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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정혁준의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126호] 2020년 10월 01일 (목) 정혁준 june@hani.co.kr
   
▲ 한 시민이 서울 시내 대형서점에서 어린이 자기계발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 유행이다.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 일상에서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과 취업한 뒤에도 꼰대 문화로 힘들어하는 청년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반작용인 셈이다.
최근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학교·회사·친구·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순간순간 느끼는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는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한두 권이 올라와 있다.
심리학부터 경영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계발서가 나온다.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자기계발서는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영학에서 시작한 자기계발서는 투자와 성공으로 성취감을 높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책은 여러 분야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은 대부분 현재 삶에 불만이 있고, 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바란다는 점이다. 핵심은 ‘어떻게 행복해지느냐’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는 이를 충족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2300년 전에 나온 자기계발서
2300년 전에 이런 자기계발서가 나왔다.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가 강의한 내용을, 그의 아들이 노트에 정리했다. 그 철학자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철학자 아들의 이름은 니코마코스, 책 이름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이 책은 행복과 치유를 얘기한 인류 최초 자기계발서로 불린다. 고전이어서 읽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100권을 읽기보다 이 한 권을 읽으면, 현재 나온 모든 자기계발서를 읽은 것 같은 고갱이를 찾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은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고 물으며 ‘What’에 천착했다. 철학자가 아니고선 와닿지 않는 고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물으며 ‘How’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현실적인 방법론을 보여준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처럼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사람은 목적을 위해 노력하면 결국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운동하는 건 건강을 위해서고, 건강해지고 싶은 건 행복하기 위해서다. 너무 당연하다고 느낀다면 바꿔 생각해보자. ‘행복을 느끼기 위해 건강해지고 싶다’는 얘기가 된다. ‘건강하기 위해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이상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유형으로 사람을 분류했다. 첫째는 ‘향락적 삶’이다. 식욕이나 성욕처럼 본능과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저속한 삶이 행복과 쾌락을 동일시하는 유형이라며, 이는 짐승에게나 어울린다고 깎아내렸다. 둘째는 ‘정치가의 삶’이다. 명예와 명성을 쌓는 데 집중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 유형은 현대인에게도 와닿는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존하고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만 들어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살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셋째는 ‘관조하는 삶’이다. 관조는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침착하게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정치가의 삶이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는 피동적인 삶이라면, 관조하는 삶은 능동적인 삶이다. “어떤 삶이 행복한가?”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행복을 위한 실천적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관조하며 살아가야 하나? 관념론자인 스승 플라톤과 달리 현실론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중용’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방법론이다.
중용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친절’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보자. 부모가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를 방치한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다면 아이를 통제하려 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부모와 아이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회사원을 생각해보자.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너무 친절하다면 아부를 떠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힌다. 그런 극단에 있는 사람에게 회사는 행복한 공간이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극단에서 중용을 실천하면 인간은 탁월성(Arete), 즉 미덕(Virtue)을 얻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겁과 무모함 사이에 ‘용기’가, 인색과 낭비 사이에 ‘너그러움’이, 나태와 탐욕 사이에 ‘미래를 향한 준비’가, 비열과 자만 사이에 ‘겸손’이, 적대와 아첨 사이에 ‘우정’이, 우유부단과 광기 사이에 ‘극기’가 있다.”
‘쾌락에 빠지지 마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세워라. 한꺼번에 하지 말고 계속 실천하라. 극단에 치우치지 마라.’ 자기계발서에 들어간 이런 내용이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안 노트 안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길을 걸으며 행복하기 위해선 필요조건이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가 물질적인 재산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인정하는 건 의외다. 하지만 그는 “가난은 인색과 탐욕의 근원이다. 어느 정도 재산은 탐욕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이와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 수단이 될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걸 강조했다. ‘돈은 행복을 얘기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라는 얘기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삶의 목표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허하다. 좀더 문학적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은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를 보라.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 돈은 수단일 뿐이다. 번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인간과 닮았다.

* 몇 해 전 나온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서 중고생 18%가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돈을 향한 비뚤어진 가치관은 ‘물신주의’를 향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매일 돈과 관련한 정보가 쏟아지지만, 정작 돈과 우리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지 않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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