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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복수의결권’인가
[박상인의 경제직설]
[130호] 2021년 02월 01일 (월)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2021년 1월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참! 괜찮은 중소기업 플랫폼’ 론칭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정부는 2020년 12월22일 비상장 벤처기업에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벤처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다음날인 23일 국회에 제출했다.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정부안이 2020년 여름 국회에 제출되면서 숱한 논쟁과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것과 달리, 복수의결권 문제는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정부의 의도와 국민의 이해 부족으로 사회적 관심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결권은 공정경제 3법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다.

소유와 지배 괴리 증가시키는 수단
문제가 심각한데도, 복수의결권이라는 용어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다. 차등의결권 주식은 복수의결권 주식과 의결권이 1개 미만인 부분의결권주식으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나라 상법(제344조의 3)도 부분의결권 주식인 의결권배제주식을 주식 총수의 4분의 1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우리가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그런데도 의결권배제주식은 아직 발행되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 주식, 특히 복수의결권 주식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소유와 지배 괴리’를 증가시키는 수단 중 하나다. 한국에는 다양한 수단이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계열사 간 출자라는 수단을 이용해, 2020년 5월 기준 공시 대상 55개 재벌 총수 일가는 평균 3.6% 지분율로 57%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즉, 자기자본보다 15배 넘는 의결권을 이미 행사하고 있다.
이런 재벌들이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마저 이용할 수 있다면 단순 산술로 1주에 150의결권의 행사도 가능해진다. 그야말로 철옹성을 쌓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복수의결권을 이용한다면 4세 재벌 세습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을 먹어도 체할 걱정이 없는 일이 된다.
소유와 지배 괴리 증가의 부정적 효과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경제력 집중 심화로 우리가 실감하고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긍정적 효과도 말할 수 있지만, 기업 재무 분야의 실증적 논의를 통해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합의가 이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선 뉴욕증권거래소가 차등의결권 주식을 지닌 기업의 상장을 금지했고, 차등의결권 주식을 허용해온 유럽이나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법으로 금지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에 반전이 생긴 것은, 2004년 구글의 상장(IPO) 때문이었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상장하면서 창업자의 경영권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의결권 주식 허용을 강하게 요구했고, 이를 뉴욕증권거래소가 받아들였다.
이때의 주장은 이른바 창업자의 ‘독창적인 리더십’(Golden Touch)을 보호해주는 것이 공익이 더 크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IPO가 늘어나고 이와 관련된 자료가 축적되면서, 이런 독창적인 리더십이 오래가지 않으므로 복수의결권에 대한 일몰(Sunset)이 필요하다는 실증적 근거가 제시됐다.
이에 따라 최근 복수의결권 주식에 대한 여러 일몰조항(법률이나 각종 규제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효력이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이 도입되고 있다.
정부의 벤처법 개정안도 일몰조항을 두고 있어, 언뜻 부작용에 대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복수의결권 허용은 이상의 논의와 궤를 같이하지 않고, 재벌 세습의 제도화라는 ‘노림수’일 뿐이다.
첫째, 외국 사례에서 복수의결권을 요구한 경우는 유니콘기업(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 되는 설립 10년 이하의 스타트업)이 상장할 때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을 유니콘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말은 실증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복수의결권을 가진 중소벤처기업에 선뜻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벤처캐피털이 있을 리 없고, 또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가 기업에 도움이 된다면 복수의결권이 아니어도 재무적 투자자가 사적 투자 계약으로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에 충분히 합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면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경영권 희석 없이 투자받을 수 있어 벤처 육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혹세무민이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가 만든 법안의 초안에는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요건으로 누적 투자 100억원 이상이면서 마지막 신규 50억원을 제시했는데, 이 기준을 만족하는 벤처는 이미 유니콘기업에 해당한다.

재벌 세습에 악용될 수도
둘째, 비상장 벤처기업에 허용하는 복수의결권은 재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외국 사례에 없는 한국적인 특수 상황이다. 예를 들어 재벌 4세가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이 비상장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재벌 3세가 보유한 지주회사나 대표회사의 지분을 이 벤처기업들의 보통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재벌 4세가 손쉽게 세습할 수 있다. 또한 복수의결권 주식을 10년 이후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재벌 4세가 새로운 벤처기업을 만들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두 벤처기업을 합병하면 사실상 10년 일몰 규정은 무의미해진다.
이런 시나리오의 유일한 걸림돌은 ‘벤처기업은 중소기업이고, 재벌 계열사는 중소기업이 될 수 없다’는 현재의 법조항이다. 그러나 향후 벤처기업 육성을 핑계로 벤처기업이 중소기업이어야 한다는 조항이나, 재벌 계열사는 중소기업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면 그만이다. 결국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 주식 허용은 대한민국을 재벌왕국으로 만드는 첫걸음일 뿐이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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