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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규제·처벌 도덕적 해이 불러
[FOCUS] 사모펀드 부실 사태- ① 한국의 문제점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박종오 pjo22@edaily.co.kr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2020년 11월10일 신한금융투자 직원들이 금융감독원에서 열리는 ‘라임 사모펀드 사태’ 관련 판매사 3차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있다. 연합뉴스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용사였던 라임자산운용은 대형 펀드 4개를 통해 1조6679억원을 투자받았다. 지금 펀드에 남아 있는 돈은 5천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1조원 넘는 돈을 돌려막았다는 얘기다. 라임 펀드 투자금의 60%는 개인이 댔다. 개인투자자 4035명이 넣은 돈이 1조원에 육박한다.
한국 사모펀드 부실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펀드 투자 피해자 상당수는 ‘큰손’인 기관투자자가 아니다. 개인이었다. 사모펀드 선진국인 미국은 다르다. 투자자 4명 중 3명꼴인 75%(2017년 말 기준)가 대규모 재단, 공·사적 연금 등 기관투자자다. 개인은 직접 투자하지 않는다. 가족 회사나 자산관리 회사를 통해 사모펀드에 돈을 넣는다.

왜 개인들이 몰렸나
한국 사모펀드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한 첫째 질문은 이것이다. 왜 국내 사모펀드만 개인투자자가 많을까. ‘꼼수’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소수를 위한 고위험·고수익 투자 상품이다. 여러 규제를 확 풀어주는 대신 펀드당 투자자는 최대 49명으로 제한한다. ‘선수’들끼리 알아서 돈 굴리라는 취지다.
50명 이상을 대상으로 파는 공모펀드는 그렇지 않다. 펀드 투자자를 모집할 때 금융 당국의 서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분산 투자 의무, 공시 의무 등 운용 규제도 깐깐하다. 다수가 투자하는 상품이니만큼 당연히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한국 금융회사는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판매했다. 라임자산운용은 공모펀드 규제를 피하려고 모·자펀드 구조를 이용했다. 자펀드 1개당 개인투자자 49명을 모집하고, 수십 개 자펀드가 모펀드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라임자산운용이 동원한 자펀드는 모두 173개다. 여기 모인 개인투자자 4천여 명의 돈은 다시 모펀드 4개로 각각 흘러들어 갔다.
모·자펀드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비용을 줄이고 운용 효율성은 높이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은행과 증권사 창구에서 붕어빵처럼 찍어낸 위험 상품을 잘 알지도 못하고 팔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가 49명 단위로 잘게 쪼개져 개인에게 넘겨졌다. 모펀드에 부실이 생기면 같은 모펀드에 투자한 수많은 자펀드 투자자가 모두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위험이 분산되지 않고 오히려 확산하는 구조다.
반면 외국에선 사모펀드의 ‘판매’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펀드를 만든 운용사가 직접 기관투자자와 고액 자산가 등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사모펀드 판매는 펀드 제조·운용(자산운용사)과 판매 창구(은행·증권사)가 나뉜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소비자의 치수를 재서 기호에 맞는 맞춤형 양복(사모펀드)을 팔라고 했더니 이를 기성복(공모펀드)처럼 팔아버린 격”이라고 지적했다.

왜 공모펀드처럼 팔았나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는 왜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판매했을까.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운용사와 판매사는 펀드 수익과 무관하게 돈을 번다. 은행과 증권사는 펀드를 팔아주는 대가로 투자금의 2%를 판매 수수료로 뗀다. 운용사도 투자자 돈을 대신 굴려주고 투자금의 0.5%를 운용 보수로 받는다. 펀드를 많이 팔수록 더 큰 돈이 들어온다. ‘갑’인 대형 은행과 증권사가 ‘을’인 운용사에 수많은 자펀드를 ‘주문 제작’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운용사는 펀드 수익률을 조작할 유인도 크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는 사모펀드를 만기 3개월, 6개월 등 초단기로 끊어서 팔았다. 판매 수수료를 더 많이 먹기 위해서다.
반면 라임자산운용 등은 고객 투자금을 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비상장 기업의 사모사채나 부실 상장사의 전환사채(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 해외 펀드 등에 주로 투자했다. 운용사와 판매사의 중간 수수료 2.5%를 제외하고도 수익을 남기려면 고위험 자산 투자가 불가피했다.
이처럼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데도 펀드 만기는 짧다보니 운용사가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게 문제다. 보유 자산을 처분해 실제 이익이 생기기 전에 시장 수익률을 추정해 우선 투자금을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운용사 직원도 투자 자산의 ‘평가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받는 만큼 수익률 부풀리기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사모사채나 전환사채 등 비유동 자산은 가치 평가가 어려워 사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2020년 10월13일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모펀드 부실 사태에 대한 철저한 국정감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경고음은 없었나
라임자산운용은 판매사 도움을 받아 서울 강남 자산가의 돈을 쓸어 담았다. 이렇게 특정 운용사가 자체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돈이 몰리면 금융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커진다.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더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단순 대출을 넘어 직접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예금자 돈을 날린 저축은행 사태가 대표 사례다.
라임자산운용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실력 있는 운용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운용 자산이 불어나며 급기야 코스닥 부실기업에 돈을 대고, 남의 돈으로 기업을 사고팔며 주가조작 등을 저지르는 자본시장의 범죄자들과 엮였다. 라임자산운용은 위험한 투자로 특정 모펀드에서 손실이 생기면 다른 모펀드의 돈으로 이를 감추는 등 수익률을 적극적으로 조작했다.
한국 사모펀드 부실 사태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질문은, ‘그렇다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의 650억달러(약 72조원) 규모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계기로 시장의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펀드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 사무관리회사와 투자 자산을 보관하는 수탁 기관이 사모펀드 운용을 관리·감독하는 구실을 한다. 만약 펀드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사무관리회사와 수탁 기관이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는 만큼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기 어렵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도 2016년 부동산 펀드 거래 중단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 수탁회사에 펀드의 유동성 위험 감독 의무를 부여했다.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은 사모펀드 투자자가 기본적으로 시장에 영향력이 큰 기관이어서 운용사가 애초 딴짓을 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한국은 달랐다. 5천억원대 사기를 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가 단적인 예다. 옵티머스 펀드의 사무관리회사인 한국예탁결제원과 수탁은행인 하나은행은 “우리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항변한다. 책임 전가의 ‘끝판왕’이다.

사기 공모
견제가 아니라 운용사의 부정에 동참하기도 한다. 라임자산운용에 자금 대출·관리 등 전담 중개 업무 서비스를 제공한 프라임브로커는 신한금융투자·KB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자기자본이 3조원 넘는 3개 대형 증권사다. 이 회사들은 라임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라임 펀드 4412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자본시장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는 제도가 시장 참여자들의 집단적인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예컨대 미국 메이도프는 연방법원에서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라임자산운용 사건에 연루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정치권의 주목을 받으며 피해자 행세를 한다. 라임 펀드 투자자들의 돈 수천억원을 가로챈 김영홍과 이인광은 여전히 잠적한 상태다.
한국에서 사모펀드 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까. 많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답한다. 저금리와 기존 금융 시스템이 지속하는 한 비슷한 사고가 상품의 껍데기만 바뀐 채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회사가 단기 수익을 노려 고수익을 미끼로 고객에게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지양하고, 투자자도 반드시 자신이 고수익 상품의 위험성을 감내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한 뒤 투자해야 한다”며 “금융 당국도 규제만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 규제가 잘 지켜지는지 지속해서 점검하는 등 금융사·투자자·당국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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