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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왜곡이 남긴 것
[FINANCE] 팬데믹의 또 다른 풍경
[130호] 2021년 02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1월6일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서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연합뉴스

‘창조적 파괴’란 기술혁신으로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변혁을 일으키는 과정을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어떤 기업도 파산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기업은 번영하고, 이는 곧 소비자 효익 또는 공공복리로 연결된다. 이 전제를 무시하면 그 자체가 자본주의 균열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일종의 진화 과정이다.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한 기업은 생존하고 성장한다. 기업의 적응이란 현재의 것보다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허약한 기업은 시들다 마침내 사망한다. 항상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조지프 슘페터는 그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파괴 쪽에 있다면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측면에 서 있다면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부를 얻을 수 있다.
빛보다 빠른 정보화 사회다. 경제도 급속히 ‘정보화’되고 있다. 정보화된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형 상태의 ‘유지’가 아니라 ‘전복’이다. 정보의 빠른 이동은 실시간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 평형을 유지하려는 동력보다는 평형을 깨면서 진화하려는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업의 도태와 진화가 과거보다 빠르게 일어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다.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마불사
기업 생존이 자연현상이 아닌 의도적 힘으로 결정되고 있다. 국가는 자주 기업 진입에 장벽을 세울 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기업을 보호하려 한다. 무엇보다 ‘대마불사’가 중시되면서 덩치가 큰 기업은 ‘묻지마’식 생존이 가능한 반면, 소기업은 빈사 상태로 방치된다.
유례없는 감염병 바이러스는 경제의 틀을 바꾸고 있다. 자연의 그 무엇이 비자연적 경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특별한 정치적 대응이 특정 부문 소기업에 대한 대량살상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대다수 대기업은 동일한 상황에서 천문학적 특혜를 누린다. 이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생존 능력 혹은 재능의 차이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규모’다. 바이러스 영향을 많이 받는 부문을 예로 들어보면, 항공 부문에서도 덩치가 큰 기업은 생존하지만 작은 기업은 죽어가고 있다. 환경 적응성의 문제가 아니다. 규모가 생존을 결정한다. 이번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작은 기업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다수의 소기업이 전례 없는 위험에 처해 있다. 특히 대면접촉이 불가피한 소기업에 피해가 집중된다. 우리를 보고 웃고 때론 접촉이 이뤄지는 식당, 주점, 미용실, 실내 체육시설, 목욕탕 등이다. 그 목록은 끝이 없다.
대기업 대부분은 자금이 풍부한 상황이지만 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 2020년 6월 말 기준 비금융기업의 현금보유액이 2조1천억달러(약 2300조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30% 정도 늘어난 액수다(무디스투자서비스).
한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20년 상반기 기준 코스피200 상장사(지주사, 금융사 제외)의 현금 또는 현금성자산은 모두 171조원을 넘는다. 2019년 상반기보다 46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36.8%나 증가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외려 현금보유액이 늘어난 것이다. 팬데믹 대응 또한 대기업이 더욱 커지도록 보호해주고 있다. 거의 한계 없는 유동성 공급이 이뤄진다. 지원은 거대 기업에 집중된다.

   
▲ 2020년 12월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숙박·음식점업 부채비율은 200%를 넘어섰다. 연합뉴스

사라지는 경쟁
팬데믹은 경제를 양극단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대기업 상당수가 강한 성장세를 보이지만 소기업은 생존을 위해 투쟁 중이다. 이는 경쟁을 사라지게 한다. 사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사들이는 등 경쟁을 없애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번엔 다르다. 그 이유는 기업의 건강도가 지극히 양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독점적 가격결정권이 강해진다. 이는 소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생존을 억누른다. 자칫 영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독점적 지위가 강해질수록 덩치 큰 기업은 가격을 내려 소규모 경쟁자를 압박할 수 있고, 심지어 인수할 수 있다. 이때 반독점법은 무용지물이다. 기업 합병은 지난 10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팬데믹은 이를 더욱 가속한다.
이런 현상의 일부는 자연적인 시장 현상이다. 큰 식당체인은 대량으로 고기를 사거나 생산해 최저가격에 수요를 맞출 수 있다. 온라인 유통 공룡 기업들은 많은 제품을 빠르게 제공하거나 무료 배송을 한다. 거대한 창고와 운송 네트워크를 가졌기 때문이다. 때로 대기업은 더욱 효율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규모의 경제로 소비자 효익 증대는 자연스러운 시장 현상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대기업은 낮은 조달비용과 경쟁이 덜한 환경이란 장점을 누린다. 반대로, 너무 많은 작은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폐업하고 있다.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창조적 파괴라는 관점에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지 못했거나 의사결정 실패로 이들 소기업이 소멸한다면 안타깝기는 해도 어쩔 수 없다. 시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정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번 팬데믹은 일종의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피해가 크다. 해안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들은 태풍이 올 것을 알고 있다. 이 식당은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보험에 들 수 있다. 지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해는 이미 알려진 리스크(위험요인)다. 업주는 그 위험성을 고려해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공습을 예상해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동제한, 영업제한, 폐쇄는 국가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나온 강제조처다. 소기업 대부분은 자연재해 이상의 그 무엇에 더해 국가의 대응 방식 때문에 이중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키운다. 2017년 발표한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를 보면, 30년 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좀비기업’이 2016년엔 비금융기업의 1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전체적으로 그렇다. 좀비기업은 늘어나고 목숨이 계속 연장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팬데믹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좀비기업 확산
좀비기업 확산은 지극히 인위적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고용과 경제를 고려해 이들에게 호흡기를 달아 산소를 주입한다. 언제까지 가능할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기업 파산이 늘었으나 중앙은행과 정부의 전례 없는 지원에 힘입어 주춤한 상황이다. 그사이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기업의 부채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9월 말 기준 한국 기업의 부채는 GDP 대비 110.1%에 이른다.
좀비기업 확산으로 사라진 창조적 파괴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제한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우리의 구매 형태, 습관, 개인생활과 사업방식 등이 크게 바뀌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은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온실 속 화초처럼 국가 지원으로 살아남은 기업이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다. 강제로 억눌린 경쟁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고, 이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종기는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2차 파산 파동’이 불가피하다.
경쟁은 다른 형태로도 사라진다. 비자연적 조처로 가속화하는 소기업의 대량 사멸은 창조적 파괴의 왜곡이다. 경쟁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건강한 경제를 방해한다. 큰 조직에서 빠른 혁신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예외는 있지만, 거대함은 리스크를 받아들이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규모가 클수록 주의성과 경계심이 늘어난다. 이는 혁신의 방해물이다.
리스크를 감수해야 혁신이 생긴다. 그것이 없다면 경제는 경화되고 성장은 느려진다.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일이다. 소기업은 기업가정신의 양성소다. 이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 설령 실패해도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한다. 우리는 더 많은 소기업을 필요로 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은 비극이다. 그들의 부재는 경제와 우리 삶에 구멍을 남길 것이다. 국가는 팬데믹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진 세계의 경제는 바이러스 퇴치 속도에 맞춰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회복은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실업률이 급속히 낮아지기 어렵다. 창조적 파괴가 방해받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죽어야 할 기업이 숨을 쉬고, 죽지 않아야 할 기업이 죽어간다. 팬데믹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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