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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강신준 "시장과 국가에 속지 말라"
[신년 대담]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한광덕 kdhan@hani.co.kr

한광덕 총괄편집장 kdhan@hani.co.kr

단어의 사용 빈도를 알려주는 구글의 최신 서비스(Books Ngram Viewer)를 이용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입력해 나타나는 그래프를 보면 마르크스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뜻밖에도 마르크스의 서적 인용 빈도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올드맨’에 대한 향수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자본론>을 완역한 두 사람이 마주했다. ‘영어본’을 번역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최근 ‘독어본’을 완역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2010년 12월12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4시간 동안 <자본론>과 세계경제, 그리고 한국 사회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원전 번역의 엄밀성과 가독성을 놓고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이 시대에 왜 <자본론>이 더욱 절실한지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에서 <자본론>을 완역한 ‘유이’한 두 사람. 김수행 교수(오른쪽)와 강신준 교수. 윤운식

-<자본론>과 함께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인 리영희 선생이 바로 일주일 전(12월5일) 타계했다.
김수행 교수(이하 김) 1993년 경기도 산본으로 이사를 갔는데 같은 아파트단지로 리영희 선생이 이사왔다.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저녁을 같이 했는데 진실에 대한 열렬한 추구욕, 그 진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투사적인 기운이 감지됐다. 우리 시대가 본받아야 할 참인물인데 애석하다.
강신준 교수(이하 강) 대학 때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촌놈이 우연히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후배들과 이 책을 가지고 토론하면서 완전히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리 선생의 부음을 접하면서 정말 한 시대가 갔다는 생각을 했다. 리 선생이 이뤄놓은 걸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먼저 궁금한 게 <Das Kapital>을 <자본론>과 <자본>으로 달리 이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자본론’이라고 일반적으로 쭉 알려진 책이라 그냥 <자본론>으로 했다.
일본 학자들을 만나보니 마르크스에 관해서는 독일을 제외하고 자기들이 두 번째 지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원본을 번역해서 아시아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본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번에 독일어본을 직접 번역한 김에 우리의 독자적인 판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선 일반인에게 익숙한 <자본론>으로 통일하겠다. <자본론>을 처음 접한 것은 언제, 어떤 계기였나?
61학번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배우는 게 모두 주류 경제학이더라. 난 대구상고를 나왔고 어렵게 자랐다. 그런데 빈곤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더라. 좀 화가 났다. 그래서 일본 책을 보게 됐다. 당시만 해도 일본엔 좌파가 많아 마르크스 인용이 많이 나와서 <자본론>이 있다는 걸 알았다.
군 제대 뒤 1977년에 복학했는데, <전환시대의 논리>와 <자본론>이 화제더라. 그래서 대학 도서관에 <자본론>을 신청했는데 당연히 안 나왔다. 서울 시내의 온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아무데도 없다가 어쩌다 실수로 성균관대에서 그 책이 나왔다. 껍질(표지)은 겁이 나 복사를 못하고 다른 책의 커버로 씌워서 도서관 구석에서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이른바 ‘빵잡이’들이 번역한 원고를 강 교수가 감수해 <자본> 1권이 1987년에 출간됐다. 그때 검사가 출판사 사장을 기소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에게 자문하려 했다는데, 유력한 자문 후보군의 한 명인 김 교수에게 자문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1988년 구속적부심사를 앞두고 출판사 편집국장이 찾아와 좀 괜찮은 책이라고 써달라 했다. ‘사회과학에서는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고 중요한 거다’라고 썼지. 그런데 그날 담당 판사가 강금실씨였다. 강씨가 구속 못한다고 풀어줘버렸다고 들었다.
아, 그랬나? 둘 다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감사하다.
-김 교수는 1984년부터 <자본론>을 번역하고 싶었는데 1987년 <자본> 1권 발간이 파문을 빚자 작업을 미루고 사태가 가라앉은 뒤 89년에 <자본론> 1·2권을 출간했으니, 결국 강 교수가 감수한 책의 저자인 가명 ‘김영민’에게 빚진 것 아닌가?
그 전부터 <자본론>을 쭉 읽고 꾸준히 번역하고 있었다. 물론 ‘김영민 사건’의 구속이 기각된 것도 자신감을 키워준 건 사실이다. (웃음)
-강 교수는 김 교수의 <자본론>이 독일어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강 교수가 번역한 메프(MEW)판도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정리한 편집본이라 원전에 불충실하고, 옛 소련과 동독의 학자들이 주를 달아 발간한 전집이어서 정치적 왜곡(스탈린주의적 편향)이 있다는 비판이 있다.
맞다. 다만, 오해가 있다. 김 선배 번역이 원전에 충실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문헌적으로 이게 좀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출처가 분명해야 한다. 번역한 텍스트가 한 개여야, 문제가 생기면 독자가 원본을 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메프 번역판에 일일이 원본 페이지를 달아놨다. 그런데 김 선배 번역책은 여러 개를 합친 것이다. 내가 번역한 메프판 말고 메가(MEGA)판이란 게 있다. 메가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한 개도 빠짐없이 출판한 것이다. 그런데 메가는 주가 거의 없다. 어려운 내용이 많아 역주를 달아줘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하다.
나도 독일어본을 번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썼으니 그대로 번역해줘야 원래 뜻이 살아난다. 영어로는 해당하는 단어가 없는 게 많다. 다만, 난 영어를 번역할 때 진짜로 무엇을 의미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이해가 잘 안 되면 복수의 영어판과 다른 언어판을 다 보면서 마르크스의 생각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강 교수가 잘 집어냈다. 번역에 여러 가지 판본이 들어 있다.
-강 교수는 화폐단위를 한국식으로 옮겨놓은 걸 문제 삼고 김 교수는 이걸 잘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번역에서 ‘문헌적 엄밀성’과 ‘독자의 가독성’이라는 두 부분이 충돌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화폐단위 문제는, 마르크스가 파운드·실링·펜스 이런 단위를 많이 썼다. 10파운드 11실링 5펜스, 6파운드 7실링 10펜스 이렇게 써놓으면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십진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걸 한국 단위 ‘원’으로 고치느라 많이 고생했다. 원은 십진법이라 크기가 다 보인다. 부피는 더하다. 생산량이 쿼터로 나오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거기다 하프 쿼터, 스리 쿼터스… 전부 ‘가마’로 고쳤다. 이걸 강 교수는 원문 번역 태도가 아니라고 하니 좀 서운하다. 이제 메가판 원자료도 나왔으니 강 교수가 4판의 중요한 항목에 ‘1판에는 이랬는데 2판에서는 이렇게 변했다’는 식으로 주를 달아놓으면 좋았겠다.
맞다. 그런데 정말 이상형으로 말씀하셨다.
<자본론> 2·3권은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엥겔스가 편집할 때 많이 누락했다. 메가판에는 실제 마르크스가 남긴 글 그대로 나오니, 이 구절은 엥겔스가 이런 식으로 바꿨다는 점을 명시하면 훨씬 좋겠다. 그 작업은 후배에게 넘기지 말고 강 교수 대에서 해줄 것을 바란다.
채찍으로 삼겠다.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쫓겨나 프랑스에서 있을 때 상당 기간 영어를 몰랐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프랑스어로 번역된 걸 읽었다. <자본론> 안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 <국부론>이다. 마르크스가 영어본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잘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영어판에 있는 걸 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메프에도 영어가 다 나와 있다. 독일어 바로 밑에 영어 원문을 넣었다.
-<자본론>의 해설서도 어려운데, <자본론>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1980년대에도 그랬듯,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인가?
   
 
독자들과 만나보면 대부분 원전의 100쪽 이상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남겨놓은 많은 대안들이 하나의 큰 산이라고 생각하면 이 산 안에 있는 보잘것없는 풀 한 포기, 조그마한 돌 하나도 그 산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산을 보고 해설해놓은 것은 그 산이 아니다. 지리산에 있는 돌은 지리산의 돌이지, 남산에 있는 돌과는 다르다.
-<자본론>이 어렵지 않고 현실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좋겠다. 최근의 환율전쟁, 양적 완화를 시사하는 단서는 없나? ‘환율과 세계화폐’ 부분에서 국제수지와 이자율에 관한 대목이 있던데.
마르크스가 6권의 책을 쓰려 했는데, 그중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에 관한 글은 못 썼다. 그래서 <자본론>만으로 현재 일어나는 일을 다 설명하려는 건 무리다. 그것은 우리 과제다.
-<자본론>은 주식제도에 대해 ‘자본주의적 사적 산업의 지양이며, 그것이 확대돼 새로운 생산영역을 장악할 정도가 되면 사적 산업을 아예 절멸해버린다’고 했는데, 엥겔스가 쓴 건가?
맞다. 마르크스 때는 주식제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주식을 발행해 돈을 모은 주식회사가 사적 기업이 아닌 사회적 기업이 된다는 얘기다. 즉, 모든 사람이 주주가 되면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다는 뜻이다.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
나중에는 개별 자본가가 주식회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독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주식시장 구조를 민주화하면 좋은 방향으로 갈 소지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이 독점력을 행사해 자의적으로 움직인다.
-‘신용은 소수자에게 도박꾼의 성격을 점점 더 부여한다. 주식매매에서는 작은 물고기가 상어에게 먹히고 양이 이리에게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 대목은 지금의 증시를 놀랍도록 예측했다.
‘개미들아 조심해라, 들어가면 먹힌다’는 경고다. (웃음)
-케인스경제학은 1970년대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때 실천적 처방을 보여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으로, 1980년대부터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에 주류 자리를 넘겨줬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신고전학파와 케인스주의를 마르크스경제학 관점에서 규정하면 이들과의 차별성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데.
신고전학파와 케인스주의는 분석하는 입각점이 개인에서 출발한다. 반면 마르크스경제학은 분석 단위가 개인이 아닌 사회다. 신고전학파는 개인이 경제인·합리적 인간이어서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내므로 그냥 놔두면 자본주의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케인스경제학은 그렇게 하면 시장 실패가 나온다고 보고 정부가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가-노동자의 대립과 공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부가 개입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혜택 중 인간의 노동이 들어가지 않고 만들어진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노동자들이 부로부터 자꾸만 소외된다. 노동의 빈곤이다. 신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는 노동의 빈곤에 대해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맨큐 경제학> 맨 앞에 ‘빈곤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정책가의 일이지 경제이론가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나온다. 자본주의 경제가 이전의 체제와 구분되는 건 교환이다. 교환이 확대되면서 봉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자본주의가 만들어졌다. <자본론> 1권이 상품으로 시작되는 이유다. 교환은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반드시 두 사람이 하는 사회적 경제구조다. 그런데 주류 경제학의 경제모델은 ‘로빈슨 크루소 모델’이다. 개인만을 상정한 경제학이니까 당연히 사회적 경제구조를 분석할 수 없다.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로 마르크스의 ‘공황론’이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 공황의 출발점이 ‘신용의 과잉’과 ‘이윤율 저하’로 보고, 강 교수는 ‘과잉생산’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알고 있다. 케인스도 생산된 재화를 모두 구매할 수 있을 만큼 투자와 소비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은 게 공황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니 비슷한 ‘과’ 아닌가?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첫 페이지는 ‘시장’이다. 그런데 물건은 시장에 나오기 전에 이미 생산된다. 상품 가격은  생산될 때 이미 결정되는데, 그게 바로 ‘가치’다. 이 부분을 부르주아 경제학은 안 다룬다. 그게 노동착취를 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라 신고전파가 닫아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주류 경제학에서 ‘가치론’이 없어져버렸다. 공황의 발발은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구조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이 휴대전화를 1천만 대 만들면 이 회장 혼자 쓰는 게 아니라 1천만 명이 소비한다. 그런데 생산은 이 회장 한 사람이 결정한다. 생산은 개인적으로 이뤄지는데 소비는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개인이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살지 안 살지 그 속마음을 읽어 사회적 소비량을 딱 맞힐 수 있겠는가? 이런 모순이 공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공황에 대한 생각을 한곳에 정리해놓은 건 아니다. <자본론> 상권 3편에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 나온다. 자본가는 이윤을 얻으려 생산하지만 수요를 예상할 수 없어 결국 안 팔린다는 문제에 금방 부딪힌다. 또 이윤만 얻으려고 임금을 줄이면 구매력이 줄어드는 모순에 직면한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공황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각 시기에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경제위기 자체도 실업을 확산시켜 임금을 떨어뜨리고 일부 기업을 퇴출시키는데, 결국 살아남은 기업들의 이윤율은 올라가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므로 순환의 측면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닌가?
<자본론>에도 그렇게 써놨다니까. 공황이라는 것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누적된 모순의 폭발이다. 공황을 통해 이 모순들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면서 회복을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자동적으로 붕괴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말이 안 된다.
공황이라는 모순 안에 자본주의 이후의 생산체제로 넘어가는 단서가 있다. 생산은 사적으로 하는데 소비가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두 성격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공황으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걸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생산의 의사결정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케인스가 1929년 공황을 어느 정도 완화한 건 틀림없는데, 그가 한 일이 바로 국가가 직접 개입해 생산에 사회적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려 한 사람이니 생산에 대한 사적 소유를 완전히 철폐하진 않았다.
-대안이 ‘생산의 사회화’밖에 없다면 버냉키나 오바마도 ‘자본주의 타도 투쟁’을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공황이 발발해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투쟁하고 있다. 오바마가 노동자의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소비 수요를 늘리는 건 ‘소비의 사회화’다. ‘미국 대통령들의 무덤’이라고 불린 의료보험 개혁도 소비의 사회화다. 자본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케인스주의적으로 하면 자본주의가 계속 가는 것이지.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독일에서 마르크스는 귀환했지만, 한국에서는 케인스가 귀환하고 <자본론>이 부활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특히 주류학자로 분류되는 장하준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에 이어 최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란 책으로 대중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자본론>에 대한 편견이 안 지워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르크스 연구자가 줄어들고 있다. 원래 연구하던 분들은 대부분 포스트케인시언 쪽으로 많이 빠지고 후속 세대도 안 들어온다. 그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해서는 취직하기 힘들다. 진보 진영 어디에도 마르크스 연구자를 먹여살릴 수 있는 재원이 없다. 이렇게 이론과 실천 영역 모두에서 마르크스 얘기가 없는데, 어떻게 사회적으로 회자되겠는가? 우리 사회는 적어도 마르크스와 관련된 문명화로 보면 아직도 ‘야만의 시대’다.
케인스경제학도 힘이 없다. 신고전학파가 쭉 지배해왔다. 조순 선생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케인스경제학을 했지만, 지금 신고전학파에 완전히 밀려났다. 케인스도 못 들어본 학생들에게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는 참신하게 들릴 것이다. 장 교수가 참 잘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이 나쁘다는 걸 자꾸 이야기해주고 그다음에 사람들이 케인스도 안 되겠다 싶으면 마르크스로 넘어올 것 아닌가. (웃음)
-<자본론>이 가진 실천적 대안은 무엇인가?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이나 사민주의를 대안으로 볼 수 있는가? 최근 한국의 복지 논쟁이나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생각은.
영국은 1948년 의료 무상화가 됐는데, 이때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달러 정도 됐을까? 그때 노동자들의 힘이 굉장히 셌다. 처칠 총리는 거국 내각을 만들어 노동당 출신 장관을 많이 뽑았다. 노동자가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겠다고 해서 나온 게 1942년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 보고서다. 이게 모든 복지의 근본이다. 그런데 1945년 총선에서 처칠의 보수당이 노동당에 패했다. 노동당 집권으로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을 이뤘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이 돈이 저소득층으로 가서 구매력과 시장을 키웠다. 완전고용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지원해서 의사·간호사·교사·교수 일자리를 많이 늘렸다. 복지가 실업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우리도 그런 단계가 왔다. 실업 문제는 민간에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4대강 같은 것 말고 복지시설을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국내 시장이 커지고 경제가 단단해진다.
복지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의 상당 부분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복지 영역이 확대될수록 생산의 사회화에 접근하는 사회가 된다. 따라서 복지는 당연히 보편적이어야 한다. 무상급식과 기본소득제도는 사회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확대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모델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업적인 노조나 노동자 정당이 사회적 의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관철해나가는 데서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 탄생했다.
-야당과 진보 진영에서 민주 대연합과 진보 대연합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반MB와 반신자유주의 전선, 정파적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한 생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점도 있을 것이다. 두 당이 왜 갈라졌는지 국민은 모른다. 조직의 정체성을 볼 수 있는 것은 강령이고, 대중과 접촉할 때마다 강령이 알려져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냥 몇몇 지도부가 앉아 연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강령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노회찬·심상정이라는 스타들의 입을 통한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진보신당이라는 정파가 어떤 강령을 가지고 그 목표를 위해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타협하고 헤어질 것인지 분명히 선언했어야 한다.
-최근 현안에 대해 얘기해보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다 ‘이마트 피자’ ‘롯데 치킨’이 논란인데.
한-미 FTA는 공황이 터지기 전에 이뤄진 거라 금융에 관한 합의에 문제가 많다. 미국도 금융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FTA 안에는 규제가 하나도 없다. 미국이 규제 없는 한국에 와서 다 해버리면 큰 문제가 생긴다. 외국 투자자가 한국을 제소하면 주권이 이미 FTA로 넘어간 상황이라 우리가 막을 수 없다. 정부가 실업 대책을 위해 돈을 풀면 미국 기업이 그 때문에 판매를 못했다는 식으로 제소하면 우리가 걸린다. 사회보장제도에 큰 제약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논란 때도 우리 정부는 한-유럽연합 FTA 때문에 건드릴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사회화의 중요한 메커니즘을 아예 외국으로 팔아넘기는 것과 다름없다. 이마트 피자니 하는 것도 결국 사적 이익을 앞세워 자기 맘대로 하는 것으로 사회화에 역행된다.
신자유주의를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국가가 많이 개입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에서 보듯, 이윤 추구를 위해 빈곤층을 신용시장으로 잡아넣어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자본의 사슬에 묶인 빈곤층에 자유가 없다.
-수출이 늘고 성장이 회복돼도 기업과 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가계 내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주가가 오르면 노동소득보다 자산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원인 아닌가?
양극화 사회에서 일반 대중은 자산이 극히 적고 분산돼 있다. 이걸 집중시키는 풀을 만들어내는 교두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은 기관은 의료보험·고용보험 같은 연기금이다. 모두 노동자 봉급에서 떼는 거니 노동자들이 관리해야 맞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로 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SSM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소 슈퍼마켓이 연합해 기금을 만들어 이마트와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생계가 걸린 ‘보병’이 훨씬 많으니 이마트 직원보다 필사적으로 싸울 거다. 문제는 지휘자가 없다. 지난번 쌍용차 파업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 노사가 함께 내는 2%짜리 연금을 만들어 절반의 운영권을 쥔다면 1년에 수십조원이 되는데, 이 돈으로 쌍용차를 사들여 이상적인 회사로 키울 수 있다.
그것은 시장도 국가도 아닌 새로운 길이다. 방향은 맞은데 정부가 그렇게 하도록 놔둘까?
선거에서 이기면….
-요즘 ‘G2’라는 말이 상징하듯, 중국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보학계에선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부활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중국적 특색이 있는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했다.
중국은 위험한 자본주의다. 실업자가 많고 노동자 임금이 낮아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G2가 위험하니 세계가 불안정하다. 미국은 아시아, 특히 한국에 많은 지배력을 갖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북한이 몇 년 안으로 망한다느니, 그래서 통일이 될 수 있다느니, 이런 망상을 가지고 있다. 북한과는 아무런 대화도 안 하겠다고 내쳐서 지금 싸움이 벌어진 것 아닌가. 미국은 한국을 방위우산에 넣어주는 대신 많은 무기를 팔아먹을 것인데, 참으로 한반도가 우려스럽다.
하비가 중국을 신자유주의라고 한 건 미국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 구조가 국제적으로 이동된 것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장시간 토론 감사하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골격과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자본주의란 사회형태가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사회를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책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때 문제의식은 두 가지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혁명이 왜 실패했는가다. 이 문제의식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 1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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