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이기심 아닌 어머니”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돌봄경제- ① ‘보이지 않는 가슴’의 경제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이창곤 goni@hani.co.kr
   
▲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숱한 돌봄노동자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연합뉴스

한 아이가 태어나 일생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젖먹이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어른이 돼도 손길이 요구될 때가 있다는 건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깨닫는 사실이다. 아마 가장 절박한 순간은 늙고 병들어 제힘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이뤄지는 모든 손길이 ‘돌봄’이다.
거동이 힘든 어르신이나 환자를 돌보거나, 아이들 밥을 챙기고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급한 사정이 생긴 이웃의 아이를 잠시 맡아주는 것 등의 돌봄은 한 공동체가 생존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노동’이다. 돌봄은 때로 대가가 치러지지만, 대체로 딸과 며느리 등 여성에게 떠맡겨진 채 그 값어치가 무시됐고,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돌봄, 결코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
여성의 돌봄노동을 두고서 헌신이란 찬사의 수식어를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그 헌신이 그들에게 오히려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에 더해 억압의 굴레로 몰아넣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에는 많은 이가 눈을 감는다. 몇 세기 동안 자기 이익을 추구할 기회를 박탈당했지만, 여성 또한 주체적인 존재로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제는 돌봄을 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노동으로 누군가에겐 삶의 굴레이며 고통이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게 필요한 보편적 서비스다. 특히 노동 관점에서 보면, 돌봄은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노동”이며 “어느 시점에서도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다.
18세기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은 거동을 못하는 늙은 어머니를 병구완하는 딸의 수고, 아이를 위해 기저귀를 갈고 요리하는 엄마의 땀방울, 일을 잠시 쉬고 아이를 돌보는 ‘육아 대디’의 양육 같은 돌봄노동의 값어치를 주목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이른바 ‘비시장 영역’의 노동으로 값을 매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수 경제학자는 근본적으로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자비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초기 경제학의 어록을 되뇌며, 인간의 이기심이야말로 경제성장에 기여하며, 만인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 무급으로 이뤄지는 많은 돌봄노동은 개인들의 일상생활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고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노동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움직이고 자동으로 규제하는 힘, 즉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가 있듯이, 사랑·의무·호혜 같은 가족 가치에 기반을 둬 움직이는 또 다른 힘, 즉 ‘보이지 않는 가슴’의 경제가 있다.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 아내나 어머니”(낸시 폴브레 미국 여성주의 경제학자)인 것이다. 돌봄경제는 또한 “은행 통장의 출입으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개인과 가족이 밥을 짓고, 청소하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노인을 수발하는 행위는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소득과 마찬가지의 역할” (윤자영 충남대 교수)도 한다.
코로나19로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이동 중단 등 인류사 이래 전례 없는 충격이 가해졌지만, 역설적으로 그동안 간과한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새삼 체감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각 가정에서 공적 돌봄 서비스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일깨워줬다.
기실 여성주의 등 돌봄경제학은 주류 경제학과 달리, 일찍이 이런 돌봄노동의 가치에 주목해 무급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천착해왔다. 자녀를 돌보는 부모나 부모를 돌보는 자녀의 행위는 직접적인 시간 지출이며, 다른 일을 할 때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비용이며, 다른 유의미한 활동의 가치이기도 하다는 논지다. 그래서 그 가치를 화폐로 환산해 보여주려 힘썼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 무급 노인 돌봄은 2006년 미국 경제에 약 350조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했다는 연구나, 국내의 통계청이 2018년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국민총생산 대비 20.9~24.3%로 추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돌봄경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도전
이처럼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경제부문을 두고 ‘돌봄경제’라고 한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돌봄경제학이다. 주류 경제학에 도전장을 던지는 대안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학자 중 한 명인 이토 팽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는 2019년 12월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에서 열린 초청 세미나에서 “돌봄경제는 건강 돌봄, 교육, 개인, 사회 및 기타 서비스를 포함하며, 공식 및 비공식 부문에서 수행하는 유급 그리고 무급 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자녀나 부모를 위한 지출, 병간호서비스를 구매하는 등의 유급 돌봄노동, 가족과 친구, 이웃 등의 무급 돌봄노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팽 교수는 한 사회가 돌봄경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①돌봄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핵심으로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젠더·인종·계층불평 등의 원천이다. 특히 ②유급 돌봄 부문은 고용 창출 측면에서 오늘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부문이다. ③직장을 택하거나 학교에 갈 때 여성들이 마주하는 공통된 제약이다. ④무엇보다 더는 돌봄을 가족에게 맡기거나,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고령화 사회 등 갈수록 돌봄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는 흐름에 조응해,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을 추진해온 정부도 2019년 4월 발표한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에서 돌봄경제 개념을 공식적으로 담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적 운영인 이른바 ‘웰페어노믹스’ 관점에서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돌봄경제가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화폐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계속)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2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