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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음모론’의 실체
[Cover Story]인플레이션의 재림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알렉산더 융 economyinsight@hani.co.kr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슈피겔> 경제부 기자

쾰른의 자산관리사인 베르트 플로스바흐는 소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설명한다. 그는 주머니에서 크루거랜드 금화(남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금화로 유로존 위기 뒤 많이 팔림)와 러시아 동전 코페케를 꺼내더니 책상 위로 떨어뜨렸다. 크루거랜드 금화는 이리저리 흔들리다 ‘묵직하고 속이 꽉 찬’ 소리를 냈다. 마치 금이 지닌 현재 가치처럼 말이다. 반면 코페케는 ‘가볍게 툭’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소리다.”
 
인플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플로스바흐는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유로는 연성 통화(Soft Currency)가 될 것이고, 엄청난 채무는 유럽 국가들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앨 것이다. 그는 가파른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이 (5∼10년 뒤가 아니라) 곧 닥쳐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만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귀금속 같은 실물이나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고객에게 위탁받은 돈은 400만유로가 넘는데, 이는 1년 전보다 40% 늘어난 액수다.
설문조사를 보면 많은 사람, 특히 나이 든 사람일수록 저축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자신의 자산을 삼켜버릴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돈으로 은행과 국가에 구제금융을 하는 건 아닌지 겁에 질려 있다.
본의 통화전문가 만프레드 노이만은 “구제금융 규모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쇼크 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발행해야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자양분이 된다고 말한다(상자 기사 참조).
   
 

커피에 설탕 타려면 돈 더내야
정치권에서도 경고음이 울린다. 자민당(FDP) 재정 전문가 프랑크 새플러는 유럽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유럽 국가들의 채무를 갚아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금 늦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민당의 경제정책가 미하엘 푹스는 원자재 가격에 우려를 표했다.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다.”
최근 대부분의 주유소에서 기름값이 ℓ당 1.50유로를 넘어섰다. 이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여름과 비슷한 수준이다. 소비자는 생계유지비가 얼마나 더 높아질지 걱정이다.
물가 상승은 아침 식탁에서부터 나타난다. 얼마 전부터 커피 로스팅 업체들은 파운드당 커피콩을 50센트 더 받고 있다. 커피에 설탕을 타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이미 1년 전부터 국제시장에서 설탕은 25%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곡물가와 에너지 비용이 올라 크루아상은 더 비싸졌다고 제빵업체들은 말한다.
우체통을 열면 물가 상승이 더욱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전기료 청구서를 보자. 600여 개 전기 공급업체는 전기료를 평균 7% 올렸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거리 청소비와 쓰레기 처리비는 물론 공동묘지 관리비도 올렸다. 지방자치단체 중 84%가 공공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고 ‘에른스트 앤드 영’사(社) 고문이 전했다.
올해 집세도 2.5%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기 있는 지역은 더 많이 오를 것이다. 휴가 계획을 세웠다면 역시 돈을 더 써야 할 것이다. 말로르카로 가는 패키지 여행은 가격이 지난해보다 12% 정도 올랐다.
인플레이션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아주 나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경제는 나아지고 있다. 수요가 다시 눈에 띄게 늘어날 때 비로소 기업체들은 가격을 올리는 모험을 할 것이다.
지난해 독일 경제는 통일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인 3.6%를 기록했다. 세계경제의 빠른 회복에 힘입은 결과다. 수출도 16% 증가했는데 이는 기록적인 수치다. 조업 단축을 실시했던 많은 기업들도 회복세에 들어섰다. 새 자동차를 주문하면 반년을 기다려야 했다.

신흥국에 인플레이션은 위협적
여러 해 허리띠를 졸라맨 만큼 임금을 정상으로 돌려야 할 때가 왔다. 지난해 철강업계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3.6%의 임금 상승을 얻어냈다. 노동자들도 이제 돈을 좀 쓰고 싶어한다. 임금이 오르면 소매상들도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최근 유로 지역의 물가 상승률은 2.2%에 달했다. 함부르크 베렌베르그은행의 경제부문 총책임자 홀거 슈미딩은 아직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물가가 이례적으로 낮았던 ‘특별한 국면’이 이제 끝났을 뿐이다. “우리는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럽에 대해선 이 말이 당분간 옳을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에 물가 상승은 리스크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에서 인플레이션은 생활에 위협적이다. 인도는 1월 생필품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8%나 올랐다.
   
 

중요한 세계 식량인 밀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시장에서 밀 가격은 지난 여름보다 80% 올랐다. 당장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프랑크푸르트의 투자회사 ‘루푸스 알파’의 애널리스트는 “식재료의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주제”라고 말했다.

“올해 전세계적 폭풍이 몰아칠 것”
몇 달 전부터 원자재 가격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았다. 구리 가격은 지난해 30% 올랐고, 니켈은 60% 뛰었다. 중국의 엄청난 수요로 투기자금이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런 유동성이 가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용광로에 쓰이는 코크스는 t당 350유로로 1년 전보다 두 배로 뛰었다. 자고 나면 가격이 오른다. 아이젠휘텐 지역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 경영자 토슨 브란트는 걱정이 태산 같다. 비용의 80% 이상이 원자재와 석탄, 철광석을 사는 데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철소의 용광로를 뜨겁게 하는 코크스는 폴란드에서 조달하지만, 그 연료의 가격은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의 광산들은 홍수로 물에 잠겼다. 브란트는 “가격에 대한 영향이 2분기에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높아진 비용을 구매자들에게 떠넘겨야 하는데, 그 대상은 주된 고객인 자동차 제조업체다. 도매·무역업 독일연맹 대표 안톤 뵈르너는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독일에서도 곧 시작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뵈르너는 늦어도 올해 말 전세계적인 가격 상승의 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듯 칠레산 구리나 브라질산 철광석의 가격 폭등은 그 나라 경제만이 아니라, 전세계 기업의 대차대조표에까지 영향을 준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완제품(TV, 컴퓨터 등)도 이전처럼 싸지 않다.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눈에 띄게 오르고 위안화 가치가 서서히 절상되면서 세계화가 가져다준 저물가 효과도 끝났다. 오히려 이제는 그 반대다. 독일은 인플레이션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럽중앙은행이 개입할 만하다. 유럽중앙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경기 상승세를 차단해 물가 폭등을 진정시킬 수 있다. 현재 중국이 이런 방식으로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다. 중국은 벌써 두 번이나 금리를 올렸다.
물론 유럽중앙은행 총재인 장클로드 트리셰도 최근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해 확실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떤 조처도 취하려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함부르크 세계경제연구소(HWWI) 소장 토마스 스트라우하르는 “독일에 금리 조정은 의미가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에는 그 결과가 끔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금리는 무엇보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의 자본조달 비용을 더욱 높게 만든다. 이들을 고려한다면, 금리는 한참 동안 낮게 유지돼야 한다. 스트라우하르는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채권-채무국 사이 ‘위기조절밸브’
트리셰는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2008년 여름에 유가가 기록적으로 상승하자 금리를 4% 이상 올렸다. 몇 주 지나지 않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경제는 골로 갔다.
유럽중앙은행은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을지 모른다. 물가를 그대로 내버려두려 할 것이다. 스트라우하르는 “유로존 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은 나쁜 선택 중의 하나이면서 손쉬운 방법이다. 인플레이션은 유럽통화동맹이 (부채 위기에 처한 유로존 국가에 지원금을 보내주는) ‘유럽송금동맹’이 돼버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책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플레이션은 유럽 채권국과 채무국 간의 균형을 자동적으로 이뤄내는 ‘위기 조절 밸브’”라고 말했다. 당연히 채권자들에게는 손해다.
   
 

화폐 신뢰 무너지면 소비자 액션 돌입
중앙은행이 찍어댄 돈의 영향은 과대평가되고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인플레이션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실물을 훨씬 선호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는지가 결정적이다. 소비자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판단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고 기분에 좌우되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따라 위험한 군중행동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금을 선호하는 것은 화폐가치를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최고 거주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내일 가격이 얼마가 될지 모르니 지금 당장 사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막대한 금융자산을 언제든지 실물자산으로 바꾸려 들 것이다. 소비자가 미래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자신의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제 두려워서 절약하기보다는, 두려워서 돈을 써버리게 될지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은 시민들이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믿느냐에 달려 있다. 빌레펠트대학 사회학 교수 니클라스 루만은 “그 신뢰는 화폐를 사용하면서 실제로 가치를 확인하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했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실물만 선호하는 액션이 당장 시작될 것이다. 
ⓒ Der Spiegel· 번역 이상익 위원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추억

어떻게 가격 상승이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발전하는가? 시카고 출신 노벨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3년에 지적했듯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에서나 있는 화폐적 현상”이다. 이는 가격수준이 이용 가능한 화폐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다. 물건의 수량이 적은데 돈이 많다면 물가는 상승하기 마련이다.
통화론자의 시조로 알려진 장 보댕은 16세기 유럽에 과잉 공급된 신대륙의 금이 어떻게 스페인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은 필리프 2세 왕가를 파산에 이르게 했다.
요즘에는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비싼 금을 캐지 않아도 된다. 중앙은행이 한 번 더 인쇄기를 돌릴 필요도 없다. 은행이 새로운 돈을 사용하려면 컴퓨터 명령을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돈은 모니터상에 깜박거리는 숫자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과 유럽은 경제력에 비해 많은 통화량을 비밀리에 증가시켰다. 지난 몇 년처럼 경제력이 약화된 때에도 통화량은 증가했다. 통화가 과잉인 상태인데도 물가가 상승한지 얼마 안 된 것은, 많은 양의 통화가 ‘휴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돈의 대부분은 아직도 소비자나 기업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이렇게 해서 돈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너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20세기 초에 이미 화폐 유통속도가 빨라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거래수량설 MV=PT, 즉 통화량(M)과 화폐유통속도(V)를 곱한 값은 생산품의 가격(P)과 거래량(T)을 곱한 값과 언제나 같다).
1923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났다. 그 시절 아내들은 아침마다 일터의 출입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남편의 일당을 수령했다. 그 길로 바로 가게로 달려가 돈을 다 써버렸다. 왜냐하면 점심 때 달러 환전 시세가 새로 고시되는데, 그때마다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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