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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 유지를 위한 사전포석
[FINANCE] 미 연준의 새로운 시도
[126호] 2020년 10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6월30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REUTERS

행동이 아닌 말만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조직이나 사람이 있다. 전제 조건은 ‘신뢰’다. 타인의 신뢰를 얻을 때 말은 엄청난 도구가 된다. 굳이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말을 통해 타인의 인식과 행동을 제어한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게 된다. 중앙은행도 이런 능력이 있다.
이른바 ‘구두 개입’이 대표적이다. 환율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르거나 내리면 개입할 것이라는 ‘말’만 해도 시장은 특정 수준에 다다르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인다. 자기검열에 가깝다. 중앙은행이 자신이 가진 화력을 실제 쓰는 건 드문 일이다. 시장이 자신을 신뢰하는 한 실제 행사할 필요가 없다. 가장 빈번하게 쓰는 무기가 바로 말이다. 말이 곧 정책인 셈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2020년 8월27일 연준의 새 전략을 발표했다. ‘2%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적정 물가상승률을 ‘2% 고정’에서 ‘평균 2%’로 바꿔 유연성을 높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돌았다면 평균 2%에 이를 때까지는 2%를 웃돌더라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2% 이상 ‘상당 기간’에 걸쳐 ‘적당히’ 움직이는 것을 용인한다는 얘기다. ‘상당 기간’이 얼마의 시간인지, ‘적당히’는 또 뭘 말하는지 설명이 없다. 연준이 실제 실행해 옮길지도 미지수다. 다만 연준은 전략을 시장과 사람들이 믿기 원한다. 말에 불과하지만 이미 우리 인식을 바꾸고 있다.

목표 이동의 속내
사실 연준을 포함해 각국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정책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 그러니 놀랄 일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원래 목표는 ‘가격 안정’이었다. 가격 등락에서 안정을 목표로 삼았다. 가격이 안정돼야 ‘돈’ 가치, 즉 구매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목표가 2% 상한으로 바뀌었다. 다음엔 2%가 목표가 됐다. 둘 사이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2% 상한을 두는 건 그 이하로 묶어두겠다는 뜻이다. 2%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유발자’로 입지를 바꾼 것이다.
2020년 현재 우리는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다시 그 목표를 바꾸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연준 평균물가목표제는 유동적 목표제다. 지난 몇 년 2%를 밑돌았다면 앞으로 몇 년은 2%를 넘어야 평균 2%가 된다. 인플레이션 유발이 목표다. 미래 인플레이션으로 2% 이상을 원한다는 것이다.
명분은 있다. 인플레이션 2% 목표제에선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려야 할 상황이 생긴다.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효과를 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보통 6개월 정도다. 경기가 뜨거워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손쓰는 게 효과적이다. 선제 대응을 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이전 미국 상황을 보자. 인플레이션은 목표치를 밑돌았지만 노동시장은 뜨거웠다. 노동시장 과열은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이 상황에서 연준은 낮은 물가 상승에도 금리 인상 압박을 받는다.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보이면 즉시 ‘반인플레이션’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새가 없다.
반인플레이션 정책은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준다. 그러니 물가 상승과 최대 고용을 동시에 이끌어내려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목표치 증가나 평균목표제가 그 답이란 얘기다. 이론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최대 고용을 위해서일까? 고용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야 한다는 얘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오래된 논리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그것을 받아들인 적은 없다. 느닷없이 현시점에서 이 논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다.
실제 목적은 저금리 기조 유지에 있다.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현 상황에 대한 해석은 180도 달라진다. 인플레이션을 화폐 공급의 팽창으로 본다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지수에 기초하면 상승률이 몇 년 동안 2%를 밑돌았다. 물론 연준은 소비자물가지수를 인플레이션으로 본다. 이것은 앞으로 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개입이란 금리 인상을 말한다. 상당 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평균물가목표제는 제로금리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낸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모든 경기 자극책은 인플레이션 유발에 실패했다. 몇 년에 걸친 제로금리에도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위협이 가중되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제로금리를 유지해 주식, 채권, 부동산 시장을 부양해야 한다. 연방정부 재정 적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물가가 오르면 부채의 상대적 크기는 줄어든다. 신용에 의존하는 경제주체에게 디플레이션은 최악이다. 현재 미국 가계와 기업 부채는 각각 16조달러(약 1경9천조원)를 넘었다. 정부부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인플레이션만이 부채의 상대적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제로금리와 합해진 인플레이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 2020년 9월 코로나19 사태로 빈 사무실이 급증한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 인부들이 77층 규모 신축 오피스빌딩의 입구 마감공사를 하고 있다. REUTERS

인플레이션의 대가
물가 압력이 강해질 때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 있을까.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같은 상황이라면 불가능하다. 그러면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은 어떤 선택을 할까. 목표를 다시 바꿀 가능성이 크다. 평균 인플레이션을 높일 것이다. 3% 이상 인플레이션도 용인할 거라는 발언이 뒤따를 수 있다. 제로금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대부분 사람은 중앙은행 기능을 잘 알지 못한다. 관심도 별로 없다. 자세히 설명하지도,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닌 돈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대중의 관심 밖에 있다. 대중은 인플레이션이 지급해야만 하는 청구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뛰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플레이션은 공짜가 아니다. 화폐가치 하락을 뜻한다. 구매력 감소가 불가피하다.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1천원이던 상품이 내일 2천원으로 오른다면 앉아서 1천원을 손해 보는 것이다. 유동성 공급이 원인인 인플레이션은 저축과 임금의 구매력 감소를 불러와 실물경제에 피해를 준다. 총수요가 감소하는 원인이 된다.
건강한 성장은 돈이 아닌 노동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동 수요가 늘어 실질임금이 올라가고 구매력이 상승하면 수요가 늘어난다. 수요 증가로 생산자는 가격을 올린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다. 건강한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현재 중앙은행은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꿈꾼다.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화폐에 의한 가격 상승을 도모한다. ‘부의 효과’에 의한 수요 증가를 주장하지만 지극히 한정적이다. 한계소비 성향이 낮은 상위 소득자의 전유물이기에 경제에 주는 충격이 거의 없다. 앞뒤가 바뀐 정책은 혼란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중앙은행이 이를 모를까? 알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행동한다. 경제를 살린다는 정책이 건강한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얼핏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금융위기 이후 노골화한 이런 정책으로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유동성 공급에 의한 자산시장 부양과 명목성장률 상승은 한계가 있다. 붐은 터지기 마련이다. 이는 다시 실물경제를 파괴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값이 오른다는 얘기는 자산을 소유한 사람에겐 이득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손해가 된다. 제로섬게임처럼 누군가의 이득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용인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갈등을 낳고 혼란을 부른다.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의지는 점차 엷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때마다 시장은 연준의 말(구두 개입)을 요구할 것이다. 응답은 불가피하고 잦은 목표 변화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어느 순간 중앙은행의 말은 도구로서 기능을 잃을 수 있다.
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가 중앙은행 통화정책사에서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제까지 중앙은행은 반인플레이션 기관이었다. 이제 친인플레이션 기관으로 거듭나려 한다. 파월의 말마따나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인 행위다. 정확히는 상식에 반하는 도전이다. 중앙은행의 이런 변신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수단이기를 빈다. 파국으로 치닫는 지름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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