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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글로스 박사에게 묻는다 “최선의 경제·기업 체제는?”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25호] 2020년 09월 01일 (화) 조계완 kyewan@hani.co.kr
   
▲ 2020년 3월1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대한항공 항공기 구매 리베이트 의혹 관련 조원태, 조현아 등 대한항공 경영진 고발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 관계자 등이 발언하고 있다.

“모든 사건은 ‘가능한 최선의 세상’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발로 차이고 아름다운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면, 만일 자네가 칼로 남작을 찌르지 않았다면, 엘도라도 낙원에서 끌고 온 양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여기서 이렇게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시장주의 경제·경영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가 신봉하는 학설 중 하나가 이른바 ‘팡글로스 박사의 경제학’이다. 볼테르가 1759년에 쓴 철학적 풍자 우화극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Pangloss)는 순진한 청년 캉디드를 교육하는 박사다. 교수형에 처해질 위험에 처한 순간조차 “이것은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의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제나 지금 현재가 최선의 상태”라는 낙천적인 생각을 설파한다.
어느 시대나 진보개혁 세력은 사회경제의 원천적 대립·갈등을 사유 기반의 한 축으로 설정하는 반면, 보수적 사유 체계는 갈등이나 대립이 없는, 모든 사람의 이익이 증진되는 조화로운 세계를 주창해왔다.
지금이 우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선의 사회라는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항상 ‘안정적이고 효율적이고 유일한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고 시장 참여자 누구도 현재 상태에서 이탈할 경제적 유인이 없는 ‘최적’의 사회경제에 사는 셈이다.
이것이 던지는 경제·철학적 메시지는 자명하다. 현재보다 더 나은 다른 사회를 설계·기획하고, 이 사상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꾸고 대안적 사회를 쟁취하려고 싸우는 모든 시도는 자연히 ‘헛된 일’이 된다.
팡글로스 우화는 시장자유주의 역사에 강고한 이념적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독점적이고 불평등한 생산·분배 구조나 한국 특유의 공고한 거대 재벌 체제도 ‘지금 현재 상태가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쉽게 정당화된다. 팡글로스 경제학은 그 단순 명쾌한 진화적 논법을 매력 삼아 수많은 경제학자에게 깊숙이 침투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전통 경제이론이 그대로 믿고 따르는 유명한 낙관주의는, 세상만사를 자유방임 상태로 내버려두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최선 중의 최선이 된다’고 가르치는 <캉디드>처럼 (경제학자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흔히 시장경제학은 사회경제적 계급·계층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비롭고 선량하고 전지전능한’ 사회계획자를 가정한다. 마치 신과 같은 사회계획자가 명령을 내려 자원을 배분·집행한 결과는, 그가 없이 모든 개별 소비자·생산자가 시장에서 무정부적으로 각자 이익을 추구하며 상호 교환·경쟁한 결과(경제적 성과)와 ‘일치한다’는 주장을 시장균형 모형으로 증명(!)한다.
2000년대 들어 롯데·한진·두산·효성·한국타이어 등 몇몇 재벌기업에서 총수 일가 2~4세 형제자매 사이에 경영권 세습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재벌기업은 “재벌집단이 진화를 거쳐 형성된, 한국적 토양에서 도달 가능한 최선의 기업 체제”라고 일갈해왔다.
‘팡글로스 학설’은 과연 하나의 진리일까? 이념·가치를 앞세운 집단적 변혁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음험한 반동일까? ‘최선의 사회경제’는 어떤 상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한여름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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