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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노동조합은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까
[핀란드 복지국가 산책]
[130호] 2021년 02월 01일 (월) 신영규 youngkyu@gmail.com

신영규 핀란드 국립보건복지연구원 방문연구원

   
▲ 핀란드 시민들이 2018년 2월 수도 헬싱키에서 핀란드 정부의 실업급여 감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2021년 우리는 안타깝게도 연이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소식을 접해야 했다. 비극적인 사건이 몇 차례 있고 나서야, 국회는 급하게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택배노동자들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잇따른 비극의 원인으로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불러온 ‘분류 작업’과 관련한 책임 소재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더불어 우리 노사는 왜 핀란드처럼 노사가 머리를 맞대어 이런 비극을 사전에 막을 단체협약을 만들 수 없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2018년을 끝으로 중앙협약 없어
핀란드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약 60%에 이른다. 다른 북유럽 국가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높은 노조 가입률은 역사적으로 ‘겐트(Ghent) 시스템’이라는 실업보험 운용 방식에 기인한다. 이 시스템 아래 노동자는 자율적으로 실업보험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실업보험의 재정 운용과 회원 관리를 노동조합이 맡는다. 실업보험과 노조의 제도적 연계는 오랜 시간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유인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핀란드의 단체협약은 오랫동안 국가 단위의 중앙집중식 단체교섭을 바탕으로 체결됐지만, 최근 이 전통이 약화하고 산업부문별 단체교섭이 중요해지고 있다. 1968년 핀란드는 급격한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국가 단위에서 노동자단체·사용자단체·중앙정부, 3자가 참여하는 중앙집중식 단체협약을 맺기 시작했다.
핀란드어로 투포(Tupo)라고 하는 이 협약은 2년마다 체결됐다. 임금과 노동조건뿐 아니라 연금제도 개편, 사회보험료 조정, 실업급여 수준 변경 등 정책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2016년 체결된 중앙단체협약을 끝으로 투포 시스템은 더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중앙사용자단체인 핀란드경총(EK)이 국가 단위 단체교섭에 불참하기로 결정한 뒤, 산업부문별 단체협약이 가장 상위의 협약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관한 주요 사안을 다루기 위해 노·사·정 3자 합의 체계는 여전히 운용되고 있다. 국가 단위 단체협약은 사라졌지만, 투포 시스템의 전통은 사회적 합의 기구로 남아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핀란드 임금노동자의 90%가 산업부문별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다. 국가 단위의 단체교섭이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 핀란드의 단체교섭은 산업부문과 사업장 단위 두 단계를 통해 이뤄진다. 산업부문 단위 단체교섭에서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최저임금, 연간 노동시간, 휴가·보너스 등이다. 2년마다 단체교섭으로 산업별·직종별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핀란드에는 법정 최저임금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체협약법(Collective Agreements Act)은 비노조원인 노동자도 단체협약이 정한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와 복지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 산업부문별 단체협약이 체결되면,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와 사용자는 그 틀 안에서 단체교섭을 진행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내용이 노동시간, 노동형태, 휴가 기간, 성과급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한 사업장 안에서도 직종별로 복수의 단체협약이 체결될 수 있다. 직종별 노동자대표가 경영진과 각각 따로 단체교섭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조립 회사에서 사무·생산·설비직 직원은 서로 다른 산별노조에 가입했고 각각 자신들의 노동자대표를 선출하기 때문에 해당 회사의 경영진은 직종별로 서로 다른 3개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개별 단위 노조 파업은 불법
제도적으로 핀란드 노동자는 고용자와 대등한 교섭력을 보장받지만, 합법적인 파업 조건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합법적인 파업은 산별노조 수준 이상의 노동자단체에 의해서만 시작될 수 있다. 사업장 단위 노조가 주도하는 파업은 불법이지만, 산별노조 또는 중앙노동조합연맹이 주도하는 파업은 합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노동쟁의 조정에 관한 법률’(Act on Mediation in Labour Disputes)에 따르면, 정치적 쟁점에 대응하기 위한 파업과 기존 단체협약 적용 기간 만료 뒤 신규 단체협약 체결 전에 발생하는 파업만이 합법으로 인정된다.
단, 정치적 이유의 파업이 합법으로 인정받으려면 파업의 목적과 목표가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산별노조 혹은 중앙노동조합연맹의 이사회가 파업 실시를 결정하면 규약에 따라 해당 노조원은 모두 파업에 동참해야 하고, 참여하지 않은 노조원에게는 노조 차원의 징계가 내려진다.
사회적 조합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앙집중식 핀란드 노사관계 전통은 조금씩 약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정책을 합의할 때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체계적으로 제도화된 산업부문별 단체협약이 대부분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합리한 임금수준이나 노동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핀란드와 한국의 복수노조제도 운용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사업장 안에서도 직종별로 구분된 노조가 개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핀란드와 달리, 한국에서는 한 직종 내 복수 노조의 경쟁이 일반적이고 이 중 가장 많은 조합원을 가진 노조만이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는 노조 간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고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동한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혁신과 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특히 핀란드의 사회정책이 어떻게 시민들의 삶을 안정시키는지 탐색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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