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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늘린다고 배 안나온다
[석학칼럼]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로버트 스키델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워릭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통화에 대해서도, 무역에 대해서도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났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상대방이 무역상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고의적으로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세계무역에 관한 도하 라운드 협상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통화전쟁과 무역전쟁의 ‘위험’에 관한 말이 무성하게 나도는 가운데 두 가지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따라서 주요 국가 지도자들이 보호주의를 막겠다고 맹세하고 있음에도 1930년대를 휩쓴 끔찍한 보호주의가 재연되려는 상황이다. 당시 무역전쟁은 1930년에 미국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한 것으로 시작됐다. 이에 영국은 1932년 ‘수입관세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보복했고, 이어 영연방 국가들끼리만 관세를 낮추는 ‘제국특혜관세’ 제도를 도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경제는 온통 무역장벽투성이가 됐다.
1930년대의 통화전쟁을 촉발한 첫 총성은 영국 쪽에서 울렸다. 영국이 1931년 9월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1933년 4월 금본위제도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처음에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영국 파운드화가 평가절하되더니, 그다음에는 파운드화에 대해 달러화가 평가절하됐다.
당시 양대 통화가 치고받는 동안에 프랑스가 나서서 양대 통화에 대해 자국 통화가 점점 더 과대평가되는 나라들을 끌어모아 ‘금본위 블록’을 형성했지만, 이 블록은 1936년에 붕괴됐다. 통화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193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경제회의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폐회됐다.
오늘날의 중국을 당시의 영국으로, 오늘날의 유로존을 당시의 금본위 블록으로 대응해놓고 보면 지금의 상황 전개 추세는 그때와 똑같아 불길한 느낌을 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6천억달러 규모의 제2차 통화증발(‘QE2’라고 부르는 제2차 양적 완화)을 통해 미국 경제를 부양하겠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1933년에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와 똑같은 시도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러자 그해 9월 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어 잠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금본위제도 아래서는 금 1온스당 20.67달러라는 고정된 교환비율에 의해 달러화를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물가수준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보상된 달러화’라는 개념에 입각한 계획을 제안했다. 이는 금으로 측정한 달러화 가치를 변동시켜 물가의 상승이나 하락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결국 연준이 경기변동 상황에 따라 달러화 발행 규모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양적 완화는 실패한 통화주의 반복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만난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
피셔의 계획이 디플레이션의 대응책으로 사용된다면 은행이 지급준비금 보유 수준을 낮출 수 있게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은행의 대출이 증가하거나 예금통화가 더 많이 창출될 것이다. 그 결과 늘어난 지출은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는 기업 활동을 자극할 것이라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피셔는 세뇨리지(Seigniorage·화폐주조 차익)와 관련된 오래된 관행, 즉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관행에 새로운 합리화의 근거를 제시한 것이었다.
피셔 계획의 변종인 워런의 제안은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받아들여, 정부가 화폐주조 기관에서 금(금화)을 사들이는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실현됐다. 금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금으로 측정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을 의미하므로 그 결과는 피셔의 계획과 같았다. 그러면 국내 물가가 올라 농민에게 도움이 되고, 달러화의 대외 가치가 하락해 수출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1933년 10월25일부터 루스벨트 대통령과 재무장관인 헨리 모겐소, 재건금융공사의 사장인 제시 존스가 매일 아침 대통령의 침실에서 만나 금 가격을 결정했다. 한번은 그들이 금 가격을 온스당 0.21달러만큼 인상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유는 ‘21’이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미국 안에서 새로 주조되는 금만 사들였지만, 나중에는 해외에서 수입되는 금도 사들였다.
이런 금 매입 정책은 1933년 10월 온스당 20.67달러였던 공식 금값을 1934년 1월(금 매입 정책이 종료된 시점)에 온스당 35달러로 끌어올렸다. 그 사이에 수억달러에 이르는 달러화 통화가 은행들에 주입됐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금을 사들인 조치는 금으로 측정한 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규모로 금을 사들인 3개월 동안에 국내 물가는 오르기는커녕 계속 더 떨어졌다.
양적 완화를 겨냥해 당시 연준이 실시한 더 정통적인 정책 노력도 실망스러운 결과만 낳았다. 존 K. 갤브레이스는 그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차입 희망자 부족, 대출 의지 결여, 유동성 확보 욕구라는 세 가지가 이유가 되어 은행들이 의무준비액을 훨씬 넘는 규모로 지급준비금을 쌓았다. 연방준비제도의 회원은행들이 쌓은 지급준비금이 1932년에는 2억5600만달러, 1933년에는 5억2800만달러, 1934년에는 16억달러, 1936년에는 26억달러에 이르렀다.”
연준의 정책은 이른바 ‘화폐수량설’을 근거로 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화폐수량설은 ‘판매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에 대한 화폐 공급의 상대적인 양에 물가가 의존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러나 은행예금은 화폐에 포함되지만 그 양은 산업계의 신뢰도(자신감 정도)에도 의존한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화폐수량설은 ‘한쪽 방향으로만’ 효과가 있다.

또 다른 히틀러가 나오기 전에
당시에 케인스는 이렇게 썼다. “통화량을 증가시켜 생산과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더 기다란 허리띠를 사서 그것에 맞춰 살찌려는 것과 같다. 오늘날 미국을 보면 배가 나온 정도에 비해 허리띠가 아주 넉넉할 정도로 길다.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요인은 통화량이 아니라 지출량이다.”
지금의 미국은 결함 있는 당시 이론을 근거로 해서 그때 미국이 했던 것과 똑같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이런 미국의 정책에 고의적으로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일본·유럽의 생산자나 기업들을 희생시키면서 미국의 수출을 증가시키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로화는 1930년대 금본위 블록에 속한 나라들의 통화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점점 더 과대평가될 것이다. 유로존은 긴축을 지향하므로 보호주의 외에는 달리 동원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이 없다. 그런가 하면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의 평가절상 속도를 늦추려는 중국의 정책은 미국의 보호주의를 불러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환율이나 미래의 대외 준비제도에 관한 합의를 도출한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는 전혀 진전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1930년대의 재판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또 다른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에 지혜가 회복돼 힘을 발휘하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 Project Syndicate·번역 이주명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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