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상실의 시간, 살아 있는 감각을 위하여!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박중언 parkje@hani.co.kr
   
▲ 관악극회의 아홉 번째 정기공연 <동굴가족> 포스터. 관악극회

얼마 전 배우 송승환의 근황 기사를 읽었다. 젊은 시절 잘나가는 배우였고,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와 평창올림픽 기획·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연극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무대는 여전히 나의 삶”이라는 주연급 스타와 거리가 먼 중견기업 P부장의 마음속에도 연극 무대는 향수로 남아 있다.
대학 시절 맛본 연극동아리의 경험은 그의 삶에 작지 않은 자국을 남겼다. 학과 공부를 등한시하고 당시 유일하게 열심히 했던 활동이어서다. 학교 축제 때 조연으로 출연한 게 전부이지만 기회가 되면 언젠가 다시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1980년대 초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대학 연극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공연 또한 다른 용도로 활용되기 일쑤였다. 학교 안에 상주하는 사복경찰이 학생들을 감시하던 때라 많은 학생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자리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크고 작은 시위로 이어지곤 했다. 당시 민중문화 바람과 맞물려, 잘 짜인 무대가 아니라 관객이 원형으로 둘러앉은 마당에서 하는 마당극이 많았다. 그럼에도 연극영화과가 아닌 대학 동아리에서 정진영·김의성 같은 개성파 배우들이 나온 걸 보면 아주 엉터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P부장은 동아리 출신들이 몇 년 전에 만든 극단의 정기공연을 거의 빼놓지 않고 봤다. 코로나19가 잠시 주춤했던 10월 중순 개막한 2020년 공연에선 주연을 맡은 86살 이순재가 그 많은 대사를 너끈하게 소화했다. 대사 암기가 기본인 연극 연습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는 언젠가 무대에 서봤으면 하는 P부장의 바람을 더 자극한다. 그는 대본 읽기 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고, 전문직인 그의 동아리 친구는 공연에 몇 차례 출연했다. 그런 P부장에게 송승환의 기사가 눈길을 끈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실명으로 가는 세 길
P부장은 연극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60대 초반 송승환의 열정적 삶에서 부러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다. P부장보다 겨우 6살 많은 송승환이 시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시각세포가 거의 다 죽어 사물의 형체를 간신히 알아보는 정도라고 한다. 증상은 황반변성에 가깝다.
황반변성은 물체를 또렷이 보게 하는 망막 중심부의 신경조직(황반)에 이상이 생겨 시력이 떨어지고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병이다. 노화도 여러 원인의 하나다. 60대 이상 환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황반변성의 종착지는 실명이다. 나이 들면서 노안이 오고 시력이 나빠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시력을 완전히 잃는 건 다른 차원이다. 볼 수 없는 삶이 주는 상실감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노후는 하나씩 잃어가는 시기다. 머리 회전이 느려지고 움직임은 둔해지며, 눈과 귀, 손끝은 무뎌진다. 원래 없던 것과 있던 게 사라지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특히 감각을 잃는 건 충격으로 다가온다. 감각기관을 통해 삶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외부 정보의 80%를 처리한다는 시각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송승환의 사례는 눈 건강이 노후 삶의 질에 끼치는 영향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공연 준비의 첫걸음인 대본 읽기를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황반변성을 비롯해 완치되지 않는 3대 실명 질병이 가장 위험하다. 다른 두 가지는 녹내장과 당뇨망막병증이다. 녹내장은 높은 안압 등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는 것이고, 당뇨망막병증은 핏속 높은 혈당으로 망막 모세혈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예방이 최선이고, 발병과 진행을 되도록 늦추는 게 차선이다. 모두 눈신경과 혈관의 이상이므로 눈을 혹사하지 않고 정기검진, 항산화 음식 섭취, 규칙적 운동, 금연, 절주, 스트레스 완화 등은 기본 행동에 해당한다. 특히 황반변성 예방에는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색렌즈와 이어폰
자외선은 나이 들어 자주 나타나는 백내장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눈의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져 생기는 백내장은 수술을 통해 인공수정체로 바꾸면 해결된다. 물론 제 눈으로 오래 버티는 게 당연히 더 낫지만. 의료기관 수술 건수 통계에서 백내장이 늘 1위에 오르는 것을 보면 얼마나 흔한 질병인지 쉽게 알 수 있다.
P부장은 40대 때부터 변색렌즈를 끼운 안경을 써왔다.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지키려면 선글라스가 필요하지만, 밖에 나갈 때마다 안경을 바꿔 쓰는 건 번거롭기 짝이 없다. 까먹을 때도 많다. 자외선이 닿으면 절로 색깔이 검게 바뀌고 실내에선 검은색이 사라지는 변색렌즈는 그런 면에서 편리하다. 색이 바뀔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흐린 날에도 야외에서 자외선이 감지되면 검게 변해 가끔 오해받기도 한다. P부장의 짧은 머리, 무채색 복장과 더불어 정보기관원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듯, 시각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감각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시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청각이 예민해진다. 디지털 기술 발달의 덕을 보기도 한다. 송승환은 대본을 읽어주는 스마트폰 기능에 힘입어 대사를 외울 수 있었다. 거꾸로 청력이 떨어진 사람은 더 유심히 듣고, 상대의 입과 표정을 주시한다. 여느 노인처럼 오랜 시간 텔레비전을 보는 P부장의 노모는 아예 소리를 끄고 화면의 자막과 출연자 입을 보고 이야기를 좇아간다.
시각 다음으로 중요한 청각 또한 손상되기 쉽다. 선천적으로 귀가 약한 P부장은 이삼십대에 어학 공부에 열중하느라 이어폰을 남용했다. 잠잘 때나 전철처럼 소음이 큰 곳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가벼운 난청과 이명이 찾아온 뒤에야 귀를 혹사한 사실을 깨달았다. 청력 회복은 불가능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애플 에어팟처럼 패셔너블한 무선 제품까지 나왔지만 귓속에 쏙 들어가는 이어폰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할 때는 귀 전체를 덮는 헤드폰을 낀다.
시각과 청각의 손상은 일상의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사는 의미나 재미를 이들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송승환도 ‘유일한 취미’인 영화 보기가 어려운 것을 몹시 안타까워한다. 작은 노력으로 삶의 질 하락을 늦추는 것이 슬기로운 노후생활이다. 아직 잃지 않은 감각과 기능에 감사하는 것과 함께.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2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