 관련 인프라가 빈약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기준으로 4살 미만 유아 돌봄 서비스 비용이 한 달 평균 1412달러고 4살 아이 돌봄 서비스는 956달러 정도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방과후 프로그램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풀러턴)의 권명중 교수(행정/정책학)는 “맞벌이 부부라도 한 달 봉급 받아서 아동양육비, 높은 세금, 집세 그리고 학자금 융자 갚고 나면 모자랄 때가 종종 있다”면서 “싱글맘이나 싱글대디, 저임금 노동자는 더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보육, 포용적 성장 전략의 핵심
이런 맥락에서 라사드 말리크 ‘미국진보센터’의 정책분석가(육아정책)는 2019년 발간한 아동돌봄 관련 보고서에서 “미국의 일하는 가정의 보육료 부담이 막대하다”며 따라서 “보육 문제 해결은 미국 경제의 포용적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핵심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렇다면 아동수당 도입 추진 등 미국의 움직임은 ‘지체된 복지국가’란 미국 예외주의에 얼마나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까? 기대 어린 성급한 전망을 하기도 하지만, 권명중 교수에게 물으니 답은 “예 그리고 아니오”(Yes and No)다. 획기적인 진전이긴 하나 근본적인 복지체계 변화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더불어 이런 새로운 정책들의 집행에서 한계점과 한시적인 정책형태성을 벗어날 수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아동빈곤율을 낮추고 가정의 보육 부담을 줄일 공적 육아서비스와 인프라의 획기적인 진전, 그리고 정치권과 행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 한시적인 아동수당 도입만으로는 ‘미국 예외주의의 혁명적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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