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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균열 내는 중국 ‘디지털 위안’
[FINANCE] 다시 떠오른 ‘달러 종말론’
[125호] 2020년 09월 01일 (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 캐피톨힐 거리의 벽에 달러 표시와 함께 ‘비상상황’이란 말이 적혀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의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REUTERS

달러 종말론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새롭지는 않다. 달러 약세 국면이 완연해지면 불거지곤 한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달러 붕괴로 가장 이득을 보는 금과 같은 귀금속 투자자는 물론 <블룸버그통신> 등 유력 언론에서도 달러 종말을 얘기한다. 그럴 만도 하다. 미국 달러는 2020년 5월 말부터 급락세를 보였다. 코로나19 공포가 한창이던 3월 고점과 비교해, 7월 말엔 달러 가치가 거의 10% 하락했다. 급락세는 붕괴론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를 그저 그런 주장이라고 흘려버려도 될까.
특정국 통화가치는 두 변수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의 건강 정도와 국력에 대한 다른 나라의 인식이다. 경제가 건강하고 강한 나라란 인식이 지배적이면 해당국 통화는 강세를 보인다. 반대라면 약세는 불가피하다. 허약한 국가의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일은 없다.
현재 미국 경제를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 재정 적자는 통제 불능이라고 해도 좋다. 연방정부 부채는 25조6천억달러(약 3경원)에 이르고 매년 3조4천억달러씩 늘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에도 무역 적자는 6천억달러에 이른다. 이른바 쌍둥이 적자가 심각하다. 미국 행정부 지출은 코로나19 위기로 폭증했다. 재정 확대와 적자는 적어도 11월 대통령선거 직전까진 계속될 전망이다. 2022년이 되면 연방정부 부채가 30조달러에 이른다. 이것이 지속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미국 국력도 예전 같지 않다. 힘이란 비교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20세기 미국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옛소련이 와해되면서 비교 대상이 사라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중국이 등장했다. 중국이 강해질수록 미국 힘은 약화한다. 새 패권국 등장은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균열을 뜻한다. 패권을 꿈꾸는 이른바 ‘중국몽’은 달러 붕괴의 강력한 근거다. 미국 경제의 건강성과 국력에 금이 가고 있다. 통화가치를 결정하는 두 변수 모두 부정적이다. 붕괴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안의 디지털화
미국 달러의 지배적 지위를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실질적 변수는 중국의 디지털 통화다. 달러의 디지털화는 주춤한 상태다. 그 자체가 달러 패권에 흠집을 낼 수 있어서다. 반면 중국 위안의 디지털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 결제는 중국에서 낯설지 않다. 디지털 결제 시스템은 이미 일반화됐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린다. 디지털 위안에 거부감이 적다는 얘기다.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에선 인민은행이 위안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밀어붙이는 데 장애물이 거의 없다.
대체 왜 <포브스> <가디언> <블룸버그> 등 유력 언론은 중국의 새 디지털 통화가 미국 달러 패권에 흠집을 낼 수 있다고 말할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디지털 위안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과 달러의 힘을 빠르게 약화할 수 있다. 디지털 위안이 일반화하면 이란 등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의 미국 금수 조치 무력화가 쉬워진다.
미국 제재의 힘은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나온다. 달러 결제 시스템을 우회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은 미국 힘이 미치지 않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 구축을 뜻한다. 달러 국제 결제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도 돈을 보내고 받는 게 가능해진다. 그것도 며칠 걸리지 않고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
아프리카 등 신흥국은 과다한 달러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달러 부채 고민은 달러를 이용하지 않고는 수출입 결제가 불가능한 현 시스템 때문에 생긴다. 만약 다른 통화로 결제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면 이들 국가는 기꺼이 그 통화로 옮겨갈 것이다. 이때 디지털 위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단기 통화 교환이 가능한 스와프 라인을 미국과 맺은 나라는 손꼽힌다. 아프리카와 신흥국 대부분은 위기 때 달러를 공급받을 수 없다. 방법은 달러 부채를 얻는 길뿐인데 쉽지 않다. 달러 부채를 얻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위협과 통화가치 급락 위기에 놓인다. 허약한 신흥국의 현실이다.
이때 다른 나라와 상호 작동하는 디지털 통화 체제는 통화 위기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특히 신흥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이 그렇다. 아프리카의 엠페사(M-PESA)나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결제 시스템이 일반화한 나라에선 자국 통화가치 급락으로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을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다.
법정통화(법화)가 보장하는 디지털 화폐가 성공한다면 국제 표준이 될 수 있다. 국제 표준이 된다는 건 그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한다는 뜻이다. 법화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려는 나라에 일종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은 자연스레 위안의 국제화, 기축통화화로 연결된다. 미국의 힘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었고, 달러는 다시 미국의 힘을 증강했다. 디지털 위안의 등장은 달러 약화를 통해 결국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약화하고, 다시 달러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 부상에도 달러는 위안에 대해 강세를 유지한다. 위안 환율이 2018년 달러당 6.4위안에서 2020년 8월 초 약 7위안으로 올랐다.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시장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다.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통제가 낳은 결과물이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위안 절상을 원하지 않는다. 위안 가치가 오르면 다른 나라와의 수출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의 전략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단순히 달러 대비 위안 환율이나 국제결제 사용액만 보고 달러 패권의 건재를 주장하는 건 무리다.

   
▲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신임 최고경영자 버나드 루니가 2020년 2월 런던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위안으로 BP의 원유를 사들였다. REUTERS

중국 금융의 힘
중국은 최근 영국의 석유 메이저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에서 원유를 수입하며 위안으로 거래했다.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해야 한다는 불문율은 이미 깨졌다. 20세기 달러 패권의 절대 수호자 구실을 했던 달러와 오일의 연계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국제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에 따르면, 국제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달러 40% 이상, 중국 위안 1.76% 정도로 달러 위상이 여전히 절대적이다. 2020년 1분기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달러가 62%로 압도적이고 위안은 2%에 불과하다.
하지만 위안의 약진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각국 중앙은행이 기축통화에 편입한 위안액은 2215억달러(약 262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변화 속도는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다.
최근 중국 기업의 자국 증시 상장이 늘고 있다. 중국 반도체의 희망으로 불리는 SMIC는 7월16일 상하이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홍콩 증시에 이은 2차 상장이다. 알리바바그룹 모바일결제 회사이자 세계 최대 핀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앤트파이낸셜도 상하이와 홍콩 동시 상장을 앞두고 있다. 기업가치가 2019년 말 기준 2천억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기업이다.
중국 기업의 역내 상장이 늘어나는 것은 미-중 갈등 격화에 따른 미국의 중국 기업 제재가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대형 기업의 중국 상장은 그만큼 중국 힘이 커졌다는 방증이자 중국 금융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달러 벗어나기’ 과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급부상하는 중국 기업
2020년 8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중국은 미국을 추월했다. 매출 기준 글로벌500 명단에 중국·홍콩 기업이 124개 포함돼 미국(121개)을 처음 넘어섰다. 이 명단이 처음 발표된 1990년에는 중국 기업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부상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이 추세는 더 견고해질 수 있다. 글로벌 중국 기업의 자금 수요를 중국 금융시장이 소화해낸다는 점이 핵심이다. 달러 힘이 중국에서 그만큼 약해진다는 얘기도 된다.
8월7일 현재, 주요 6개국 통화와 비교한 달러의 평균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3 수준이다. 급락세라고 하지만, 2003년부터 2015년 초까지 달러 약세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2008년과 2011년 4월엔 70대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대부분 기간에 달러는 현재 수준 이하에서 거래됐다. 달러인덱스만으로 달러 패권 붕괴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달러 패권에 균열이 일어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통화 패권의 역사를 보면 명확한 점이 발견된다. 국력 쇠퇴는 통화 패권 상실로 이어졌다. 자국 우선주의는 미국 리더십을 스스로 약화한다. 소통이 줄어든 통화팽창은 달러에 대한 의심을 키운다. 무엇보다 중국 부상이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든 중국을 제압하려 하지만 중국은 빈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댐 붕괴는 균열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우린 21세기 중반이 되기 전에 통화 패권의 다각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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