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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이민 이어 문화 근접성 큰 영향
[CULTURE & BIZ] 음식 세계화의 경제사
[129호] 2021년 01월 01일 (금)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국 음식인 짜장면을 비롯해 중국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돼 많은 사람이 코로나 우울증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여행을 가지 못하는 슬픔이 가장 크다. 여행은 가서 느끼는 것보다 준비하면서 느끼는 맛이 더 크다고 생각해온 터라 더 그렇다. 일주일 남짓 해외여행을 위해 몇 달을 재미있게 보내던 취미생활이 사라졌다. 검색을 거듭해 싼 항공권이 나오는 경로를 찾아내고, 여행 후기를 읽으며 가야 할 명소를 고르고 동선을 만드느라 눈이 벌게지던 기억이 그립다.
여행을 준비할 때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식당 목록을 정하는 것이다. 맛난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은 여행의 정수, 고갱이이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와 감명 깊었던 음식을 다시 먹으며 여행의 추억에 빠지는 것도 중요한 후속 활동이다. 나 같은 사람들 덕분에 해외여행이 늘면서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도 많이 늘었다. 전반적으로 식생활에서 외식 비중이 늘었거니와 가열찬 세계화 물결 속에 외국 음식을 맛보는 것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외국 음식 식당이 늘어나는 것을 경제학적으로는 ‘요리 무역 증가’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무역 집계 방식으로는 이 무역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일반적인 재화의 무역액은 통관 기준으로 집계하곤 한다. 유통·금융·운송·건설·정보통신 등과 같은 무형 상품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를 받거나, 사용권 등을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았을 때 무역액으로 집계한다.

‘요리 강국’ 이탈리아·일본·중국
요리에는 이런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 외국 음식 요리법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국내인이 국내 식재료로 외국 음식점을 차리는 것도 흔하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한국 사람이 이탈리아 정통 레시피로 이탈리아 음식점을 열면 무역으로 집계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해외 팬들이 유튜브로 방탄소년단(BTS) 노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무역과는 무관한 것과 비슷하다. 국가 간 거래액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리 같은 문화상품의 교역은 일반적 무역 집계 방식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측정하기도 한다. 경제적 거래액보다 관련 상품이 얼마나 교류되는지 살피는 게 필요한 때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의 외국 요리 시장과 한식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에는 무역액만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칼슨경영대학의 조엘 월드포겔 교수가 세계 요리 시장의 국가별 규모를 독특한 방식으로 추정한 결과를 내놓았다. ‘문화 교역으로서 외식’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그는 국가별로 외국 음식점 비중을 산출하고 요리 무역만이 보이는 특성을 분석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요리의 매력이 큰 나라, 즉 해외에 자국 음식점을 많이 퍼뜨린 나라는 이탈리아, 일본, 중국, 인도, 미국, 프랑스, 멕시코, 터키 차례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요리도 13~15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상위 국가 외에 스페인, 브라질,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음식이 우리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이 연구는 데이터를 구축한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추정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각각의 나라에 있는 국가별 식당과 식당별 매출액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런 정교한 데이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 대신 이 연구는 유명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와 시장조사기관인 EIU의 국가별 외식 매출총액 데이터를 연결했다. 먼저 각국에서 트립어드바이저에 오른 식당들을 하나하나 요리 원산지 국가로 분류했다. 그 뒤 외식 매출액 전체를 요리 원산지별로 쪼개 어느 국가 음식점의 비중이 큰지 계산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100개 식당이 있고 이 가운데 15개가 중국 음식점이라고 하자. 우리나라 외식 매출총액이 100만원이라면, 중국 음식점 매출액을 15만원으로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계산이 성립하려면 모든 음식점의 요리 가격과 음식점 매출액이 동일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또 트립어드바이저는 여행사이트여서 주로 관광객에게 소개하기 좋은 음식점들이 게재돼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음식 가격이 싼 국가는 더 혜택을 봤고, 트립어드바이저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의 음식점은 많이 누락됐을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데이터가 없을 때 사회과학자들은 이렇게 가정을 통해 근사치에 접근하곤 한다.

   
▲ 코로나19 사태로 실내 모임이 금지된 2020년 6월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으로 한식요리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리와 이민의 함수
이 연구에 따르면 인기 많은 외국 요리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이탈리아(15.5%) 요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14.9%), 중국에서는 일본(6.8%)이다. 모든 국가에서 자국 음식점 비중이 40~80%로 가장 높다. 그 비중이 낮은 나라는 독일(34.2%)과 러시아(40.7%)이고, 높은 나라는 터키(80.9%), 중국(78.4%), 이탈리아(78.0%) 등이다. 한국의 자국 음식점 비율은 48.4%로, 평균(57%)을 약간 밑돈다. 대체로 서구에서는 이탈리아 요리,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일본 요리의 비중이 크다. 패스트푸드점의 분류는 조금 모호하다. 미국 요리로 포함하면 세계적으로 미국 비중이 조금 높아진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요리의 원산지 국가가 다른 데 대해 월드포겔 교수는 △국가 간 거리 △이민자 비중 △동일 식민지 경험 △같은 언어권 등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무역 연구에서 국가 간 거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보통 ‘중력모형’이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울수록 무역을 많이 하고 멀수록 덜 한다는 이론이다. 거리가 멀수록 운반비 등 무역거래 비용이 많이 발생하므로 비용 절감을 위해 근거리 국가끼리 주로 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 등으로 거래 비용을 상쇄하는 요소가 늘어나 원거리 무역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중국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재화에서는 중력모형이 여전히 잘 적용된다. 문화상품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들에는 ‘문화적 근접성’이 깊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근접성은 특정한 문화에 친숙하게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거리가 가까운 나라들은 대체로 동일 문화와 언어권 등에 속해 문화적 근접성도 높다. 문화상품 구매에서는 가격보다 취향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문화적 근접성이 높으면 선택 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리도 취향이 중요한 문화상품이어서 문화적 근접성이 높은 가까운 나라의 요리 전파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거리를 제외한다면, 요리의 세계 전파에는 ‘슬픈 이민사’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나 중국, 인도 요리가 미국으로 진출하고 이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대량 미국 이민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1850년대 미국 철도 건설 일자리를 찾아 서부로 달려간 중국인들, 1890년대 가난과 가뭄을 피해 인구의 40%가 고향을 뜬 시칠리아 사람들로 이들의 음식 전파는 가속화했다. 미국의 많은 멕시코 음식점, 유럽 어디를 가나 많이 보이는 터키 음식점도 비슷한 맥락의 결과다.
식민지 경험도 이민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아프리카 국가에 많이 남아 있는 프랑스 요리의 흔적, 과거 영국 식민지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진 인도 요리의 영향은 모두 뼈아픈 식민지 역사의 상처다.

문화적 근접성 높인 한류
이런 측면에서 한국 요리의 선호도가 13~15위에 오른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국 음식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는 중국(2.0%), 타이(0.9%), 일본(0.7%), 미국(0.7%)이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나라들 외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등에도 한국 음식점이 꽤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문화상품 교류로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진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 등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멀리 떨어진 나라의 문화상품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문화상품을 많이 접한 나라에 대해서는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특정 국가의 영화나 드라마, 노래, 가수들을 자주 보면 그 나라를 친숙하게 여기는 경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몇 년 전 한류 수출과 ‘취향 소비재’ 수출의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직접 해봤다. 연구 결과, 한류 수출 1% 증가가 화장품·의류·가공식품 등 취향이 중요한 소비재의 수출을 2.5%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K)팝과 한국 드라마를 많이 즐기는 나라에는 우리나라 립스틱, 라면도 더 수출된다는 이야기다. 한류가 문화적 근접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 한국 음식점이 늘어나는 이유도 음식 자체의 매력만큼 한류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유럽으로 건너간 친구가 오래전부터 한국식 김밥집을 차려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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