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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하는 이유
[정혁준의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125호] 2020년 09월 01일 (화) 정혁준 june@hani.co.kr
   
▲ 픽사베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곳곳에서 자주 보인다. 주위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는 ‘아재’가 은근히 많다. 일과 사람에 치이다보면 훌쩍 떠나 자연에 묻혀 살고 싶을 때가 많은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고, 이 프로그램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자연으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진정한 자유를 꿈꾼 시인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소로는 1845년 7월4일 마을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성조기를 흔들며 축제를 벌이던 미국 독립기념일에 손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숲속으로 훌쩍 떠났다.
소로가 자리잡은 곳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2.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호숫가 월든이었다. 그가 자연으로 떠나자 변호사·의사·교수가 된 하버드대 동창생들은 그에게 괴짜, 낙오자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소로는 봄부터 최소 비용으로 혼자 오두막을 지었다. 땅을 파고 돌을 나르고 도끼질과 톱질을 했다. 오두막을 짓는 데 28달러 정도 들었다. 하버드대 기숙사 1년 방세가 30달러였으니 1년 방세도 안 되는 돈으로 집을 지은 셈이다.
소로가 월든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중엽 미국은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돈과 성공이 최대 목표이자 가치로 부상하던 시절이다. 돈과 성공이 목표이다보니 많은 이가 집과 재산, 일에 집착했다. 소로는 많은 사람이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산다고 봤다.
그는 돈과 성공에 집착해 사는 사람들에게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은 노예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직접 통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며 숲속 생활을 했다. 소로가 생각하는 자유인다운 삶이었다.

소로가 숲에서 느낀 ‘소확행’
소로는 숲속 4평 남짓 오두막에서 2년 2개월을 살며 책 <월든>을 썼다. 자연과 함께 자급자족하며 쓴 수필이다. 그는 <월든>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소로가 사회적인 삶을 모두 포기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채 산 건 아니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월든>을 보면 오두막을 지을 때 쓴 비용, 1년 동안 농사지은 뒤 생긴 수익을 재무제표처럼 정리해놓았다. 역설적이지만 숲속 생활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런 내용이 1장 ‘숲 생활의 경제학’에 나와 있다.
이른바 ‘소확행’이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나온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도 같은 뜻이다.
소로는 1장에서 가지려고 할수록 더 가난하고, 버릴수록 더 부자가 된다는 얘기도 한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160년 지난 ‘월든’은 여전히 유효
실천적 지식인이자 현실주의자였던 소로의 외침은 1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찌 보면 그때보다 더 뿌리치기 힘든 소비를 권장하는 유혹 사회에서 살고 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는 사람마다 자신의 의견과 능력을 평가하려는 욕구가 있어,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자기를 비교한다고 했다. ‘저 사람은 나랑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 벌어서 외제 차를 타고 다니네’ ‘저 사람은 나와 같은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못했는데 명품 가방을 메고 다닌다고?’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필요하지도 않은 소비를 한다.
우리는 자주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를 체감한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디드로는 친구가 준 세련된 빨간 가운과 자신의 낡은 물건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운과 어울리도록 의자, 책상 등을 빨강 계열의 새것으로 바꾸다가 결국 모든 가구를 바꾸고야 말았다. 디드로는 돈을 낭비한 자신이 빨간 가운의 노예가 되었다며 우울해했다. 이게 바로 디드로 효과다.
남 얘기가 아니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신형 갤럭시와 아이폰을 할부, 카드 할인, 결합할인으로 거금을 들여 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신형 휴대전화에 맞춰 케이스를 바꾸고, 무선 이어폰도 사고, 거치대까지 바꾼다. 옷을 한 벌 사거나 차를 한 대 샀을 때도 마찬가지다. 구색을 갖추려다 필요없는 물건까지 사며 쓸데없이 지출한다.
요즘 코로나19로 바깥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방콕’ 하는 사람에게 유혹하는 손길이 무척 많다. 여러 백화점에서 명품 할인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외부요인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된다. ‘보복 소비’다. 백화점이 명품 할인 행사를 할 때마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사람은 슬프거나 화났을 때 대체로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슬픈 마음을 잊거나 달래기 위해 충동 쇼핑을 한다.
무조건 소비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일상의 ‘소확행’을 위해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다. ‘이거 정말 잘 샀어! 돈이 아깝지 않아’라고 느끼는 물건을 사야 한다. 하지만 사고 나서 후회하거나 방 한구석에 퉁소처럼 서 있을 것만 같은 제품은 사지 않는 게 좋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은 소비 욕구에 휩싸일 때 <월든>을 읽어보자. 백신을 맞듯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월든>은 <무소유>를 쓴 법정 스님이 손에 놓지 않았던 책이다.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를 따르지 못하겠지만, 나름 작은 소비에 행복해하며 책을 사랑할 수 있을 듯하다.

* 몇 해 전 나온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서 중고생 18%가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돈을 향한 비뚤어진 가치관은 ‘물신주의’를 향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매일 돈과 관련한 정보가 쏟아지지만, 정작 돈과 우리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지 않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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