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슈발리에 Marc Cheval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업 담당 기자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유구한 가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34년 이미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는 ‘200대 재벌 가문’이 프랑스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비난한 바 있다.

아르노 라가르데르 가문의 세습경영은 프랑스 산업이 지닌 문제점을 일부 해소해주기도 한다.

그 뒤 로스차일드, 방델, 루이드레퓌스 등 몇몇 가문을 제외하고 달라디에가 말한 200대 재벌가는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또 다른 ‘가족제국’이 탄생했고, 이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프랑스 유수 기업을 장악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자본주의(Family Capitalism)Tip & Tap 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까지 널리 아우르며 프랑스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가족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Tip & Tap의 병폐에 맞서 안심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렇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기도 하다. 기업의 가족 대물림은 사회정의 측면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많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이롭기 때문이다.
　
보수적 경영으로 수익성 높아
다논·로레알·리카르·부이그·EADS·미셰린·PPR·푸조 등 프랑스 CAC40(프랑스 대표 40개 기업의 주가를 가중평균해 만든 지수)에 편입된 블루칩 기업 가운데 10여 곳은 창업주 일가가 지배주주로 있다. 게다가 일부는 창업주 자손이 경영자로 활동하기까지 한다. 프랑스 전체 상장기업을 기준으로 하면, 가족기업의 비중은 훨씬 더 두드러진다.
경제학자 다비드 스라에와 다비드 테스마르가 실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말 전체 상장기업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기업에서 재벌가의 지분 참여가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높은 비율이다. 심지어 프랑스 기업의 55%는 창업주나 그 일가가 직접 경영에 참여했다. 외국의 경우 가족기업이라도 자손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임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프랑스의 가족기업 비율은 전체 기업의 83%로, 국민총생산(GNP)과 국가 전체 고용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유럽국가 가운데 가족자본주의적 성향이 가장 강한 셈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가족기업은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Tip & Tap와 금융화(Finaciarization)Tip & Tap로 인해 사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존속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최근 점차 힘을 얻는 주장대로 가족기업이 높은 실적을 보이기 때문일까?
사실 수년간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에 천착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은 없다. 어쨌든 다비드 스라에와 다비드 테스마르는 1994∼2000년 1천여 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에서, 가족경영 기업은 상대적으로 주주 지분이 분산된 일반 기업에 견줘 훨씬 수익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발견했다. 가족기업을 경영하는 주체가 창업주인지, 혹은 일반적으로 ‘형편없는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창업주 2세인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인지는 상관없었다.
가족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나타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오너 경영인은 주주 소유 지분이 분산된 일반 기업의 전문경영인과 비교해 기업을 건실하게 오래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를 세운 창업주의 아들 존 월턴이 단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오너 경영자에게 가족기업은 “잘 건사해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세습재산”이기 때문이다. 후손을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따라서 가족 경영자는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해서 투자나 기업 인수 등에 좀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가족이 직접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는 경우에도 전문경영인의 활동을 가까이서 관리·감독한다. 반면 일반 기업의 경영자는 단기적 성과나 연봉, 스톡옵션 등 개인적 이익에 더 역점을 둔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너 경영자는 수세대에 걸쳐 획득한 노하우나 평판 등을 이용해 협력사와 더 유리한 관계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가족기업은 일반 기업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 쓴다.

1899년 설립된 에브마르 제재소. 프랑스에서 가족자본주의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경영 기업이 노사 갈등 관리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해고 삼가는 대가로 인건비 삭감
가족기업이 높은 수익성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비용을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가족기업은 다른 일반 기업에 비해 인건비 수준이 낮다. 안드레아 바사니니, 토마스 브레다, 이브 카롤리, 앙트안 르베리우 등이 최근 26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가족기업의 시간당 순임금은 다른 기업에 비해 평균 3%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숙련 노동자(중급 기술자, 작업반장, 간부급 사원)보다 저숙련 노동자(생산직 노동자나 일반 사원)에게서 가족기업과 다른 기업의 임금 격차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처럼 가족기업이 인건비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노동자와의 암묵적 계약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된 네 명의 연구자는 가족기업의 해고율이 다른 기업보다 아주 낮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가족기업에 고용된 직원은, 기업이 위기로 인해 일자리를 축소해야 하는 처지가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해고될 위험이 적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일반적으로 실업 위험이 가장 높은 근로자, 즉 저숙련 노동자는 무엇보다 고용 안정을 중요시한다. 고용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임금을 크게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가족기업은 종업원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임시직 고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덕분에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조제 알루슈와 브뤼노 아만이 더 오래전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가족기업과 종업원 간의 묵계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가족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작고, 의료 및 노령 급여나 복지비용 등 임금 외의 후생복지 수준이 우수하다. 이는 19세기 온정주의(Parternalism)Tip & Tap의 영향 때문이다. 슈네데르를 필두로 과거 프랑스의 여러 경영자들은 온정주의에 입각해 노동자를 위한 주택·학교·병원 등 여러 시설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같은 온정주의 덕분에 가족기업에서는 노사분쟁 비율이 다른 기업에 비해 2배 적고, 노조가 결성되는 경우도 드물다. 토마 필리퐁이 <상속자의 자본주의>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가족경영 기업은 노사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일종의 ‘비교우위’를 누리는 셈이다.
언뜻 프랑스 가족자본주의의 성적표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내 가족기업의 실적과 성장을 또 다른 시각에서 해석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프랑스 경제 차원에서 가족기업의 높은 수익은 반드시 바람직한 신호는 아니다. 잘나가는 가족기업의 오너 경영자는 외부에 주식을 공개해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투자 기조를 유지하거나 기업의 성장을 제한하게 된다. 이처럼 경영자 개인의 선택이 거시경제 차원에서 프랑스 기업의 혁신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경영권 세습 이후엔 실적 악화
재벌 가문은 우선적으로 유망한 기업을 남겨두었다가 물려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니 오너가 경영하는 기업이 우수한 실적을 보이는 것은 가족경영 덕분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선택의 결과에 불과하다. 더욱이 아무리 유망한 기업을 물려받더라도 재벌 2세가 경영자 자리에 오르면 기업의 상황이 악화되는 일이 허다하다. 덴마크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경영권 세습 이후 일반적으로 기업 실적은 평균 20%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경영 세습 문화가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세습경영은 인적자본 관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토마 필리퐁은 “창업주의 장남이 경영하는 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더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구시대적인 경영방식은 능력에 따라 직원을 승진시키는 게 저조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마 필리퐁은 “후계자 상속과 같이 직접적 방식이든, 학위나 지위의 재생산에 의한 사회적 방식이든 간에 세습을 중시하는 현상은 ‘프랑스산’ 세습 자본주의의 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반면 독일도 가족이 주주로 참여하는 기업의 비중은 높지만 프랑스와 같은 문제는 겪고 있지 않다. 대개 창업주 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기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가족자본주의는 노사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베이비붐 세대 경영진이 대거 은퇴기를 맞으면서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부터 2020년까지 경영자 교체가 예상되는 기업은 무려 6만 개에 이른다. 만일 오너 경영자가 대거 물러난다면, 프랑스 내 노사 갈등은 더욱 증폭될지 모른다. 

Top&Tip
가족자본주의
경제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는 산업혁명 이전에 취약한 자본구조를 바탕으로 영세한 규모의 기업이 그 가족들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구조를 일컬어 ‘가족자본주의’라고 표현했다. 또한 자본주의는 가족자본주의에서 시작해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를 거쳐 금융자본주의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자본주의
자본의 소유와 기능 분화를 기초로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단계를 의미한다.
테크노크라시
과학적 기술과 지식을 지닌 사람이 경제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현상.
금융화
국민경제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제조업 상품의 생산이나 교역보다는 금융상품과 금융거래를 통한 이윤 창출의 계기와 규모가 커지는 것을 뜻한다.
온정주의
노사관계를 대등한 인격자 상호 간의 계약에 의한 권리·의무 관계로 보지 않고, 사용자의 온정에 따른 노동자 보호와 이에 보답하려 노동자가 더욱 노력하는 협조 관계로 보는 것을 말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