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Culture & Biz
     
코로나 이후 게임 전성시대 열린다
[CULTURE & BIZ] 게임의 재발견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동영상 라이브 예고 화면. 유튜브 채널 ‘KBS 아카이브 옛날티비’ 갈무리

2020년이 저물어간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삶이 작은 바이러스에 휘둘리며 한 해가 갔다. 2020년 1월, 사람들의 작은 주목을 받은 TV 애니메이션이 있다. 1989년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나름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배경이 2020년이다.
어린 시절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란 이들은 이제 중년이 되어 ‘2020년이 오긴 오는구나’라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작품에서 2020년은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황폐화한 때다. 사람들이 새 터전을 찾아 우주로 탈출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지구는 사람이 살지 못할 만큼 오염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 사태를 실시간으로 견디고 있다.

게임의 대약진
코로나19 사태는 콘텐츠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1년 성적을 분야별로 보면, 대부분은 상당한 부진을 보였다. 특히 공연과 영화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반대로 급부상한 분야도 있다. 게임이 대표적이다. 외출에 제약이 생겨 집 안에서 즐기는 게임의 대약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한국 대표 게임사들의 실적은 놀랍다. 상장 뒤 첫 실적 발표를 한 카카오게임즈는 역대 최고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에 매출 1505억원과 영업이익 212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각각 54%와 178%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게임사들의 약진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집콕 문화’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시대 인기 아이템의 하나인 휴대·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는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3~9월 판매수익이 3배 이상 늘었다. 세계 최대 디지털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은 4월 동시 접속자 2450만 명을 넘겨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라이브도 동시 접속자가 9천만 명으로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한국 게임산업이 규제로 잠시 주춤한 사이에 세계 모바일게임의 ‘공장’이 된 중국은 상반기 매출이 23조원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뉴주는 2020년 세계 게임시장의 예상 규모를 애초 1460억달러에서 1593억달러(약 177조원)로 상향 조정했다. 많은 이가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게임산업에 대한 시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부정적이던 정치권 인사들도 게임회사 최고경영자와 만나 규제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게임이 콘텐츠산업의 명실상부한 주류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현재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집 밖에 나가지 못해 게임을 대안으로 선택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업계 견해는 조금 다르다. 물론 코로나19 반사이익을 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게임이 ‘마니아들의 서브컬처(하위문화)’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흐름으로 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게임이 ‘선도산업’으로 도약하려 한다는 것이다. 영화나 음악이 이끌어왔던 콘텐츠산업이 앞으로 게임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근거가 있다.

   
▲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인 2020년 3월 발매된 게임 ‘닌텐도 스위치-모여봐요 동물의 숲’. 한국닌텐도 누리집 갈무리

불황형 산업
가장 먼저 거론되는 근거는, 게임이 불황에 강한 매우 ‘경제적인’ 여가 문화라는 점이다. 콘텐츠 소비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현재 게임 콘텐츠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바일게임을 예로 들면, 대부분이 무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더 편리하게 즐기려면 유료 콘텐츠를 살 필요가 있지만, 대부분 게임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소비 시간도 다른 콘텐츠보다 상당히 길다.
역사적으로도 게임은 불황에 강한 콘텐츠로 인식됐다. 실제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가장 인기 있던 콘텐츠가 바로 모노폴리다. 모노폴리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악한지를 알리기 위해 진보 지식인 엘리자베스 매기가 고안한 게임이다. 게임 저작권을 파커 형제가 사들여 모노폴리 게임으로 재판매했다.
모노폴리 붐에 놀란 사람은 판매자인 파커 형제였다. 대공황으로 가정경제가 붕괴하고, 소매업과 서비스업이 도미노처럼 무너졌기 때문이다. 모노폴리가 대공황 시기에 홀로 열풍을 일으키는 것에, 설립자의 조카인 에드워드 파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전처럼 쇼나 영화를 보는 데 쓸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 친구와 모노폴리 게임을 했다.”
이 시절 모노폴리는 값싼 오락과 함께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현실에선 만져보기도 힘든 엄청난 돈을 들고 부동산을 사고팔거나 많은 부를 축적했고, 게임 승자가 돼 쾌감을 느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모노폴리 외에 스크래블 같은 명작 게임들이 대공황 시기에 고안돼 흥행에 성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비 심리가 위축돼 완구 판매가 3% 줄었지만, 보드게임 매출만 6% 늘었다. 코로나 불황에 게임산업 매출만 성장세를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게임은 일종의 도피처에 가깝다. 대리만족과 함께 현실을 잠시 잊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장기 불황과 심리 위축이 우려되는 이 시점에 게임의 성장세는 충분히 예상된다.
최근 세계적으로 게임산업이 성장하는 데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게임 인구가 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게임을 어린아이나 청소년 전유물로 여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게임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나온 시기가 1980년대였다. 이 시기 유년을 보낸 많은 이가 성장해 게임을 즐긴다. 게임 인구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포진해 있다. 1989년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던 아이들이 지금 사회의 중추인 40~50대가 된 것처럼 말이다.

게임 인구 증가
세계 모바일게임 이용자는 현재 세계 인구의 30%가 넘는 26억 명으로 추산한다. 한국에선 2천만 명 정도다. 게임 인구의 양적 팽창은 게임이 전체 콘텐츠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높이는 가장 큰 힘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더 지나면 대부분 나이대에서 게임을 소비하는 시대가 된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임 인구의 양적 증가로 이제는 게임 경험을 일반 생활문화에 반영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게임 용어의 일상적 사용은 물론, 일반 콘텐츠의 디자인이 게임 요소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이라고 한다. 인간행동학이나 마케팅 분야에선 ‘게임은 나쁘다’는 무조건적 인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 근본 원인을 고민했다.
그들은 게임의 여러 요소가 인간의 본능적 성취욕이나 심리적 만족을 주는 데 주목했다. 사람들의 의욕과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게임 요소를 마케팅이나 교육·훈련 등에 적용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렇게 게임 요소가 결합한 일반적 상황을 두고 게임화가 진행됐다고 말한다.
연구가 본격화한 2010년대 이후 게임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스탬프(도장 찍기) 몇 개 이상 모으면 공짜 음료를 주거나, 시중에 팔지 않는 소장 물품(굿즈) 등을 선물하는 것도 게임화의 좋은 사례다. 게임화의 핵심은 사람들의 의욕과 행동을 견인하기 위해 게임 같은 재미를 도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열쇠
최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여러 방안의 하나로 게임화가 주목받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 유행처럼 번지다 사라진 게임화가 다시 부상한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언택트’(비대면)라는 속성에서 비롯한다. 동시에 게임화 시스템이 콘텐츠 경쟁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하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게임 요소와 원칙이 적용된 시스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게임을 즐기는 세대가 늘어날 터여서, 게임 콘텐츠나 게임화한 시스템이 여러 변수로 얽힌 포스트 코로나 상황을 예측하고 풀어내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게임산업 위상은 당연히 높아지고 중요성이 더해질 것이다. 게임산업과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클수록 시대와 세상을 읽는 시야도 넓어질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비즈니스는 도태되고 새 시대에 맞는 시스템을 갖춘 비즈니스가 살아남아 번성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힘든 코로나 시대에 지금까지 ‘애들 놀이’로 치부하며 무시했던 게임 콘텐츠에서 의외의 해결책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2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