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특허 이익 극대화하는 불투명한 제약자본
[ISSUE] 코로나19 백신 경쟁의 그림자
[127호] 2020년 11월 01일 (일) 쥐스탱 들레핀 economyinsight@hani.co.kr

쥐스탱 들레핀 Justin Delépin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0년 6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이 진행된 브라질 상파울루연방대학에서 직원이 서류를 보고 있다. REUTERS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끝이 보이지 않는다. 출구가 없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어떻게든 앞당기려는 시간 싸움이 시작됐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간다.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도 연구를 재개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백신 후보물질이 2020년 9월 중순 원인 불명의 질환을 일으킨 지 불과 며칠 만이다. 투자 계획이 쏟아지고 국제 협약이 줄지어 체결되는 지금, 중요한 물음이 떠오른다. 백신은 누구 돈으로 사고, 누가 맞을 수 있을까?
2020년 5월 사노피 최고경영자 폴 허드슨이 잔잔하던 웅덩이에 돌을 던졌다. 사노피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에 가장 먼저 공급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미국 정부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백신 개발에 투자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말에 세계적인 제약사 사노피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이 분개했다. 행정부 꼭대기까지 말이다.
이 일을 계기로 제약업계와 정부의 권력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필요가 생겼다. 제약사는 각국 정부가 서로 더 많은 돈을 꺼내도록 부추긴다. 백신 개발 경주는 곧 국가 재력 경진대회다. 백신을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클수록 투자금이 높이 쌓인다. 이번에는 더 시간이 없다.

가속페달 밟은 연구개발
보통 새 백신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7~10년 걸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제약사들은 이 기간을 2년 미만으로 단축하려 한다. 기간을 당기려면 백신 개발 절차를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한 단계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 개발 소요 시간을 몇 달이라도 줄인다. 프랑스 제약협회(LEEM) 위원장 클레르 로제는 말했다. “백신 후보물질(잠재적 백신)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진행한다. 일찍 대량생산에 착수해 백신 물량을 미리 확보하고, 생산 역량도 갖춘다. 후보물질 임상시험 결과가 긍정적일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개발 속도를 높일수록 청구서 금액은 늘어난다. 시험 과정에서 안정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발견되면 생산된 후보물질은 모두 휴지통에 버려진다. 문제는 제약사만 수표책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경없는의사회(MSF)에서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을 이끈 가엘 크리코리앙은 “코로나19 개발 투자금은 거의 공공재정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싱크탱크 폴리시큐어스리서치에 따르면, 한 가지 백신을 연구개발하는 데 세계적으로 공공재정 54억달러(약 6조2천억원)가 투입됐다. 그 가운데 26억달러는 미국 정부가 투자했다. 세계 백신시장 규모가 600억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다. 게다가 54억달러가 투자금 전부도 아니다. 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각 정부가 사전 주문한 백신 비용은 이 금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약사와 정부가 맺은 협약은 수십 건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약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 대가로 무엇을 약속했는지 말하기 조심스럽다. 미국이 존슨앤드존슨과 사노피-GSK에 백신을 선구매하는 데 지급한 금액은 각각 10억달러, 12억달러였다. 유럽연합은 아스트라제네카에 7억5천만유로어치 백신을 사전 주문하고, 이 회사의 백신 개발 투자비로 공공재정 수십억유로를 지출했다. 백신 선구매와 개발에 드는 비용을 모두 합치면 미국만 90억달러 가까이 쓴 셈이다.
여기에 지금 같은 보건 위기가 터지지 않았을 때 의약품 개발에 투자하는 돈을 더해야 한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등 공공기구가 주는 지원금과 프랑스에 있는 연구개발 세액공제(CIR)같이 나라 재정을 희생해 마련한 지원금이다.

백신 불평등
여기서 나라 사이의 불평등이 드러난다. 잘사는 나라는 백신값을 미리 지급해 생산라인을 선점한다. 그럴 돈이 가장 많은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나온 백신 후보 여섯 가지를 모두 합쳐 8억 도스(1회 접종량)를 선구매했다. 그 뒤로 영국이 3억4천만 도스, 유럽과 일본이 각각 몇억 도스를 선구매한 상태다.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사는 가난한 나라는 바깥에서 자금처를 찾아야 한다.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추진하는 백신 공동구매 사업 코백스(Covax)가 있다. 감염병혁신연합은 세계보건기구(WHO) 정책 집행기구로 각국 정부와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민간단체 지원을 받는다. 감염병혁신연합은 지금까지 아홉 가지 백신 후보에 모두 9억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백신 20억 도스를 확보하려면 21억달러가 더 필요하다. 저소득 국가에 무료 또는 낮은 비용으로 백신을 공급하려면 이 정도 물량은 있어야 한다. 감염병혁신연합이 여러 제약사에서 몇억 도스를 선구매했지만, 선구매한 백신 대부분은 선진국 차지다. 비정부기구 옥스팸에 따르면, 경쟁에서 1~5위를 차지하는 백신 후보 전체 선주문량의 51%가 몇 나라에 쏠려 있다. 이들 나라 인구를 합해도 세계 인구의 15%밖에 안 된다.

   
▲ 2020년 10월 러시아 트베리의 지방 병원에서 의사가 임상시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스푸트니크 V’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REUTERS

전지전능한 특허?
크리코리앙은 말했다. “팬데믹 위기처럼 엄청난 규모의 공공재정이 투입될 때는 그 돈의 대가로 바라는 것이 커진다. 지식재산에 대한 기대다.” 폴 허드슨이 일으킨 논쟁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이 “세계 공공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신에 “시장 법칙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뜻이야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프랑스 대통령이라 해도 국제 규정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사용 승인을 받은 백신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식재산권협정(TRIPs)에 따라 특허권을 보호받는다. 20년 이상 유효한 국제특허다. 특허품 발명에 쓰인 비용을 충분히 보전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기간이다. 백신 특허를 보유한 제약사는 생산을 독점할 수 있다. 백신을 얼마나 만들어 누구에게 얼마에 팔지 혼자 결정한다.
이런 독점권은 특허상품 개발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주어진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위험 감수와 전혀 상관없다. “특허는 민간 투자자가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장치일 뿐이다. 특허만 생각해서 투자금이 모이는 게 아닌 만큼, 특허제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공공재정이 많이 들어간 때는 더욱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크리코리앙은 지적했다.
특허가 보장하는 권력은 가격정책으로도 드러난다. 제약사는 나라마다 다른 가격에 백신을 팔려고 할 것이다. 미국 등 돈 많은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백신을 확보하려 비싸게 주고 사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사이의 의료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
백신 가격은 누가 제조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제약사마다 가격 책정 전략에 차이가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선두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는 생산 단가로 백신을 팔겠다고 밝혔다. 의약품정책투명성연구소의 제롬 마르탱은 “허울 좋은 말”이라고 평가했다. “연구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얼마의 중간 이윤을 붙였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아 실제 생산 단가가 얼마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시한 백신 가격은 2.5유로(약 3400원) 정도다. 반면 화이자, 머크, 모더나 등 몇몇 미국 제약사는 이윤을 남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더나가 제시한 백신 판매가는 50~60달러(약 6만9천원)다. 두 회사의 가격차가 엄청나다. 백신 접종비를 환급해줘야 하는 의료보험 재정이 흔들릴 수 있을 정도다. 백신 보급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제약사마다 사업모델이 달라 백신 가격에 격차가 생기기도 한다. 모더나는 글로벌 제약사를 제치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순위권에 들었다. 직원이 1천 명 미만이고 생긴 지 10년도 안 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신생 벤처의 운명
프랑스 파리13대학의 경제학자 나탈리 쿠티네는 말했다. “대부분 제약사는 비용이 많이 드는 연구개발을 외주로 돌린다. 대형 제약사 재정으로 스타트업이 크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성장 가치가 확인되면 대형 제약사가 인수·합병한다.”
모더나는 이런 스타트업의 완벽한 사례다. 바이오제약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길은 혁신뿐이다. 혁신 의약품을 완성해 시판하기까지 오로지 투자자가 (손해 보며) 투자하는 돈에 기대어 생존한다. 쿠티네는 “이런 경제모델 때문에 제약 부문에 과잉투자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혁신 의약품을 완성하자마자 큰 리스크(위험)를 감수한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스타트업을 금융시장으로 내몬다.”
제약시장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 식으로 작동했다. 이번 감염병 위기로 그 비뚤어진 이면이 바깥에 좀더 드러난 것뿐이다. 불투명하고 금융화한 제약시장에서 권력은 특허로 보장된다. 연구개발에 든 노력과 무관한 권력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10월호(제405호)
Covid-19: le vaccin peut-il échapper au business?
번역 최혜민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