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페슈 Thierry Pech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올리비에 다소

출생과 관련된 특권을 200년 전 이미 폐지시킨 프랑스 공화국에서 상속은 직업이나 재능과 비교하면 개인의 삶에 하찮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마치 현대사회 속의 ‘선사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부모의 유산에 의해 결정됐던 19세기 ‘금리 생활자들의 사회’를 목격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우리는 개인의 자질을 기본적 가치로 삼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판이하다. 최근 수년 사이 상속인들의 귀환은 ‘불평등의 세습화’라는 움직임에 합세하고 있다.
　
유산, 상위 10%가 하위 10%의 2100배
세습재산의 불균등은 소득 불균등보다 빠르게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상위 10% 부유층(전체 유산의 절반 가까이 소유)의 평균 유산은 하위 10% 빈곤층 유산의 1600배(1977년)에서 2100배(2003년)로 높아졌다. 반면 일반 생활수준 측면에서는 3.3배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상당한 유산을 보유한다는 사실이 일상생활을 크게 바꾸지는 않더라도 빈곤 계층이 결코 향유할 수 없는 엄청난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다.

정의선

이 엄청난 불평등은 유산의 비중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재산은 평생 동안의 노동과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체 부에서 상속으로 취득한 몫은 대체 얼마일까?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전공한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는 최근 연구에서 19~21세기 ‘유산의 연간 흐름’ 비중 변화를 국민소득과 비교해 분석했다. 이 흐름은 1년간 상속이나 증여로 인해 이전된 자산 가치를 보여준다. 여기엔 생명보험처럼 세금이 면제된 자산들도 포함됐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19세기에 유산의 연간 흐름이 상승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당시 유산은 국민소득의 20~25% 수준이었다. 그런데 1920~1930년대 들어 이 비중이 10%대로 떨어지고, 1950년대에는 5% 이하로 낮아졌다. 능력주의가 유산 세습과 출생 신분의 힘을 넘어섰던 것일까?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수십 년간은 점진적이면서 분명하게 방향을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70년대부터 상속의 흐름은 다시 상승 기류로 돌아서 2010년대 문턱에는 15%에 육박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상속은 1920년대의 상승세만큼 나타난 것이다. 토마스 피케티는 이런 재상승이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 결과 2020년대에는 20세기 초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그야말로 ‘거대한 퇴보’가 아닐 수 없다.

이재용

상속의 비중이 이같은 추이를 보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1910∼50년에 국민소득 중 유산의 몫이 가파르게 감소한 것은 양차대전으로 수많은 세습재산이 파괴된데다,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상속재산의 가치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197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영광의 30년’(1945~75)이라고 불리는 경제번영기가 상속의 비중을 감소시킨 원인이다. 당시 근로소득 수준이 상당히 증가하면서 일반 서민도 상환에 대한 큰 부담 없이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저성장 시기에 상속재산 비중 높아져
사실상 ‘영광의 30년’과 같은 경제 번영기에는 상속의 비중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동으로 부가 새로이 축적되면서 상속받은 유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모나 조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재산에서 나오는 불로소득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급속히 빈곤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금리 생활자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르노 라가르데르

반면 저성장·저물가와 자산 수익의 상승시기에선 상황이 바뀐다. 개인의 재산 총액에서 상속받은 부의 몫은 높은 수준을 회복하게 된다. 토마스 피케티에 의하면 50살의 개인이 평생 동안 얻은 수익을 더하면, 1960년대 초 태어난 세대들은 상속재산이 전체의 20~24%에 달하며, 2000년대 초 태어난 세대들의 유산은 전체의 28~32%를 차지하게 된다. 2000년대 상속재산의 비중이 1850~60년대의 높은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경기침체기에 세습재산의 가치는 국민소득보다 더 빨리 높아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는 ‘상속인들의 사회’라는 모델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모델은 ‘기회 균등 사회’와 대척점에 있다. 크게 낮아진 상속세제도 이 현상을 채찍질할 것이다.
상속자의 수나 상속재산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수치가 있다. ‘의무징세위원회’는 2006년에 신고된 43만 건의 증여 재산 총액이 340억유로, 32만7천 건의 상속 총액이 590억유로(국내총생산의 3.3%)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증여나 상속재산을 전부 파악하기는 어렵다. 반드시 신고해야 할 상속 상한액이 존재하는데다, 자산 종류에 따라 상속세가 면제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느슨해진 상속세로 경제 ‘동맥경화’
지난해 조세 당국에 신고된 상속 총액은 930억유로로 나타났다. ‘CAC40’(증시에 상장된 40개 우량 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한 프랑스의 대표적 주가지수)에 뽑힌 기업들 이윤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런 경향은 1980년대부터 시작돼 1984년 단순 증여 수치는 세 배로 증가했다. 평균 상속 금액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한편 가족의 재산 대물림은 집중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2006년 전체 증여 건수의 10%가 증여 총액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들 거액 수증자가 세습받은 재산은 평균 40만유로에 달한 반면, 전체 평균은 7만8천유로에 불과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상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속 건수의 10%가 상속 총액의 40% 이상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유산 상속은 세대 내 불평등을 심화한다.
더욱이 상속세가 완화되면서 불균형을 해소할 만한 여지가 사라지는 것도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부모에게서 서로 다른 부를 세습받는 일만큼 불공정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유산 덕에 부유해진 자녀는 부모처럼 성공의 자질이 뛰어나서 지금의 부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조세 당국이 고인의 재산 일부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술적인 용어로 ‘무상 취득 재산에 대한 양도세’라고 부르는 이 세금의 취지는 다음 세대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데 있다. 가장 불평등하다는 미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이런 조세가 존재한다. 하지만 의무징세위원회 자료를 보면, 2006년 프랑스에 신고된 상속재산 930억유로 중 과세 대상은 85억유로에 불과했다. 게다가 2007년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한 조세개혁안인 ‘테파법’(노동, 일자리 및 구매력에 관한 법)이 도입되면서 상속세에 관한 규정은 더욱 느슨해졌다.

항공·군수 사업은 물론 언론부문(<르피가로>)까지 진출한 프랑스 다소그룹 경영자 세르주 다소(왼쪽)와 아들 올리비에 다소.

상속세 완화는 비단 노동과 능력주의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활력도 저해한다. 조세정책이 후퇴할수록 상속재산은 사회적으로 유통되지 않고 극소수 부자 가문에 편중된다. 이 세습부자들은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지만, 반드시 훌륭한 경영과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가족 상속의 귀환은 ‘경제의 동맥경화증 시대’를 예고한다.

느려지는 사회의 승강기
무거워지는 상속의 중량은 경제성장의 둔화와 결합돼 사회의 승강기 속도를 느리게 한다. 1944~48년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상승 코스가 하강 코스보다 2.2배 더 길었다. 1964~68년 태어난 세대는 그 비율이 1.4배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학자 카미유 프니는 하강 코스의 비율이 첫째 그룹에서는 25%, 둘째 그룹에서는 35%로 추정했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8년 학업을 마치고 2001년에 취업 중인 청년의 21~28%가 직업 등급이 격하될 위험을 겪고 있다.

상속은 ‘사회적 신분’
상속은 단지 돈과 재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자본’과 관계된다. 그래서 능력주의라는 이상은 거친 시험대 위에 놓인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클로드 파세롱이 <상속인들>과 <재현>에서 갈파했듯이, 학교는 상위 범주의 문화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이 범주에 속하는 자녀들은 다른 자녀들보다 혜택을 많이 받게 된다. 좋은 지위를 획득하는 데 필요한 규범과 사고방식을 손쉽게 습득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분이 학교 교육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 지대하다. 프랑스 교육성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교직자의 자녀는 미숙련공의 자녀보다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할 기회가 14배 높다. 이런 불평등은 더욱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프랑스 자격연구센터’가 실시한 ‘2004년 세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적 신분의 영향은 고등교육 과정에서 더욱 쉽게 드러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김경란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